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맥아더의 '졸전'이 있었다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16] 1950년 10월의 전란 현장 Ⅲ - 원산상륙작전
▲ 1950. 10. 26, 유엔군 상륙함정들이 원산 해안으로 상륙하고 있다. ⓒ NARA
원산상륙작전
맥아더는 미 제8군이 평양을 점령하면 동시에 미 제10군단을 원산에 기습 상륙시킨다는 작전을 짰다. 하지만 이 계획이 공개되자 인천상륙작전 때처럼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그 가장 큰 이유로 인천에서 기습을 허용한 인민군이 원산 해안에 대규모 기뢰를 설치해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또 목표지점까지 작전 거리가 짧기 때문에 지상군의 진격속도보다 늦게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이유로 꼽혔다.
1950년 10월 19일, 원산 해역에 도착한 미 제1해병사단은 기뢰제거 작업 등으로 일주일이 지난 10월 26일에야 원산에 상륙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산상륙작전은 군사적으로 별 의미없는, 맥아더에게 커다란 오점을 남긴 셈이었다. 그에게 한국전쟁에서 두 번의 행운은 없었다.
이번 회는 1950년 10월 하순 원산 상륙작전과 그 시기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
▲ 1950. 10. 25. 미 해병대는 인민군의 별 저항 없이 원산 해안으로 상륙했다. ⓒ NARA
▲ 1950. 10. 25. 유엔군들이 소형함정을 타고 원산해안으로 상륙하고 있다. ⓒ NARA
▲ 1950. 10. 27. 서울시민들이 “미 해병대 고맙습니다”라는 플래카드 아래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 NARA
▲ 1950. 10. 27. 서울, 전화를 용케 피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 NARA
▲ 1950. 10. 27. 서울시민과 학생들이 광화문에서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 NARA
▲ 1950. 10. 30. 주먹밥을 배식받는 포로들. ⓒ NARA
▲ 1950. 10. 강원도 화천, 유엔군 병사가 초가집을 수색하고 있다. ⓒ NARA
▲ 1950. 10. 유엔군 병사들이 원산에 상륙코자 전투준비를 하고 있다. ⓒ NARA
▲ 1950. 10. 원산 앞바다를 뒤덮은 유엔군 함정들. ⓒ NARA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영복 지음 <6.25전쟁사>를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