"정치인들 거짓말, '팩트체크' 통해 줄일 수 있다"
[사회교양특강] 김준일 <뉴스톱> 대표
"객관주의 저널리즘 시대는 끝났다"
▲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의 신뢰성 위기’를 주제로 두 번째 주제 강연을 했다. ⓒ 윤종훈
18~20세기 중후반에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유행했다. 속기사가 속기하듯 감정을 덜어낸 채 벌어진 일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1990년대부터 정치인들 발언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화자의 뜻을 훼손하지 않고 정확하게 '받아쓰기' 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화자가 한 말 자체의 진실성 여부를 가리는 것이 '팩트체크'의 핵심이다.
"언론이 진실의 판명자를 하라는 겁니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어요. 예전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세요'라고 했는데 이젠 팩트체크를 해서 이게 맞았는지 틀렸는지 판사 역할을 하라는 겁니다. 물론 판사는 원고나 피고가 증거를 갖다 주지만 기자는 자기들이 증거를 다 모아야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건 '기자들이 증거를 모아서 판결을 해라' 이겁니다."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니 소스 공개한다
▲ 김 대표는 언론 보도만으로 진리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에 뉴스 생산과정을 공개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김준일
공정성, 정확성, 다양성을 아우르는 언론의 객관성도 중요하지만 21세기 디지털 저널리즘에 들어서면서 '투명성'을 강조한다. 모더니즘적 사고에서는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쓰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로 넘어오면서 '진실에 도달할 수 없고 다만 진실을 재구성할 테니까 (독자들이) 한번 판단해보라'로 바뀌었다. 이때 기자가 판단한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어디서 소스를 얻었는지 모두 공개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저널리즘 추세는 기사에 나온 자료 출처부터 언론사 재원 투명성, 팩트체크 방법론까지 모두 공개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IFCN(International FactCheck Network)에서 제정한 팩트체크 5대 원칙을 번역해 자신이 운영하는 <뉴스톱>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겁니다. '조직이 어떤 데니?' '돈은 어떻게 벌고 있니?' '기사를 썼는데 방법론은 뭘 썼니?' '이걸 쓴 기자는 뭐하는 사람이니?' '이거 고치면 왜 고쳤니?' 그중 한국 저널리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다섯 번째, '개방성과 정직한 수정에 대한 약속'입니다. 언론사가 고쳤는데 언제, 왜 고쳤는지 기사 안에 넣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현장에 가면 바꿔야 하는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보도자료는 안 봐도 사실? 팩트체크는 필수
김 대표는 팩트체크 기법에 기존 뉴스, 정부/공공 데이터, 연구보고서를 활용하는 방법과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7월 <뉴스톱>에 올라온 '한국 공무원 연봉으로 상위 7%?' 기사는 정부/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대표적 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017년 7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공무원들이 연봉 상위 7%에 들며 평균 연봉이 8853만 원이라고 밝혔다. 연봉 6120만 원에 복리후생적 급여와 공무원연금, 국가부담분, 사회보험료, 간접비에 해당되는 기본 경비를 더한 금액이 1억799만원인데, 여기서 퇴직금을 빼면 실질 평균 연봉이 8853만 원이라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내가 실제 받는 돈은 1년에 5천만원인데 국민연금을 회사에서 보전해주는 게 500만 원이니까 '내 실제 연봉은 5500만 원이야'라고 얘기하는 사람 혹시 있나요? 여기에 공무원연금 국가부담분이 들어가 있어요. 국가 유지비용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걸 연봉으로 계산하면 안 됩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김준일 대표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윤종훈
한국납세자연맹이 추산한 공무원 연봉 보도자료에는 공무원이 현재 받는 급여뿐 아니라 미래에 받게 될 공무원연금과 각종 복리후생 혜택까지 포함했다. 공무원을 유지하기 위한 평균 비용으로 봐야 하지만 기자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보도자료에 나온 대로 공무원 연봉을 추산해 기사를 썼다. 김 대표는 "여러분이 기자가 됐을 때 주어진 보도자료를 스스로 팩트체크 하지 않으면 '기레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팩트체크에 100%는 없다"
2017년 8월 <뉴스톱>에 올라온 '체르노빌 사고 사망자 수천명' 기사는 연구보고서를 활용해 팩트체크한 사례다. 2017년 6월 30일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사망자가 수천 명이며 피해자는 수십만 명이 넘는다'고 발언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원전 피해 규모를 과장해서 표현했다'며 반박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심의를 신청했다.
▲ 2017년 6월 30일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가 출연해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인명 피해 규모를 언급했다. ⓒ tvN
이에 <뉴스톱>은 세계보건기구(WHO), 토치보고서 등 공신력 있는 해외 연구보고서를 찾아 기사 안에 링크를 걸었다. 방사능에 의한 사망자 규모는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인 사안이라 팩트체크 판단은 '보류'로 결론이 났다. 김 대표는 "앞으로 다른 데서 원전 피해 규모를 가지고 얘기할 때 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기사를 만들 의무가 있다"며 "종합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모든 팩트체크는 100%가 없습니다. 확률적으로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낮다만 보여주는 거죠."
정치인에게 입증책임 부여하는 팩트체크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효과 연구'(오세욱, 염정윤, 정세훈) 논문에 따르면 20~70세 성인 713명을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 '팩트체크 의무화에 찬성한다'가 85.7%, '팩트체크 필요성에 동의한다'가 94.2%를 나타냈다. 김 대표는 "한마디로 한국 기사 신뢰도가 낮다는 것을 말한다"며 "팩트체크가 제대로 안 된 기사들이 많으니까 국민들이 한국 저널리즘을 향해 경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팩트체크를 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효용이 있을까? 김 대표는 "실제 미국에서 연구조사를 해본 결과 정치인들이 한 말을 언론에서 팩트체크하면 거짓말이 9% 정도 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팩트체크가 활성화하면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스스로 한 말에 책임을 느껴 말하는 데 좀 더 신중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팩트체크 작업을 하면서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저널리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공동연구해 발간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최하위로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대통령 공약이행 조사하는 <뉴스톱>
▲ 2017년 6월 설립된 <뉴스톱>은 ‘모든 전문가는 팩트체커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각계 전문가들을 섭외해 기사를 올린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팩트체커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 <뉴스톱>
<뉴스톱>은 홈페이지에 팩트체커 프로필 사진과 업적을 표기해 투명성을 높였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기사 내용을 언제 수정했는지까지 공개한다. 또한 기사 안에 하이퍼링크, 사진, 동영상을 활용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현대 독자들이 다른 정보를 더 찾기보다 완결성 있는 하나의 기사를 선호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문재인미터'는 최근 <뉴스톱>이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다. 대통령 대선공약을 검증하는데 외국의 '오바마 미터', '트럼프 미터'와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정치인이 내놓은 특정 공약을 검증한 적은 있었지만 공약을 전수 조사한 적은 없었다. 공약이 900개에 이를 정도로 많아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단법인 '코드' 등과 협업한다.
▲ ‘문재인미터’는 <뉴스톱>과 사단법인 코드가 만든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 체크 사이트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공약이행 단계별 상황을 볼 수 있다. ⓒ ‘문재인미터’ 홈페이지
지금 추세는 '맥락 저널리즘'
"세계 미디어 시장 트렌드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자)이 핵심이고 콘텐츠 제작 방식도 속보 중심에서 투명성, 지식성, 맥락성, 협업성이 있는 저널리즘으로 바뀌고 있죠. 또 과거와 달리 개별 기사 하나하나가 소비되는 시대이기에 맥락 저널리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어진 주제는 급변하는 미디어의 새로운 유행이었다. 저널리즘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18세기 구독의 시대를 지나 광고의 시대로, 포털·소셜미디어 시대를 거쳐 이젠 SAAS(story as a service), 다시 구독의 시대로 왔다. 김 대표는 "이 시대 독자들은 다른 정보를 더 찾아볼 필요가 없는 맥락 있는 언론을 원한다"며 "언론사들은 신뢰성 기반의 맥락 저널리즘이 있는 전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맥락 저널리즘'이란 사실 자체를 넘어 기사 하나에 완결성이 있고, 콘텐츠가 거미줄처럼 얽혀 다양한 시각을 모두 전하는 보도 방식을 말한다.
발 빠르게 수익 다각화한 해외 언론
"광고 수익만으로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어 후원이 필요하다고 광고한 <가디언>은 약 80만 가까이 후원자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가디언>의 신뢰가 구독자를 끌어당겼고 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미디어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해외 언론은 이처럼 발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언론사의 기존 수익 모델이었던 광고가 플랫폼 독점으로 변해 수익이 줄어들었고 생존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같은 유명 매체도 점차 신문 중심이 아닌 온라인 중심으로 변했고 최우선 목표를 디지털 구독자 수 증가로 삼았다. 디지털 구독자가 많을수록 구독료 수입이 높아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타깃 광고가 가능해 수익 향상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매체는 멤버십과 기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팩트체크 전문언론 '폴리티 팩트'는 후원자 간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올해의 거짓말' 등에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후원자에게 미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다는 명예와 자부심을 주는 멤버쉽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다.
맥락 저널리즘으로 유명한 <디 인포메이션>은 탐사보도급 데이터와 정보를 통해 구독자 수를 늘렸다. 또 '마크 저커버그' 같은 유명인이 구독하는 것을 홍보수단으로 삼아 구독자들이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결국 연간 400달러에 이르는 고비용에도 1만명 구독자를 보유하며 성공모델이 됐다.
언론사 생존하려면 기존 포맷으론 힘들다
해외 언론 변화에도 한국 언론이 여전히 기존의 신문과 방송 포맷에만 목매고 있는 상황에 김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디지털은 기존 포맷을 가공해 맥락 저널리즘을 추구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인데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전한 신문과 방송 위주 사고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가장 잘 먹히는 기사는 아주 짧거나, 아주 긴 기사지만 한국 언론은 여전히 방송과 신문 위주로 포맷을 맞춰 기사를 만들고 디지털에 그대로 차용한다.
김 대표는 "결국 일반 가정독자를 대상으로 한 구독모델이 이 추세로 간다면 신문의 유통기한은 3년이고 수치상으로 2022년엔 구독률이 0%에 달한다"고 말했다. 신문 구독률은 점차 낮아지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기존 매체의 영향력도 점차 감소해 언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이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라고 전망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발표한 '디지털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좋아하는 언론사가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면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한국은 29%로 전체 22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독자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라면 구독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최근 독자들의 모습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독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언론사가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전세계 1위라고 합니다. 언론사도 이런 점에 발맞춰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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