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는 발견의 시학
[디카시로 여는 세상 시즌3 - 고향에 사는 즐거움 33] 김영빈 디카시 '붓글씨'
▲ 김영빈 ⓒ 이상옥
청학동 서당의 풍월을 오래 들어왔을 테니
지리산이 붓글씨를 쓴 대도 이상할 게 없다
머리 위 하늘에 힘주어 쓴 '뫼 산' 한 글자
제 이름 석 자를 쓸 날도 멀지 않아 보였다
- 김영빈 '붓글씨'
2017 제3회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디카시공모전 최우수작이다. 왜 디카시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 없이 문자만 읽으면 이건 시적 완결성을 지니지 못한다. "머리 위 하늘에 힘주어 쓴 '뫼 산' 한 글자"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다. 포토포엠과는 달리 사진에 시를 엮은 것이 아니라 사진과 문자가 한 덩어리로 시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 디카시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구름이 뫼 산 자 모양으로 지리산 정상에 떠 있는 걸 시인은 지리산이 청학동 서당의 풍월을 오래 듣고 붓글씨를 쓴 것이라고 언술한다. 지리산에 뫼 산 자 모양의 구름을 보면서 순간 지리산이 쓴 붓글씨이고, 그건 지라산이 청학동 서당의 풍월을 오래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나아가 지리산이라는 자기 이름도 쓸 날이 멀지 않았다고 시인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디카시는 사물과 부딪치는 즉흥적 감흥을 스마트폰 디카로 찍고 써서 표현하는 극순간의 멀티 언어 예술이어서 순간의 느낌이 일반 문자시보다 더욱 중시된다. 사물에서 받는 특별한 감흥 그 자체가 영상과 함께 시가 되는 것이 디카시다. 그런 측면에서 디카시는 문자시의 미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할 것이다.
디카시는 발견의 시학이라 해도 좋다. 일상에서 특별한 의미를 포착해내는 것으로 관습적 의미 체계를 깨트려 사물을 새롭게 재인식하게 만든다. 지리산 위의 떠 있는 일상의 구름을 김영빈 시인은 재해석하고 그것도 지리산의 청학동 서당과 재코드화함으로써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신선한 인식을 선사한다. 이것은 영상 이미지가 동반함으로써 가능한 새로운 감각이다.
구름을 지리산이 쓴 글씨라고 초점화
디카시는 문자시의 다층적 코드가 제공하는 심오한 철학적 깊이나 인식의 틀보다는 촌철살인의 순간적이고 기발한 착상을 초첨화하여 강렬한 정서적 임펙트를 준다., 김영빈의 디카시 <붓글씨>는 디카시로는 언술이 비교적 긴 편이지만 그렇다고 문자시처럼 복잡한 코드로 이미지를 확장하기보다는 구름을 지리산이 쓴 글씨라고 초점화라는 쪽으로 구조화하는 것으로 그친다.
이 디카시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해석 그 자체를 보여줄 뿐 무슨 대단한 시적 메시지를 따로 준비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 디카시는 사물을 영상으로 가져와 그것을 새로운 사물로 재해석해주는 것만으로도 매혹적이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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