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북중, 남북 앞으로 어떻게? 북중만 빼고 '안갯속'
[중간점검] 탄탄대로 '북중', 기싸움 '북미', 고요한 '남북'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2019.6.30 ⓒ 연합뉴스
북·미, 북·중, 남북의 시간표는 맞물려 흘러가고 있는 걸까.
6월 30일 오후 3시 45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악수할 때만 해도 '조용한 가을'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2~3주 안에 북미 실무협상을 열기로 예정한 가운데 '시끄러운 여름'이 찾아올 거라 믿었다.
북·미 사이에 이렇다 할 소식이 없자 남북관계도 소원해졌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지렛대 삼아 북·미 정상회담을 끌어냈다면, 올해의 남북은 고위급회담은 물론이고 민간 교류까지 물꼬가 막힌 형국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남한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하지 말라"라고 하기도 했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건 북·중 관계뿐이다. 북·중은 지난해에 이어 양국의 정상뿐 아니라 고위급 관료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나눈 이후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다섯 차례 만난 북·중 정상이 오는 10월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도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둘러싸고 재편된 남북, 북·미, 북·중의 관계도는 현재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남북, 북·미, 북·중이 지나온 시간을 중간점검했다.
[북·중 시간] 탄탄대로
▲ 시진핑 주석 맞이하는 김정은 위원장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20일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중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밀착됐다. 이는 양국 정상이 만난 횟수만 봐도 알 수 있다. 북·중 정상은 이례적으로 18개월여 동안 총 다섯 번을 만났다. 2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부장은 "(북·중이) 줄곧 비바람 속에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나아가고 있다"라며 양국 관계를 정의했다.
북중의 돈독함은 외교, 군사, 경제, 문화를 가리지 않고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김수길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8월 16일)했다. 김익성 총국장은 북한 외교단 사업총국 친선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을 찾았고(8월 27일) 이에 앞서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7월 10일)했다.
북·중은 10월 빅이벤트도 앞두고 있다. 10월 1일은 중국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이고 6일은 북·중 수교 70주년이다. 이번 왕이 부장의 방북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0월 방중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 교류도 활발하다. 중국 국제문화전파중심과 북한 국가영화총국은 수교 7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오는 10월과 11월, 베이징과 평양에서 각각 북·중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북·중의 돈독함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북·중 정상은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전에 만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총 4차례 방중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10월 북·중 정상이 만나게 되면, 북미 실무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있을 북·중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을 구분지어 봤다. 김위원장이 오는 10월 방중한다고 해도 북미 정상회담이나 북미 실무협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이재영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번에 왕이가 평양을 방문한 건 오롯이 북중관계 때문이다. 예전에는 북·중 관계의 주요 현안이 북·미 관계와 비핵화였다면,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북·중의 시간은 북·미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라며 "현재는 10월 중국건국일과 북중 수교 70주년이 북·중 사이의 가장 큰 현안"라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역시 "지난해와 상황이 다르다. 북·중의 관계개선이 북미대화의 재개로 연결되지 않는다. 북한으로서는 북·미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경제와 안보 면에서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중 관계는 앞으로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미 시간] 기 싸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 조선중앙통신
현재 북·미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상태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받았다는 걸 빼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도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북도 없었다.
8월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때 리용호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이 자연스레 만나지 않겠냐는 예측이 많았지만, 리용호 외무상은 막판에 불참을 통보했다. 남은 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인데, 일각에서 리 외무상이 여기에도 참석하지 않을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 만남은 없지만, 북·미는 담화, 인터뷰 등을 통해 서로를 향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을 언급하며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 외무상은 지난 8월 23일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달아나곤 한다. 폼페이오는 갈 데 올 데 없는 미국 외교의 독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북한을 향한 추가 제재를 이어갔다. 미국 재무부는 8월 30일(현지 시각) 북한과의 불법 환적에 연루된 개인 2명과 해운사 3곳을 대상으로 추가 제재를 가했다.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대만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2018년 4∼5월 170만 리터의 정제유를 해상에서 선박을 통해 북한 선박 백마호에 옮겨 실은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이 추가 제재한 다음 날,(8월 31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을 향해 경고했다. 그는"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의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려 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미가 '의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북한은 비핵화 협상 의제에 대북 제재 완화가 포함되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해 북한 고위급인사의 담화를 통해 미국에 불만을 전하며 나름대로 의제 싸움을 하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시간] 고요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 조선중앙통신
남북 대화는 사실상 정지 상태다. 북한은 관영매체와 선전·선동 매체를 통해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남한을 향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3일 북한의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통일부'를 콕 짚었다 . 매체는 "한국 통일부는 '대화 타령'을 하기 전에 우리 입장이 뭘 의미하는지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라며 "우리(북)는 이미 한국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선포했다"라고 했다.
북한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역시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한 지 하루만인 8월 16일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이 미-한 연합군사연습이 끝난 뒤 저절로 대화 국면이 찾아올 거라 망상하면서 미·북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 기웃거리지만 그런 미련은 미리 접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다. 북한이 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불만을 드러냈지만, 같은 수위로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와 대화 역시 자연스럽게 재개되기를 바라고 있는 셈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 실장은 "현재 구조적으로 남북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거나 돌파구가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미가 진전을 보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남북이 이미 합의했던 군사공동위원회 등을 진척시켜 볼 필요는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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