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 '바다'와 '예술대학'을 주세요
청주대·서원대 예술대학 폐지 5년 전문인력 배출 끊겨
▲ 사립대 예술학과 폐과의 후유증이 커지면서 충북대 예술대학 설립 당위론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충북대 졸업식 모습 ⓒ 충북인뉴스
충북도내 4년제 대학의 공통점은 사실상 순수 예술분야 단과대학이 없다는 것이다. 청주대가 예술대학을 편제에 뒀지만 디자인조형학부, 연극영화학부 2개 분야만 운영하는 '반쪽'이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충북만 버젓한 예술대학 하나 없는 처지가 됐다.
충북대는 전국 10대 거점국립대학교에 포함되지만 유일하게 예술대학이 없다. 강원대는 이미 1994년에 예술대학을 신설했고 가장 늦게 제주대도 2012년 예술디자인대학을 설립했다. 도내 예술인들은 '바다가 없는 것보다 더 허전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허전하기에 앞서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바다가 없고 예술대학이 없는 충북의 현실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특히 사립대의 경우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취업률을 깎아먹는 인문대, 예술대를 첫번째 제물로 삼았다. 마침내 2013년~ 2014년 청주대와 서원대가 음악, 미술, 무용을 아우르던 예술대학을 포기했다. 충북에서는 일찍부터 청주대, 서원대 양대 사학이 예술대학을 설립해 선의의 경쟁관계를 유지해왔다. 양대 사학은 음악 미술 무용학과를 포기하고 대신 청주대는 연극영화과, 서원대는 음악교육과(사범대학)만 존치했다.
국립대학인 충북대와 한국교통대에서도 순수 예술학과는 찬밥 신세다. 충북대는 1974년 미술교육과로 출발해 1998년 미술과(인문대학)로 개편됐다. 2012년에는 인문대학에서 분리돼 융합학과군 조형예술학과로 학과명을 바꿨다. 디자인학과와 함께 대학본부 직할 융합학과군이란 문패를 달고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충주 한국교통대는 인문사회대학에 음악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순수 작품 창작에 중점을 둔 예술학과의 경우 충북대가 미술, 한국교통대가 음악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청주에 위치한 한국교원대의 경우 음악교육과와 미술교육과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교원양성을 위한 전국 단위 특수대학이다보니 지역 예술인들과는 접점이 거의 없는 상태다.
▲ 충북도의 미래해양과학관 유치를 위한 홍보포스터 ⓒ 충북인뉴스
시도립예술단, 지역 출신 경로 차단
청주대, 서원대 예술대학이 폐지된 지 5~6년이 지나자 청주시립예술단안에서 가장 먼저 후유증이 나타났다. 전문예술인인 신입단원을 공모하면 충북 출신 신청자를 찾기 힘들다.
<중부매일>과 인터뷰에서 오선준 전 청주예총 회장은 "좋은 인재가 나와도 지역에서 계속 커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시립예술단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 정도가 지역 출신 재원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경로가 차단됐다"고 말했다.
오진숙 충북무용협회장은 "무용계에서도 신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인적 자원을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 충북에 무용학과가 있을 때 충북 무용이 전국적으로 인정 받고 자부심이 컸지만 이제는 맥이 끊기는 상황으로 국립대에서 역할을 해준다면 다시 충북 무용이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북문화예술포럼 김기현 대표는 수년 전부터 거점 국립대학인 충북대의 예술대학 설립을 주장해왔다. 김 대표는 "서원대, 청주대, 충북대 출신의 청년 창작 예술가가 사라졌다. 일선 학교의 예술 전공 교사도 경기, 서울지역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역 예술고-예술대를 거쳐 배출되는 향토 예술인의 맥이 끊어지게 됐다. 지역 예술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거점 국립대학이 사명감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문화 유형을 감각으로 체득한 전문예술가가 사라지면 지역의 정신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대에서 예술대학 설립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충북대병원장 출신으로 2010년 취임한 김승택 총장이 예술대학에 관심을 나타났다. 당시 교육부가 대학구조조정 움직임과 함께 통섭·융합학과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김 총장은 융합학과군을 만들었다.
대학본부 직할인 융합학과군은 2012년 인문대학 소속이었던 미술학과를 떼어내 조형예술학과 디자인학과로 분리하고 다시 디지털정보융합학과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여기에 음악 등 예술분야 학과를 추가하면 예술대학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대학 정원감축 원칙이 확고한 것으로 드러났고 2년만에 디지털정보융학학과는 전자정보대학으로 소속이 변경됐다.
충북대 조형예술학과 A교수는 "내부적으로 예술대학 설립 당위론에 공감하는 분들은 많다. 하지만 교육부가 정원을 늘리지 않는 전제하에서 대학 자율성을 얘기하니 공론화가 어렵다. 결국 타 대학 정원을 줄여서 우리 예술대학에 달라는 것인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결국 지역 여론이 확산되고 지방자치단체가 물꼬를 트면 대학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대 윤종민 기획처장은 "최근 지역 예술문화단체를 중심으로 그같은 안을 제시한 것을 잘알고 있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감소하다 보니 교육부가 국립대 정원도 해마다 줄여나가고 있다. 올해는 다른 지역보다 정원이 태부족한 의과대학(현재 50명) 증원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직 예술대학 설립 문제는 정식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역 거점대학으로서 관련된 요구와 의견을 주의깊게 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정치권, 교육부 빗장풀어야
충북예총 임승빈 회장은 신문 기고칼럼을 통해 "국립대학은 국가의 교육기관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역 예술지망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마땅히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술분야의 모든 전공을 다 개설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급한 대로 지금 이 지역에 없는 전공만이라도 시급히 개설하면 지역 예술계가 힘을 다해 성원할 것이다. 예술대학 설립으로 지역민들의 신성한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예술문화인을 비롯한 일반 도민들은 지역 예술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에서 국립대 예술대학 설립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국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예술대가 없는 충북대도 교육부가 정원감축 기조를 풀지 않는 한 움치고 뛸 여지는 별로 없다. 결국 전공·학과간 이해관계가 얽힌 충북대 내부에서 예술대학 설립 논의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지역 정·관계에서 교육부의 빗장을 제거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 정치권 B씨는 "그러고 보니 충북에 없는 게 참 많다. 바다는 처음부터 없었고 올들어 명문고도 예술대학도 없다는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이시종 지사는 이미 미래해양과학관 유치와 명문고 유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충북 문화예술의 백년대계와 도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지역 예술인 양성이 필수적이다.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 국립대 예술대학 설립을 위한 교육부의 정원제한 빗장풀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아니면 도내 국립대 대학정원을 통합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충북도가 중재한 조정안을 교육부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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