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국 대통령 피하는 모습 보인 미국 대통령, 왜냐면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39] 1952년 11~12월의 전란 현장

등록|2019.12.06 10:36 수정|2019.12.06 10:44

▲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에 앞서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뒤에 탄 사람이 클라크 주한 유엔사령관이다(1952. 12. 4.). ⓒ NARA


아이젠하워의 한국전선 방문

유엔군 공산군 양측 대표들은 정전회담 개시 1년이 넘도록 정전회담장에서 지루한 입씨름만 벌였다. 그런 가운데 전쟁 당사국들에게 정전회담을 조속히 매듭져야 하는 사정이 발생했다. 미국은 1952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아이젠하워는 군 출신이지만, 대통령선거에서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인들은 1.4 후퇴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터라, 아이젠하워의 대선 종전 공약은 설득력을 얻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출범하지마자 한국전쟁을 끝내고자 적극 노력했다. 아이젠하워는 취임 전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선을 조용히 시찰하기도 했다.

1952년 12월 2일 수원비행장에 내린 아이젠하워는 당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는 아이젠하워로서는 휴전을 극구 반대하는 이승만이 매우 껄끄러웠기 때문. 아이젠하워는 2박 3일 한국방문 일정 가운데 출국 직전 겨우 40분 정도만 경무대에 머무르다 공항으로 직행했다고 전해진다.

아이젠하워는 후일 자신의 일기에 "유엔(군)은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한국에 간 것이지, 한국의 통일을 위해 한국에 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회는 1952년 11~12월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
 

▲ 미군들이 아이젠하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특별 호외를 읽고 있다(1952. 11. 5.). ⓒ NARA

   

▲ 3.5인치 대전차 로켓포 교육을 받고 있는 국군 병사들(1952. 11. 18.). ⓒ NARA

   

▲ 시골 장터의 소시장 풍경(1952. 11. 22.). ⓒ NARA

   

▲ 미 전투기가 교량을 폭파하고 있다(1952. 11.). ⓒ NARA

   

▲ 격전지였던 강원도 금화지구(1952. 12. 19.). ⓒ NARA

   

▲ 김포 반도의 한 학교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미 해병 제1사단 군악대의 연주곡을 듣고 있다(1952. 12. 24.). ⓒ NARA

   

▲ 평양, 북한 측에서 유엔군 포로들을 시가행진시키고 있다. ⓒ NARA

   

▲ 교회의 어린이들이 미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있다. ⓒ NARA

   

▲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배식을 하고 있다. ⓒ NARA

  
덧붙이는 글 * [박도 기자의 NARA 앨범]은 45회로 끝납니다. 이번 기사는 강준만 지음 <한국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을 참고하여 썼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