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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이기는 바다의 녹용 '청각'

여수 신월동 넘너리항 청각 말리는 풍경... 그리운 어머니 손맛

등록|2019.08.19 12:03 수정|2019.08.19 12:17
 

▲ 생김새가 사슴뿔과 같이 생겨 '바다의 녹용'이라 부르는 청각 ⓒ 심명남


한여름 불볕더위에 일곱 자식 식탁을 챙겨야 했던 어머니의 손길은 늘 바빴다. 손에서 물마를 날이 없었다. 돌아서면 밥 달라는 자식들 입 때문이었다.

아이 셋 키우기도 힘든 요즘인데 그때는 어떻게 일곱 자식을 키웠을까? 우리 집은 어린 시절 끼니 때마다 두 개의 밥상을 차려야 했다. 아홉 식구가 한상에 빙 둘러 앉아 먹기에는 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각교자상에 차려진 아버지의 밥상과 일곱 자식들의 양철밥상. 이맘때쯤 빠지지 않던 음식이 있다. 바로 '청각채'였다. 그시절 밥상머리 풍경은 살아있는 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한여름을 이기는 바다의 녹용 '청각'
 

▲ 여수 신월동 넘너리항 포구에 널린 청각 ⓒ 심명남


사람의 기억은 오래간다. 미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향수병이 생기고, 어릴 때 길들여진 미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해 낸다. 자신만의 단골 음식점을 찾는 이유는 어머니의 손맛 때문이다.

바다에서 갖 채취해온 청각을 뚝딱뚝딱 다듬어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 '궁중요리' 부럽지 않은 요리가 탄생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울고 갈 맛이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막걸리 식초와 된장에 버무려 마늘, 풋고추를 송송 띄운 청각채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후루룩 짭짭~ 밥도둑이 따로 없다.
 

▲ 청각 말리는 여수 신월동 넘너리항 어촌의 모습 ⓒ 심명남

   

▲ 청각말리는 여심 ⓒ 심명남


요즘 전남 여수 신월동 넘너리항에는 청각이 지천이다. 청각을 다듬는 어촌여인네들의 바쁜 손길을 잠시 멈춰 세웠더니 얘기가 술술 나온다.
 
"청각을 바다의 녹용이라 불러요. 배타고 바다에 가서 뜯어온 거예요. 청각을 말리면 1/20로 줄어 들어요. 청각 20kg 말려 물이 빠지면 1kg을 건져요. 1kg에 만원씩 파니 거져주는 것 아닌가요. 말린 청각을 분말로 갈아서 먹으면 항암에도 좋아요. 요즘 같은 한여름은 청각채로 사랑받고, 겨울엔 김장김치에 넣으면 끝내줘요."

수확 시기가 7~8월인 청각은 열량이 거의 없다. 청각을 '바다의 녹용'이라 부른 이유는 사슴뿔과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산어보> <동의보감>도 격찬한 청각의 효능
 

▲ 청각을 데쳐 만든 새콤달콤한 청각채 요리는 밥도둑이다 ⓒ 심명남


새콤달콤한 청각 요리는 입맛을 사로잡는다. 생선 독을 다스리는 청각은 철분이 풍부해 빈혈에도 좋다. 특히 산모에게 좋은 식재료로 알려졌다.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기 때문에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궁합이다.

고서에도 빠지지 않는 청각.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청각은 '감촉이 매끄러우며 빛깔은 검푸르고 맛은 담담해 김치의 맛을 돋운다'고 기록돼 있다. 예로부터 김치의 맛을 내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또 허준의 <동의보감>에 청각은 성질이 차고 독이 거의 없어 열기를 내리는 해열식품으로 많이 쓰였다고 기록돼 있다.

청각은 담이나 신장결석을 해소하고, 아침저녁 반잔씩 마시면 야뇨증을 고칠 수 있고, 구충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특히 섬유질이 많아 배변에 도움이 되는 청각은 비타민 C와 칼슘, 인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해 어린이 성장에 도움을 준다.

어촌에 널린 청각 말리는 풍경이 감미롭다. 여태껏 건성으로 봤는데 어촌에서 청각을 자세히 보니 꼭 사슴뿔을 닮았다. 볼수록 신기하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릴적 어머니의 손맛이 떠오르는 청각. 오늘은 단골집에 들러 시원한 청각채 한사발 먹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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