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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북진, 주은래의 경고... 전쟁 화염은 더 거세지고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⑮] 1950년 10월의 전란 현장 Ⅱ

등록|2019.09.12 11:39 수정|2019.09.12 11:48

▲ 미 해군 미주리 호가 북한 청진항으로 함포사격을 하고 있다. ⓒ NARA


38선 돌파

유엔군총사령부는 1950년 9월 29일 서울을 수복하자 모든 작전부대에게 일단 '38선에서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에게 국군 단독의 북진명령을 내렸다.

정 참모총장은 미8군 사령관 워커에게 전술적 이유를 들어 38선 이북의 몇몇 고지들을 점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면서 9월 30일 38선 돌파 명령을 내렸다. 유엔군은 이를 묵인했다.

국군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했다.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이다. 훗날 이승만 정부는 이를 기념해 1956년부터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중국 외상 저우언라이(주은래)는 10월 1일 "중국 인민은 이웃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침략을 받을 경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은 미국과 영국에 전달됐지만 무시당했다.

10월 2일 맥아더는 미8군 사령관 워커에게 38선 돌파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는 10월 1일과 9일에 북한에 대해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10월 11일 김일성은 방송을 통해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라고 총력전의 태세를 보이면서 맥아더의 요구를 일축했다.

이번 회는 1951년 10월 8일부터 10월 24일까지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구성해봤다.
 

▲ 유엔군묘지에도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1950. 10. 8.). ⓒ NARA

▲ 미 해병부대의 열병(1950. 10. 10.). ⓒ NARA

▲ 인천항에 정박 중인 상륙정들(1950. 10. 10.). ⓒ NARA

▲ 진해 앞바다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함정(1950. 10. 14.). ⓒ NARA

▲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원산항 전경(1950. 10. 14.) ⓒ NARA

▲ 원산 상륙작전에 동원된 함정들(1950. 10. 15.). ⓒ NARA

▲ 전화로 폐허가 된 중앙청 인근 주택가(1950. 10. 18.). ⓒ NARA

▲ 부산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식사를 하러 가고 있다(1950. 10. 19.). ⓒ NARA

▲ 부산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을 하고 있다(1950. 10. 19.). ⓒ NARA

▲ 부서진 전투기가 널브러진 비행장으로 노무자들이 일감을 얻고자 몰려들고 있다(1950. 10, 24.). ⓒ NARA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준만 지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 1권을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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