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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여기가 어디여" 이번 달까지만 볼 수 있는 풍경

보랏빛 꽃향기 날리는 광주 문흥지구 '맥문동 숲길'

등록|2019.08.19 10:36 수정|2019.08.19 10:41

▲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동에서 용봉동까지 이어지는 ‘천·지·인 문화 소통길’ 중에서 문화동 육교에서 오치동 쌍굴다리 까지 이어지는 길에 보라색 맥문동이 활 짝 피었다 ⓒ 임영열


옛사람들은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이 어떻게 무더운 여름날을 보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산은 여름에 더위를 없애는 8가지 방법을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한시로 남겼다.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 타기, 넓은 정자에서 투호놀이 하기,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빛 흐르는 개울에 발 담그기 등이 있다.

하나 더 있다. 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동림청선(東林聽蟬)도 있다. 다산은 "적막한 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들으니 괴로운 심사 다 지나 이 세상이 아닌 듯하다"라고 노래했다.
 

▲ ‘맥문동 숲길’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맥문동이 꽃을 피워내 길이 온통 보라색 융단으로 뒤덮여 있다 ⓒ 임영열

 

▲ “오매! 여기가 어디여” 하는 김탄사가 여기저기서 연속해서 들린다 ⓒ 임영열


광주 도심 속, 매미 소리 들리는 보랏빛 맥문동 꽃길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숲 속에 매미소리와 함께 환상적인 보랏빛 꽃향기가 날리는 길이 있다. 도심 속 숲에서 한가로이 매미 소리 들으며 하 수상한 세상 잡사 다 잊고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동에서 용봉동까지 이어지는 '천·지·인 문화 소통길'이 그곳이다. 총연장 4.2 km 중 문화동 육교에서 오치동 쌍굴다리 까지 이어지는 길이 요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맥문동 숲길'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맥문동이 꽃을 피워내 길이 온통 보라색 융단으로 뒤덮여 있다.
 

▲ 하늘 향해 높이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의 푸른 바늘잎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여름 햇살은 맥문동의 보랏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 임영열

 

▲ 하얀 비비추꽃과 잘 어울린다 ⓒ 임영열


길 양쪽으로 막 피어난 맥문동이 무수히 많은 가늘고 긴 꽃대를 쑥 내밀고 있다, 꽃대에는 좁쌀만 한 보라색 꽃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초콜릿 막대 사탕을 보는 것 같다. 꿀벌들이 분주하게 꽃 사이를 헤집으며 웅웅 거린다. 난초 잎처럼 곧게 자란 맥문동의 푸른 잎사귀와 보라색 꽃대가 아름다운 보색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숲길은 마치 보라색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환상적이다.

이 길은 광주 도심을 관통하는 호남 고속도로변의 완충 녹지 구역으로 버려진 땅을 주민들이 나서서 메타세콰이어 나무와 함께 맥문동을 심어 명품길로 만들었다. 도시 외곽 고속도로변의 버려진 공간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한 우수 사례로 선정된 길이다.
 

▲ 사진작가들의 셔터 누르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 임영열

 

▲ 맥문동은 꽃보다는 약초로 더 많이 알려진 식물이다. 백합과 여러해살이 풀로 겨울에도 푸른 잎이 남아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 임영열


맥문동은 꽃보다는 약초로 더 많이 알려진 식물이다. 백합과 여러해살이 풀로 겨울에도 푸른 잎이 남아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아 '맥문동(麥門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꽃말은 '겸손과 인내'다. 소나무나 왕버들, 메타세콰이어 등 키 큰 나무 밑 그늘에서도 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간다.

맥문동이 유명한 곳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북 성주의 왕버들 군락지와 상주의 맥문동 솔숲 등 여러 곳이 있지만, 이제 광주 문흥동의 맥문동 숲길도 이에 못지않다.
 

▲ 꽃대에는 좁쌀만 한 보라색 꽃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꿀벌들이 분주하게 꽃 사이를 헤집으며 웅웅 거린다 ⓒ 임영열

 

▲ 광주 도심을 관통하는 호남 고속도로변의 완충 녹지 구역의 버려진 땅을 주민들이 나서서 메타세콰이어 나무와 함께 맥문동을 심어 명품길로 만들었다 ⓒ 임영열


몇 년 전부터 이 길은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과 사진 동호회 회원들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사진작가들의 셔터 누르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오매! 여기가 어디여" 하는 김탄사도 연속해서 들린다. 하늘 향해 높이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의 푸른 바늘잎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여름 햇살은 맥문동의 보랏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아 ‘맥문동(麥門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꽃말은 ‘겸손과 인내’다 ⓒ 임영열


높이 치솟은 고층아파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소음들, 도심을 관통하며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 자동차들... 바로 옆 세상은 바쁘고 시끄럽게 돌아 가지만, 청량한 매미 소리 들리는 이 숲길에 오면 다산의 말마따나 '괴로운 심사 다 잊히고 이 세상이 아닌 듯'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도시 한가운데 메타세콰이어와 보랏빛 맥문동이 어우러진 광주 문흥지구의 아름다운 맥문동 꽃길은 9월 초가 되면 그 색이 바랜다. 꽃길을 걷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매미소리 뚝 그치고 나면, 금방 구름 높이 걸린 가을 하늘이 다가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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