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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20kg 한 상자에 만천원... 너무하지 않나요?

감자 캐는 엄마의 바람... 농산물 가격 정가제에 대하여

등록|2019.08.13 18:00 수정|2019.08.13 18:01
 

▲ ⓒ pixabay

 강원도 정선에서 농사를 짓는 엄마는 바쁜 농사철이면 서울에 있는 나와 통화를 하면서 허리가 아파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왔다, 무릎이 너무 아파 응급실에 다녀왔다며 하소연이다.

스무 살에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40년이 넘도록 농사를 지었다. 예전에 토마토 농사를 지을 때는 토마토 값이 떨어져서, 피망 농사를 지을 때는 피망 값이 비싸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 했다. 예순이 넘은 요즘은 몸이 아픈 게 걱정이란다. 그런데 엄마는 왜 계속 농사를 짓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통화할 때마다, 엄마에게 농사일을 그만 하거나, 일을 좀 줄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자꾸 아프다면서 일은 많이 하니 병원비가 더 들겠다고.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정선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고 있었다. 새벽부터 감자를 캐다 햇살이 뜨거운 한낮이라 집 안에 들어와 쉬던 엄마가, 감자를 마저 캐려면 어두워져야 집에 들어오겠다고 한다.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고고" 하면서.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밭으로 따라 나섰다.

한참 감자를 캐다 보니 동그란 엉덩이 의자에 의지해 있던 허리가 아파오고, 다리와 어깨도 뻐근해졌다. 잠깐 호미질을 멈추고 쉬는데 엄마가 빠른 속도로 호미질을 하며 옆 자리까지 왔다. 대뜸 나는 "이 힘든 농사 언제 까지 할 거야?"하고 물었다. 1초도 안 되어 바로 "내 몸 움직여서 할 수 있을 때까지"라 답하는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이어지는 얘기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일하고 있으면 아픈 줄도 모르고 호미질 할 때마다 감자가 이렇게 나오면 또 얼마나 재미있다고." 엄마에게 감자 캐는 일이 재미있었다니.

얘기를 더 이어갈 새도 없이 앞서가던 엄마는 옆 밭에서 옥수수를 따던 아주머니와 상진이네 농사가 잘 되었더라, 깻잎에 병이 들어 걱정이다, 고추를 딸 때가 다가온다, 누구네 집 딸들이 여름휴가에 안 다녀가 서운하다더라는 등 동네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제야 엄마에게 밭은 이웃들과 이야기를 일구는 곳이기도 했다는 게 보였다. 알이 작은 것들은 썩혀서 감자가루를 만들 거라고 하고, 알이 굵은 것은 팔아먹고, 중간 것들은 부침개도 해 먹고 쪄서도 먹으면 맛있다고 했다. 엄마가 캐낸 건 자식들 입에 넣어 줄 감자 부침개, 찐 감자, 옹심이, 감자떡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틀 후 오일장 날. 엄마는 굵은 감자들을 상자에 담아 시장으로 향했다. 장터에 다녀온 엄마는 "20Kg 한 상자에 만 천원뿐이 안 주더라. 작년엔 3만원은 받았는데" 했다. 올해 감자가 작년보다 알이 굵고, 더 잘 여물었는데 오히려 감자 값은 더 없다고, 그러니 허리가 더 아픈 것 같단다.

봄부터 감자를 심고, 풀을 메고, 한 여름 더위에 감자를 캐는 고단함보다 엄마의 애씀과는 상관없이 매겨지는 감자 가격이 엄마를 더 아프게 하는 모양이다. 3남매가 대학 공부까지 마치는 동안 고정 지출은 무섭게 늘었지만, 농사에는 고정 수입이 없었다. 내가 대학 등록금을 걱정할 때, 엄마는 감자를 심고 땅에, 하늘에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겠구나.

올해 무값이 폭락해 이웃집 무밭을 갈아엎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값은 왜 떨어진 걸까.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무값 폭락"이라고 써 넣어 보았다. 원주 MBC에서 8월 5일 방송 된 "고랭지 무값 폭락, 장기화 우려"라는 뉴스가 검색되었다. 작년 무값 폭등으로 올해 생산 농가가 늘었고, 여기에 작황이 좋아 봄에 생산된 저장무가 아직까지 출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자 값이 폭락한 이유와 똑같은 이유였다. 왜 이렇게 농산물 가격은 변동이 심한 걸까? 매년 변동이 심한데 왜 대책은 없는 걸까? 농사는 하늘의 뜻으로 짓는 것이라서? 농산물의 가격을 정해 놓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걸까? 농산물은 가격이 비싸면 덜 팔리고,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비가 안 나온다. 매년 달라지는 농산물 가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부들의 몫이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힘든 농사일과 엄마를 탓했는데 그보다 농부들의 땀과 눈물 값은 무시한 채, 시시각각 달라지는 농산물 값 체계가 더 문제였다. 농사가 재미있어서 40년 넘도록 해 온 엄마는 잘못이 없다는 걸, 철없던 딸은 이제야 이해했다.

내가 정선에서 감자를 가져가 이웃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면, 맛있다며 한 상자씩 사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감자를 길러낼 때 아프던 몸은 잊고, 수확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값을 '하늘의 뜻'이 아닌 '엄마의 뜻'으로 정하고 무척 기뻐했다. 10년 동안 감자 가격을 정해 두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우리 3남매가 알음알음 팔다보니, 수확한 감자의 아주 일부만 직거래로 판매를 했는데도 고마워 할 뿐이었다. 감자 한 알 가격이 과자 한 봉지 가격처럼 정해지면 어떨까 상상한다. 엄마가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재미있게 감자를 캘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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