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다고 "한국당이 더 싫다"는 마음이 바뀔까
[주장] 내부 개혁 없는 한국당의 '밀리버스터'는 의미 없어... 중도층 흡수하고 싶다면
▲ 황교안 삭발, 지켜보는 나경원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는 가운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지난 10일 이언주 의원이 밀리버스터의 막을 올렸을 때, 박지원 의원과 홍준표 전 대표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고 했다. "사퇴한 의원이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홍 전 대표는 이 의원의 삭발을 "아름다운 삭발"이라며 추켜세웠다. 16일엔 "황(교안)대표의 삭발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이번처럼 제1 야당대표의 결기를 계속 보여 주시기 바란다"며 응원을 보냈다.
두 평가 모두 진실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삭발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할 쇼지만, 지금처럼 별 수 없어 보일 땐 삭발이라도 해서 결기를 보여야 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당의 밀리버스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두 문제에 답해야 한다. 한국당은 꼭 삭발을 해야 했는가? 삭발을 통해 한국당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한국당이 내놓지 않은 것
두 번째 문제가 비교적 쉽다. 한국당의 목적은 중도층을 흡수하는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그렇게 보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사태에도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민주당은 싫지만 한국당은 더 싫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내대표의 분석은 퍽 옳은 것 같다. 한국당이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싫지만 한국당은 더 싫다'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 삭발 투쟁만으로는 그 프레임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당은 더 싫다'는 프레임은 꽤 강력하다. 한국당이 그간 꾸준히 쌓은 업보로 다져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 김무성 딸 허위 취업 의혹, 김성태 딸 부정 채용 의혹,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나경원 아들 논란... 제대로 청산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조국을 때려도 오르지 않는 지지율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무 탓이다. 한국당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선 빚을 털어야 하고, 빚을 털기 위해선 머리털보단 값나가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삭발식을 통해 자른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 이희훈
물론 한국당의 삭발 투쟁은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당은 조국 관련 국정조사 요구서를 이번 주 안으로 바른미래당과 함께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해임 건의안은 제출 시점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국정조사, 해임 건의 모두 실현 가능성은 낮다. 제출 효과는 삭발 투쟁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때리는 쪽과 지키는 쪽, 양쪽의 결의만 굳게 다지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
한국당은 머리털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핵심을 내놓아야 한다. 조국을 날리고 싶다면, 친박을 날려야 한다. 민주당의 잘못된 인사를 지적하고 싶다면, 한국당도 잘못된 인사를 시정해야 한다. 자정의 노력이 없으니 비판의 명분도 없다. 비판에 명분이 없으니 지지할 이유도 없다. 쌓은 업보를 청산하려면 무게 있는 것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공정과 정의에 대한 청년층의 갈구와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공정가치 구현을 위한 역사적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저스티스 리그'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은 당 내부의 저스티스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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