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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가 또... '토지 40% 수탈설' 부정하며 헛발질

[반일 종족주의 ⑥] 조선총독부가 땅을 무력으로 뺏었을 리가 '있다'

등록|2019.09.10 13:12 수정|2019.09.20 14:56
 

▲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 토지조사사업을 벌였다. ⓒ 눈빛<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토지 수탈과 관련이 있다.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을 명분으로 전체 토지의 40% 이상을 수탈했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고 혜택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40% 이상 수탈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리 제국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어떻게 40% 이상을 빼앗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 제기가 <반일 종족주의> 제2장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는 측량기를' 편에서 나타난다. 제2장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를 이영훈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1982년 신용하 교수가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라는 책을 썼습니다. 신용하는 국유지 분쟁에 관해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는 측량기를'이란 말을 지어냈습니다. 지금 이 글의 제목이 거기서 온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어느 민간인이 총독부를 상대로 해당 토지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면 총독부는 피스톨로 그것을 제압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신용하는 토지조사사업을 피스톨이 발사되는 폭력적 과정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이영훈이 오류를 범했다는 점은 이 시리즈 제5편 기사에서 설명했다. (관련기사 : [반일 종족주의 ⑤] "조정래의 터무니없는 조작"... 딱 걸린 이영훈 교수 거짓말) 사유지를 국유지로 강제로 편입시키는 총독부에 대해 농민들이 격렬히 항의하자 헌병대가 출동해 발포하는 사례들이 있었다는 점을 임호민·전영길·이성익의 논문을 근거로 설명했다. 이영훈이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치밀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는 측량기를'이라며 신용하 서울대 교수 등이 제기한 '40% 이상 수탈설'에 대해 이영훈은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연구자도 이 40%라는 수치를 증명한 적이 없습니다. 검인정이나 국정이나 교과서를 쓴 역사학자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낸 수치입니다. 어느 정도의 수탈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기에 함부로 지어낸 수치에 불과합니다. 최초의 누군가가 그 수치를 지어냈는데, 그 다음 사람이 그것을 인용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의 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신용하 등의 수탈설이 정말 아무 근거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반일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역사학자들이 대충 짐작으로 지어낸 수치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너무도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강조하면서, 이영훈은 총독부가 정말로 그렇게 많은 토지를 빼앗았다면, 우리 조상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묻는다. 목숨 줄과 다를 바 없는 토지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토지의 40%가 총독부의 소유지로 수탈되었다는 학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짓말입니다. 우리 조상은 토지를 사람의 명맥 즉 목숨 줄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자기 목숨 줄을 끊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처자가 굶는데, 가족이 거지가 되는데, 가만히 참고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구나 결사 항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결사 항쟁이 없었으니 수탈설은 거짓말이라는 게 이영훈의 인식이다. "농민들은 오히려 조사반을 환영하였습니다"라면서 "처음에는 조사반의 활동을 경계했습니다만, 차츰 그 내용을 알고선 우호적으로 바뀌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일본이 토지소유권을 근대적으로 개혁해주려고 조사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조선인들이 나중에는 이 사업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헌병대를 동원해 발포까지 해가면서 조사사업을 벌였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참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영훈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영훈이 비판하는 신용하의 논문을 읽어보면 
 

▲ 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5.4.8 ⓒ 연합뉴스


사실, 이영훈이 중점적으로 비판하는 신용하의 논문을 읽어보면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0% 이상 수탈'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고 하나도 과할 게 없다는 판단도 들지 모른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1992년 발행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6집에 신용하 논문 '일본제국주의 옹호론과 그 비판'이 수록돼 있다. 논문에서 신용하는 일제의 토지수탈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아래 글 속의 1정보는 9917㎡다. 아래의 괄호 부분은 빼고 읽는 게 낫다. 문법에 맞지 않아 독해에 지장을 주는 부분이라 따로 표시했다.
 
"일제는 이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① 농경지 등(대지 포함) 27만 2076정보 ② 임야 955만 7856정보 ③ 기타 국유지 137만 7211정보 ④ 합계 1120만 6873정보를 일제 조선총독부 소유지화 하여 약탈하였다. 이것은 당시 한국 국토 총면적의 50.4%에 달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방대한 규모의 토지 약탈이었다. (일제가 약탈한 이 토지에는) 종래의 관유지·공유지뿐만 아니라 한국 농민들의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와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가 일제의 무력에 의해 무상으로 약탈당해서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편입되었다."

이영훈은 "역사학자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낸 수치"라며 '40% 이상 수탈'을 가당치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용하가 아무렇게나 지어내는 학자가 아니라는 점은 역사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역사학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역사학회가 1983년 발행한 <역사학보> 제99권·제100권에 실린 조동걸 당시 국민대 교수의 서평 '신용하 저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조동걸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1918년 <조선토지조사사업보고서> 및 <추록>, 1920년 <조선토지지세제도 조사보고서>, 1938년 <조선임야조사사업보고서>를 거론한 뒤 신용하의 저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식민적 보고서나 제국주의적 논리의 저술을 반론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의 진실을 규명한 것이 신용하 교수의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이다. 신 교수는 일본 정부 또는 총독부의 관계 자료를 찾아 다시 분석하고, 또 그동안 국내외 학자의 논저를 검토하여 1966년부터 주변 문제까지 연구한 9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그중에서 토지조사에 관한 직접적인 것만 3편을 모아 1979년 위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위와 같이 말한 뒤 조동걸은 "신용하의 학문적 정력과 성실성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로 서평을 끝맺었다. 이영훈의 주장처럼 신용하가 상상의 결과로 수탈 규모를 조작했다면, 권위 있는 학술지인 <역사학보>에 조동걸의 칭송이 쉽게 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실린 위 논문에서 신용하는 총독부가 수탈한 토지를 농경지 등 27만 2076정보, 임야 955만 7856정보, 기타 국유지 137만 7211정보, 합계 1120만 6873정보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종래의 관유지·공유지뿐만 아니라 한국 농민들의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와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가 일제의 무력에 의해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편입되었다"고 정리했다. 그래서 나온 게 '한국 토지 50.4% 수탈'이라는 결론이다.

주의 깊게 읽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이영훈은 아무리 일본이라도 어떻게 그런 규모의 약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신용하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신용하는 토지조사사업 뒤에 총독부가 보유하게 된 토지가 국토의 50.4%인 1120만 6873정보(A)라고 했다. 그는 총독부가 그 토지 전부를 강탈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 및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 도합 347만 2362정보(B)가 무력적으로 약탈됐다고 말했다. A의 30.1%인 B가 무력적 방법으로 약탈됐다고 말한 것이다.

신용하는 총독부 보유지가 전체 국토의 50.4%이고 이 50.4% 중에서 30.1%가 강탈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전체 국토의 15% 정도가 강탈됐다고 말한 것이다.

A에서 30.1%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는 무력을 동원해 강탈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한제국 국유지였기 때문이다. 이 국유지는 총독부 국유지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신용하는 그렇게 넘어간 국유지까지 포함해서 총 수탈 규모를 50.4%로 계산했던 것이다. 농민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든 대한제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든 일제가 수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신용하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지난 7월 2일 서형수 의원(민주당, 경남 양산을)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전체 국토 9만 5483㎡ 중에서 30%인 2만 8566㎡가 국유지에 속해 있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국공유지 비율은 81%, 대만은 69%, 미국은 50%, 스웨덴은 40%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30%가 국유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독부가 전 국토의 50.4%를 차지했다는 신용하의 연구결과는 결코 놀랄 만한 게 아니다. 대한제국이 갖고 있던 토지에 더해 농민들로부터 새로 약탈한 토지를 더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40% 이상 수탈'이라는 연구결과가 사실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영훈 교수는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느냐며 수탈설을 황당무계한 이론으로 치부한다. 이는 그가 수탈설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가재정이나 국유지 실태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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