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누나' '봄밤'은 짧고, '아스달'은 길었던 까닭
[현장] '방송계갑질119' 마지막 토론회 "방송 스태프 장시간 노동시간 단축 첫 발"
▲ ‘방송계갑질119’는 7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지난 600일 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마지막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방송 스태프 노동시간 단축 등이 포함된 '지상파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 합의 등을 성과로 꼽았다. ⓒ 김시연
"SBS '동상이몽' 시즌1 당시 6개월이 넘는 임금을 롯데와 신세계 상품권으로 받았어요." (방송계갑질119 오픈채팅방 닉네임 '상품권1천만원')
협찬 받은 상품권을 월급 대신 지급하는 '상품권 페이' 등 방송사들의 갑질 실태를 고발해온 '방송계갑질119'가 1년 6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상품권 페이' 중단-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 합의 성과
지난 2017년 12월 20일 '직장갑질119' 소속으로 출발한 '방송계갑질119' 오픈채팅방은 오는 8월 15일 운영을 마치고, 앞으로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에서 운영하는 오픈채팅방 '방송신문고'(https://open.kakao.com/o/g0qplhL)에 통합될 예정이다.
'방송계갑질119' 활동 결과 SBS가 지난해 1월 '상품권 페이' 중단을 선언하고, 지난해 7월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노조가 결성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 6월 18일에는 지상파3사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방송스태프지부가 참여하는 공동협의체에서 ▲ 근로기준법 제한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시간 지속 단축 ▲ 주 52시간 제도 시행 대비 ▲ 오는 9월까지 드라마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및 표준인건비 기준 마련 등이 포함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아래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에 합의하기도 했다.
"연출가 스타일에 달린 근로시간, 근로계약서로 해결해야"
▲ ‘방송계갑질119’는 7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지난 600일 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마지막 토론회를 열었다. 방송계갑질119 법률 스태프로 활동해온 김한울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공인노무사는 이날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시연
방송계갑질119 법률 스태프로 활동해온 김한울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공인노무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울 노무사는 "그동안 저비용-고수익만을 추구하려고 방송계 노동자들의 삶을 갈아 넣어 만들어 온 드라마의 제작 관행은 사전제작 시스템 도입 등 제작 방식을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사전 제작임에도 장시간 노동이 발생한 이유는 '원래 이 바닥에서 늘 그렇게 해왔던' 제작 관행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MBC <봄밤>이 드라마 제작현장 중에서 근로시간이 짧은 편이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연출가의 스타일"이라면서 "연출가가 기본 콘티를 미리 제공하고 이에 따라 촬영 현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었기에 근로시간이 줄어들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tvN <아스달 연대기>는 통상 드라마 2배인 방송 전 6~7개월 전에 촬영에 들어간 '반-사전제작 드라마'였음에도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됐다.
김 노무사는 "지금까지 방송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장시간 근로시간 문제 해결은 드라마 연출가의 역량이나 드라마 내용에 따라 달라졌을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이 없었다"면서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제작 현장에서 개별 근로계약서 작성이 정착된다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움직임이 보다 적극적으로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 스태프 죽음으로 이룬 조직화, "노동자라는 자각 필요"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도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이 실행되면 장시간 노동과 턴키 계약 관행에 변화가 나타나고 표준인건비 기준을 마련해 비현실적인 제작비 구조를 개선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큰 의의는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방송스태프지부가 논의 당사자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에 있다"며 방송 스태프의 '노동자성 인정'에 큰 무게를 실었다.
▲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7일 방송계갑질119 마지막 토론회에서 지난 고 이한빛 PD, 고 박환성·김광일 외주 PD, '화유기’ 미술 스태프 등의 죽음이 방송스태프 조직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 김시연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지난 2016년 10월 tvN에서 하루 20시간이 넘는 과노동 끝에 숨진 고 이한빛 PD, 지난 2017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프라임> 제작 강행군 도중 교통사고로 숨진 고 박환성·김광일 외주 PD, 2017년 11월 tvN 드라마 <화유기> 제작 도중 추락사한 스태프 등이 방송스태프 조직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김두영 지부장은 "모든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방송계갑질119,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노조 등 방송스태프지부 출범의 자양분이 되어온 단체들과 지속적인 연대와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도 "노동자성 인정은 방송현장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들을 푸는 열쇠말"이라면서 "콘텐츠의 정당한 대가,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공정거래 문제와 별도로 노동자로서 권리도 중요하다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