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찌는 듯한 더위? 절물오름은 다릅니다

하루 종일 시원한 절물오름이 있는 절물휴양림

등록|2019.08.06 16:41 수정|2019.08.06 16:41
더위가 대단하다. 그러나 이 더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 제주도에 있다. 절물휴양림과 절물오름 주변의 산책로가 그렇다. 냉방하여 방구석에 박혀 있느니 절물오름에 가기로 한다.

표선에서 출발하여 교래리 사거리를 거쳐 절물휴양림으로 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주차장도 가득 찼다. 목표는 일단 절물오름이다. 중앙에 난 큰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큼직한 오름 표지판이 보인다. 그런데 절물이 뭘까?
 

절물오름 입구큼직한 절물오름 입구 표지 ⓒ 신병철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약수터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올라오는 길 왼쪽에는 약수암이란 절이 있다. 아하! 좋은 물이 나오는 곳에 절을 짓고, 약수암이라 했고, 그 좋은 물은 절의 물이니 절물이라 했으며, 그 위에 오름이 있으니 절물오름이 되었구나. 이렇게 통찰은 순간적으로 도달하는 법이다.
 

절물오름 올라가는 길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오름 올라가는 길이 좋다. ⓒ 신병철


절물오름 올라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요즘 제주의 오름들은 모두 저 소재로 단장되고 있다. 느낌도 좋고 보기도 좋고 위해 성분이 분출되지도 않는단다. 사방이 여름 녹음으로 울창하다. 난간겸 손잡이로 쳐 놓은 밧줄이 올라가는데 상당히 도움된다. 손으로 잡아 당기면서 올라가면 다리의 부담을 엄청 줄여 줄 수 있으니까.
 

물봉숭아요즘 제주 오름에 많이 피어 있다. 육지서는 보기 힘든 꽃이란다. ⓒ 신병철


올라가는 거리가 800미터라 했다. 200미터마다 남은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힘이 들지 예상할 수 있어서 좋다. 보라색 꽃 한송이가 이쁘게 피었다. 물봉선화다. 약간 습진 곳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선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육지에선 보기 힘들다.
    

절물오름 정상절물오름 정상은 사실 없다.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기 때문이다. 분화구의 한 능선에도착한 셈이다. ⓒ 신병철


드디어 다 올라왔다. 분화구 안에 나무가 많아 분화구는 보이지 않는다. 분화구 능선따라 역시 그 식물성 소재로 잘 단장해 놓았다. 양쪽 어느 곳으로 돌아도 된다는 표지판이 재미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기로 한다. 왜냐면 우연히 내가 먼저 가버렸기 때문이다.
 

계뇨등오름 능선에 계뇨등이 한장 꽃을 피우고 있다. ⓒ 신병철


능선을 걷다가 계뇨등을 만났다. 아내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아직은 별로 냄새가 심하지 않나 보다. 닭똥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이름이 계뇨등이 되었다. 열매가 익을 때 쯤이면 구린내가 좀 나는 식물이다.

계뇨등이라 알려줘도 아내는 잘 믿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지리산 정상에서 바위 위에 핀 이름 모르는 노란 꽃을 '암상황화'라고 하고, 잎 위에 하얀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꽃을 '엽상화'라고 말해서 완전히 속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름인 줄로 믿었다가 나중에사 엉터리임을 알고 난 다음부터 내가 말하는 식물이름은 믿지 않는다. 그래도 계뇨등은 반쯤은 믿는 듯 했다.
 

절물오름 제1전망대능선에 전망대가 있다. 사방이 잘 보인다. 시야가 시원하다. ⓒ 신병철


제1전망대를 만났다. 2층으로 되었으니 우리말로는 전망루라 해야 옳다. 아래층에선 앉아 휴식할 수 있고, 2층에선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다. 땡볕이 뜨겁다. 그래도 시야는 시원하다. 주변의 오름들이 봉긋봉긋 잘 보인다. 한라산은 구름에 덮혀 정상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래층 그늘에 앉아 감귤을 까 먹는다.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는 부부에게도 나눠준다.
 

절물오름 분화구제1전망대에서 분화구가 잘 보인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 신병철


분화구 안도 제법 잘 보인다. 비록 나무로 뒤덮혀 있으나, 분화구의 형태는 충분히 알아 볼 수 있다. 제법 깊다. 실제로 내려가 보면 보기보다 훨씬 깊을 것 같다. 송악산 분화구가 가장 깊다고 했던가? 절물오름 분화구는 넓지도 깊지도 않은 편이다. 제주엔 넓고 깊은 분화구를 가진 오름들이 많다.
 

제2전망대제2전망대의 오름 안내판. 7번이 한라산 정상이다. ⓒ 신병철


얼마 걷지 않아서 제2전망대를 만났다. 여기엔 멀리 보이는 오름들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궁금한 것을 잘도 알아차리고 이렇게 안내판을 설치했을까?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로다. 아, 저게 왕관릉이로구나 하지만 곧 잊어버린다. 멀리서는 알아봐도 가까이 가면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제2전망대의 전망제2전망대에서 한라산쪽을 본 전망. 한라산은 구름에 덮혀 보이지 않았다. ⓒ 신병철


자, 이제 왼쪽부터 성널오름, 물장오리오름, 한라산, 왕관릉, 큰개오리오름들을 찾아보시라. 안타깝게도 한라산과 왕관릉은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큰개오리오름 꼭대기에는 거대한 인공시설이 세워져 있다. 뭘까?
 

너나들이길오름에서 내려오다 만난 길이다. 3키로미터 길이다. 널판지로 길을 모두 덮어 걷기에 참으로 편했다. ⓒ 신병철


처음 출발했던 분화구 능선에 도착했다. 왔던 길로 내려간다. 물봉선화가 또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니 옆으로 길이 나 있다. 표지판에 너나들이길이라 했다. 길이가 3km라 해서 걷기로 한다. 널판지로 바닥을 평평하게 잘 깔아 놨다.

걸어다니기 너무 편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공사였을 것이다.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연세드신 분들이 많았다. 나무가 빽빽하여 시원했다. 선글라스도 필요없다. 뜨거운 여름인 걸 까마득히 잊고 마냥 걷는다.
 

절물오름너나들이길을 따라 걸었더니 어느듯 분화구 안에 들어와 있었다. ⓒ 신병철


너나들이길을 따라 걷고 걸었더니 어느듯 분화구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절물오름은 한쪽이 터진 말발굽형 오름이라 했다. 바로 터진 쪽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래서 무조건 시원하다. 눈도 몸도 모두 시원하다.
 

절물오름 안내판절물오름 안내판이 있어 처음 오는 사람은 길을 찾아 다닌다. ⓒ 신병철


우리는 계속 내려 간다. 3km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꼬불 꼬불 걷고도 또 걷는다. 내려오는 길을 수직으로 내지 않고 꼬불꼬불길을 조성했다. 거의 다 내려 오니 이정표가 나타났다. 생이소리길은 생소해서 포기하기로 한다. 걸어온 길이 상당해서 주차장으로 간다. 나중에사 알고 봤더니 생이소리길은 약수터로 가는 길이고 주차장까지도 별로 멀지 않은 길이었다. 다음에는 생이소리길로 가야지.
 

절물휴양림휴양림 입구 삼나무 숲에 평상을 여럿 만들어놨다. ⓒ 신병철


다 내려 왔다. 입구쪽의 삼나무 숲에 평상을 많이 만들어 놨다. 더위는 저리 가버리고 없다. 자리깔고 앉아 하루 종일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아침부터 자리잡아 편안하게 삼림욕을 즐기는 어르신네들이 있다. 부러웠다. 나도 내년 여름 덥다 싶으면 무조건 자리하나 들고 아침 일찍 절물휴양림 찾아 와서 하루 종일 앉았다 갈 거다.

셰익스피어 비극이면 좋겠지만, 내년 독서 목표는 도스또예프스키이니 죄와 벌을 가져 갈 거다. 일주일 여길 죽치면 다 읽어 지겠지. 내년 여름에 나를 만나려면 절물휴양림 입구 평상으로 오세요.
덧붙이는 글 내년에도 덥기만 하면 찾아 올거다. 책을 들고 와서 하루 종일 적어도 일주일은 죽칠 예정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