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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결말을 그대로 담은 사진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43] 1954년 이후

등록|2019.12.19 14:38 수정|2019.12.19 14:39

▲ 판문점, 북한 측 대표(왼쪽)가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귀환을 거부하고 제3국으로 가고자 하는 인민군 포로(오른쪽)를 설득하고 있다(1954. 2. 16.). ⓒ NARA


제3국으로 간 포로들

유엔군 측에 수용된 포로 중에는 남과 북도 아닌 제3국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이 있었다. 1954년 2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전쟁포로 88명은 인도행 아스토리아 호에 승선했다. 인민군 포로 74명, 국군 포로 2명, 중국군 포로 12명이었다.

이들 88명 포로가 제3국을 선택하게 된 것은 뚜렷한 사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단은 전쟁이 없고, 좌우 이념대립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들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 그 유명한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이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웃몸을 테이블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동무의 부모는 어디 살고 있소?"
"중립국."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장교가 나앉는다.
"동무, 지금 인민공화국에서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연금 법령을 냈소.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일터를 가지게 될 이며,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인민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디리고 있소. 고향의 초목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 거요."
"중립국."
……
ㅡ 최인훈 <광장> 문학과 지성사 1982년 19쇄 판 181쪽

처음부터 인도를 택한 포로는 15명이었고, 대부분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미국은 중립국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갈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우선 중립국인 인도로 갔다. 이후 그들 중 상당수는 다시 남미로 갔다. 그때 제3국으로 간 포로들은 인도·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이민 1세대가 됐다.

이번 회는 1954년 이후 NARA 소장 한국 사진으로 엮었다.
 

▲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제3국 행을 희망한 포로들이 인천항으로 가고자 화물차에 오르고 있다(1954. 1. 20.). ⓒ NARA

    

▲ 중국군 포로 가운데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자유중국을 희망한 포로들을 태운 트럭이 인천항으로 가고 있다(1954. 1. 20.). ⓒ NARA

 

▲ 한국 시골 장터의 노점 포목가게(1954. 1. 5.). ⓒ NARA

   

▲ 한 농부가 소를 묶은 뒤 앞발에 편자(U자 모양의 쇳조각)를 박고 있다(1954. 1. 13.). ⓒ NARA

    

▲ 유엔군 부대의 연예공연단 소속의 한국인 무희들이 미 해병 1사단 제1대대를 위한 공연을 하고 있다.(1954. 1. 31.). ⓒ NARA

   

▲ 수륙 겸용 장갑차의 운행을 실험하고 있다(1954. 5. 7.). ⓒ NARA

   

▲ 서울, 미 대사관 앞에서 제대군인 및 상이군인들이 미군철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1954. 9. 23.). ⓒ NARA

   

▲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공군 이은용, 이은성 조종사(1955. 6.). ⓒ NARA

   

▲ 버지니아 노퍽, 맥아더 장군의 시신이 어머니의 고향으로 운구 되고 있다(1964. 4.). ⓒ NARA

 
덧붙이는 글 * [박도 기자의 NARA 앨범]은 45회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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