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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수영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다

등록|2019.08.14 17:08 수정|2019.08.14 17:27
무더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달력에 별표를 그려 표시해 둔 '여름휴가' 날짜는 희망이다. '어디로 떠나지?'란 휴가지에 대한 고민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유난히 일찍 시작된 올해의 더위에 지쳐가던 나는 멀리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다. 시원한 계곡도 좋다. 그 장소에 있는 동안만 좋다.

특히나 여름여행은 힘이 든다.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짜증은 내게 하고 다툼이 일어나게 한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아무리 동선을 잘 짜더라도 더운 공기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이번 휴가지로 집을 선택했다.

내 선택은 남편에게 환영받았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내 휴가는 며칠이지만 아이들의 방학은 길다. 긴 방학 동안 여행 대신 집에 있으면 좋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을 하다가 수영장이란 미끼를 떠올렸다.

"애들아, 이번 여름휴가엔 ○○월드(집에서 가까운 수영장이름)에 가려고 하는데, 어때?"
"좋아~"


실망할까봐 걱정하던 내 마음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수영장에 며칠 동안 갈 순 없으니까, 다른 데 가고 싶은 곳 있어?"

"생태원(서천 국립생태원)에 가고 싶어. 나는 생태원이 좋은데 엄마 아빠가 바빠서 자주 못 갔잖아."
"만화카페에 가고 싶어. 지난번에 봤던 만화책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나는 아이들의 요구를 그 자리에서 바로 수용해 주었다. 나도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만장일치로 휴가지가 결정됐다.

지역을 결정하고, 숙소를 고르고 예약하고, 짐을 싸고, 몇 시간씩 차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막히는 도로사정을 걱정하고 상한선 없이 치솟는 휴가지 물가에 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동거리 최대 15분. 맛집을 선택하는 데엔 실패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이므로.  

▲ 아빠와 수영장에서 ⓒ 신은경

  수영장, 생태원, 만화카페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시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수영장에서 시작한 휴가는 생태원, 만화카페를 거쳐 다시 수영장에서 마무리했다. 겉보기에는 별 것 없는 휴가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만족도가 아주 높은 휴가였다.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다툼이 한 번도 없었다. 폭염 경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리는 뜨거운 여름에 다툼 없이 꾸지람 없이 지낸 휴가는 올해가 유일하다.

휴가 마지막 날, 아이들을 재우며 물었다.

"이번 휴가 어땠어?"
"최고였어. 나는 차 오래 타는 거 안 좋은데 가까운 곳에서만 놀아서 좋았어."
"나도 좋아. 생태원에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소풍가는 것보다 엄마 아빠랑 가서."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이번 휴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이번 휴가 대 만족이래. 당신은 어땠어?"
"나도 좋았어. 꼭 멀리 떠나야 여행인가?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만족스러운 여행지지."
"나도 그래. 내년에도 이렇게 놀까?"


'이런 게 행복이다. 행복은 내 곁에 있다.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이다.' 휴가 기간 동안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다.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다가 파랑새는 집에 있다는 걸 깨닫고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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