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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3개월 뒤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⑬] 1950년 9월의 전란 현장 Ⅳ

등록|2019.09.07 14:34 수정|2019.09.07 14:34

▲ 서울, 미 해병대가 중앙청 국기 게양대에 성조기를 올리고 있다(1950. 9. 27.). ⓒ NARA

 
인천에 상륙한 부대가 경인 지역에서 인민군 후방을 공격하자 미 해병 제1사단과 국군 해병대는 서울 탈환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1950년 9월 18일 아침에는 김포공항을 탈환하고 그날 오후엔 한강 도하작전을 펼쳐 행주산성을 장악했다. 9월 20일에는 경인 국도를 따라 안양천까지 진출했으며 22일 아침에는 노량진까지 진격했다.

인민군은 서울을 사수하고자 와우산-노고산-안산을 잇는 방어선을 구축해 완강히 저항,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9월 26일 미 해병대가 미 대사관을 탈환했고, 곧 바로 중앙청으로 진격했다. 다음날인 9월 27일 국군과 유엔군은 중앙청을 점령했다.

북한 인민군은 9월 27일 밤부터 서울에서 철수하기 시작해 9월 28일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다. 이튿날인 9월 29일에는 중앙청 메인 홀에서 서울수복 환도식이 열렸다.

이번 회는 서울 수복 때 사진으로 엮었다.
 

▲ 서울, 임시로 마련한 미 대사관 지붕에 성조기를 세우고 있다(1950. 9. 27.). ⓒ NARA

  

▲ 중앙청 로비에서 열리는 서울수도 수복 기념식에 참석한 한미 수뇌부(왼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원수, 무초 주한 미 대사, 알몬드 장군, 워커 장군.1950. 9. 29.) ⓒ NARA

 

▲ 인민군 포로들(1950. 9. 29.). ⓒ NARA

  

▲ 서울수복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중앙청 현관 앞에 속속 도착하는 유엔군 고위층(1950. 9. 29.). ⓒ NARA

 

▲ 체포돼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1950. 9.). ⓒ NARA

 

▲ 부서진 한강 철교와 인도교(1950. 9.). ⓒ NARA

 

▲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인천부두(1950. 9.). ⓒ NARA

 

▲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인선 가도(1950. 9.). ⓒ NARA

 

▲ 서울 수복 직후의 남대문 일대(1950. 9.).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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