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종'보다 '수능' 선호한다고 말하는 진짜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72] 고등학교가 '피 끓는 이팔청춘의 놀이터'가 될 순 없을까
'조국 사태'의 불똥이 학교 교육으로 튀어 입시제도의 변화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수만 건의 댓글이 달리고 내용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획일적이다. '수시 폐지, 정시 확대'. 즉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없애고 수능으로 뽑자는 것이다.
당시 문제가 된 입학사정관제에 견줘 지금의 학종은 전형 요소가 크게 달라졌는데도 여론은 '입학사정관제=학종'으로 여기는 듯하다. 계량화된 점수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반영한다는 취지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의 기재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입학사정관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학종'이다.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을 둘러싼 오해
참고로 2008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면서 학생 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다 보니,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철저히 대학에 종속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더욱이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 전형이 천차만별이었고, 고등학교에선 개별적인 진학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전형의 종류만 3천 가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는 그대로인데 대학별 전형만 다양해지다보니 아이들의 부담만 늘어났다. 입시에 대한 부담은 불안감을 부추기며 바야흐로 학교마다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다. 수상 실적을 위해 교내에 온갖 경시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다. 초창기 생기부 기재 과정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으니 상이든 경력이든 그야말로 다다익선인 시절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편법이 난무하고 불신이 팽배하자 기재 항목별로 하나둘씩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2015년 학종이 도입된 뒤로는 '생기부 기재 요령'이라는 매뉴얼까지 보급해 해마다 교사 대상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매뉴얼은 사실상 '기재 금지 내용' 해설서다. 사교육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학교 밖 활동 내용은 일절 기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지금도 기재 금지 사항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도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학종은 엿장수 마음대로'라며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여전히 '엿장수'인 교사의 입맛대로 생기부가 꾸며진다고 믿는다. 게다가 '잘난' 부모의 입김이 닿으면 그것은 한 번 더 윤색이 되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과 학종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인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한 불신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심지어 생기부를 담임과 교과 담당 교사가 아닌, 학생 스스로 쓴다는 제보도 잇따른다. 항목별 기재 사항을 직접 생기부에 접속해 써넣었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현직 교사로서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대체로 수긍하는 모양새다. 교사는 이미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비난 여론에 놀란 탓인지 교육부는 최근 생기부의 항목별 기재 과정에 보안 절차를 추가했다. 담당 교사가 생기부의 일부 항목에 접속해 내용을 입력하려면 사전 등록된 휴대전화로 본인 확인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인터넷 뱅킹이나 폰뱅킹을 이용할 때의 그것과 유사하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안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취지라지만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사 입장에선 생기부를 작성할 때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려야해 무척 번거로워졌으나 비밀번호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일 뿐 별반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교사들 사이에선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조처라며 입을 모은다.
아이들은 대다수 수능을 원하는데, 교사들은 막무가내 학종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견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학종이 교사들 편하자고 애먼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제도라며 노골적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애초 학종은 교사들 편하자고 도입된 제도일 리도 없고, 학종이 확산되면서 업무가 되레 가중되었다는 게 모든 교사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담임교사의 경우 30여 명의 아이들의 생기부를 일일이 챙기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기부에 기재되어야 하는 항목만 10개가 넘는다. 출결이나 수상경력, 성적 산출이야 중요할지언정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아니지만 흔히 '자동봉진'이라 부르는 창의적 체험활동 항목과,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 독서활동, 행동발달특성과 종합 의견 등은 장문의 '서술형'이라 많은 교사들이 힘겨워한다. 교사의 역량 중에 수업이나 생활지도보다 '글쓰기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참고로 '자동봉진'이란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을 한데 붙여 이르는 말로 비교과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 항목이다. 학업 외에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상 경력 등과 함께 학종의 대표적인 전형 요소다. 부모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는 항목이기도 하다.
국어교사가 다른 과목 교사보다 작문 실력이 좋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학종이 확산되면서 이왕이면 국어교사가 담임이면 좋겠다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담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건 그래서다. 교사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학종이 도입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이들이 '학종'보다 '수능'을 선호하는 이유
엊그제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학종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학종이 싫다는 이유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만약 수시와 정시, 곧 학종과 수능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다면 하나마나한 질문이 됐을 것이다. 수능 선호도가 압도적이라는 건 굳이 물어보나 마나다.
이구동성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할 줄 알았다. '조국 사태'로 학종이 뭇매를 맞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개중에는 학력도 실력도 부모가 지닌 문화자본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이된 결과일 뿐이라고 애써 태연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 중에 당장 학종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드는 경우는 없었다. 과연 공정한 입시제도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힘들다는 점을 먼저 꼽았다. 공정성은 숫제 차후 문제라는 투다.
사실 아이들로부터 학종이 싫은 이유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은 뒤, 공정성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의를 내려 보자고 이끌 참이었다. 계량화된 점수나 등급으로 매겨지는 게 진정한 실력인지, 또 그것이 특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문제 삼고 싶었다. 적어도 공정성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이들은 학종을 두고 이구동성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대학입시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빼곡한' 생기부를 위해서는 1학년 1학기부터 내신 성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건 기본이고, 비교과활동에도 절대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죄다 생기부 기재의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수능은 1, 2학년 때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해도 3학년 때 마음먹고 벼락치기를 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학종은 2학년만 돼도 이미 늦다고 말한다. 입학과 동시에 준비하지 않으면 학종으로 '인 서울'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이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하물며 수시 합격자 중에 학종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SKY'임에랴.
그러다 보니 포기도 빠르다. 2학년만 돼도 '남자는 정시'라고 허세를 부리며 학종을 포기하고 수능에 '올인'하겠다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수능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뜻일 테지만 그들의 거드름엔 되레 불안한 빛이 역력하다. 그들이 대학입시에서 정시의 비율을 높이라고 덩달아 요구하는 까닭이다.
생기부의 내신 등급과 수상 실적 하나에 특기사항에 적힌 문장 하나에 대학입시의 당락이 결정된다고 여기다 보니, 모든 교사의 눈이 CCTV로 보인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생활이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생기부가 대학입시 전형자료로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푸념했다.
하지만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과거 학력고사나 수능으로 대학에 가던 시절의 숱한 폐해를. 또 수능 역시 학종에 견줘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도 대체로 인정한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돈 있고 빽 있는' 집의 아이들이 유리하다는 점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다.
하긴 학력고사나 수능 시절 지방의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서울 대치동 등으로 원정 과외를 떠나는가 하면, 재수를 염두에 두고 '느긋하게' 공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지금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연고대 다니는 아이들 중에 서울대를 가기 위해 '반수'를 고려하는 것도 '있는 집'이라야 가능하다. 물론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점수가 정비례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꾸만 수능과 학종 중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잖아요.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능을 선택하겠다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 고2인 우리에겐 학종은 당장의 고통이고, 수능은 내년에 겪을 일이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고위공직자들 대부분이 'SKY' 출신이라는 점이 절망스러워요. 이건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를 손봐야 하지 아닐까요. 서울대생이 연고대생을 얕잡아보고 '인 서울'생들이 지방대생을 대놓고 깔보는 현실은 나 몰라라 한 채 '학종이냐 수능이냐'를 두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이 황당할 뿐이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봐야 대학입시를 비롯한 학교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조국 사태'로 인한 여론의 관심과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과연 학교교육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시큰둥하다 못해 절망적인 반응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 말마따나 학종이냐 수능이냐를 두고 다투는 건 변죽을 울리는 일이다. 밑도 끝도 없이 대학입시에 목매달기보다 이팔청춘의 삶을 마음껏 즐기도록 도와줄 순 없을까. 학교는 입시지옥이 아니라 피 끓는 10대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상을 넘어 허황된 망상이라고? 학교가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이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대체 어디서 그들에게 이상을 품게 하나.
"제자들아,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이 한 방에 인생이 결정될 것 같은 대학입시와 학벌도 솔직히 별 것 아니더라. 괜히 지레 주눅들 필요 없다. 바로 지금 당당하고 즐겁게 살면 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믿기 전에 무엇을 위한 인내고 인내를 통해 얻게 되는 열매는 과연 어떤 것인가를 먼저 떠올려보기 바란다. 학교는 지옥이 아니다. 부디 행복해라."
당시 문제가 된 입학사정관제에 견줘 지금의 학종은 전형 요소가 크게 달라졌는데도 여론은 '입학사정관제=학종'으로 여기는 듯하다. 계량화된 점수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반영한다는 취지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의 기재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입학사정관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학종'이다.
▲ 자기소개서 쓰기대입 합격의 중요 관문 ⓒ Pixabay
참고로 2008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면서 학생 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다 보니,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철저히 대학에 종속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더욱이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 전형이 천차만별이었고, 고등학교에선 개별적인 진학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전형의 종류만 3천 가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는 그대로인데 대학별 전형만 다양해지다보니 아이들의 부담만 늘어났다. 입시에 대한 부담은 불안감을 부추기며 바야흐로 학교마다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다. 수상 실적을 위해 교내에 온갖 경시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다. 초창기 생기부 기재 과정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으니 상이든 경력이든 그야말로 다다익선인 시절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편법이 난무하고 불신이 팽배하자 기재 항목별로 하나둘씩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2015년 학종이 도입된 뒤로는 '생기부 기재 요령'이라는 매뉴얼까지 보급해 해마다 교사 대상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매뉴얼은 사실상 '기재 금지 내용' 해설서다. 사교육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학교 밖 활동 내용은 일절 기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지금도 기재 금지 사항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도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학종은 엿장수 마음대로'라며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여전히 '엿장수'인 교사의 입맛대로 생기부가 꾸며진다고 믿는다. 게다가 '잘난' 부모의 입김이 닿으면 그것은 한 번 더 윤색이 되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과 학종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인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한 불신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심지어 생기부를 담임과 교과 담당 교사가 아닌, 학생 스스로 쓴다는 제보도 잇따른다. 항목별 기재 사항을 직접 생기부에 접속해 써넣었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현직 교사로서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대체로 수긍하는 모양새다. 교사는 이미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비난 여론에 놀란 탓인지 교육부는 최근 생기부의 항목별 기재 과정에 보안 절차를 추가했다. 담당 교사가 생기부의 일부 항목에 접속해 내용을 입력하려면 사전 등록된 휴대전화로 본인 확인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인터넷 뱅킹이나 폰뱅킹을 이용할 때의 그것과 유사하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안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취지라지만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사 입장에선 생기부를 작성할 때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려야해 무척 번거로워졌으나 비밀번호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일 뿐 별반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교사들 사이에선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조처라며 입을 모은다.
아이들은 대다수 수능을 원하는데, 교사들은 막무가내 학종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견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학종이 교사들 편하자고 애먼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제도라며 노골적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애초 학종은 교사들 편하자고 도입된 제도일 리도 없고, 학종이 확산되면서 업무가 되레 가중되었다는 게 모든 교사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담임교사의 경우 30여 명의 아이들의 생기부를 일일이 챙기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기부에 기재되어야 하는 항목만 10개가 넘는다. 출결이나 수상경력, 성적 산출이야 중요할지언정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아니지만 흔히 '자동봉진'이라 부르는 창의적 체험활동 항목과,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 독서활동, 행동발달특성과 종합 의견 등은 장문의 '서술형'이라 많은 교사들이 힘겨워한다. 교사의 역량 중에 수업이나 생활지도보다 '글쓰기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참고로 '자동봉진'이란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을 한데 붙여 이르는 말로 비교과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 항목이다. 학업 외에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상 경력 등과 함께 학종의 대표적인 전형 요소다. 부모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는 항목이기도 하다.
국어교사가 다른 과목 교사보다 작문 실력이 좋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학종이 확산되면서 이왕이면 국어교사가 담임이면 좋겠다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담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건 그래서다. 교사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학종이 도입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이들이 '학종'보다 '수능'을 선호하는 이유
엊그제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학종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학종이 싫다는 이유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만약 수시와 정시, 곧 학종과 수능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다면 하나마나한 질문이 됐을 것이다. 수능 선호도가 압도적이라는 건 굳이 물어보나 마나다.
이구동성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할 줄 알았다. '조국 사태'로 학종이 뭇매를 맞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개중에는 학력도 실력도 부모가 지닌 문화자본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이된 결과일 뿐이라고 애써 태연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 중에 당장 학종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드는 경우는 없었다. 과연 공정한 입시제도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힘들다는 점을 먼저 꼽았다. 공정성은 숫제 차후 문제라는 투다.
사실 아이들로부터 학종이 싫은 이유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은 뒤, 공정성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의를 내려 보자고 이끌 참이었다. 계량화된 점수나 등급으로 매겨지는 게 진정한 실력인지, 또 그것이 특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문제 삼고 싶었다. 적어도 공정성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이들은 학종을 두고 이구동성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대학입시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빼곡한' 생기부를 위해서는 1학년 1학기부터 내신 성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건 기본이고, 비교과활동에도 절대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죄다 생기부 기재의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수능은 1, 2학년 때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해도 3학년 때 마음먹고 벼락치기를 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학종은 2학년만 돼도 이미 늦다고 말한다. 입학과 동시에 준비하지 않으면 학종으로 '인 서울'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이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하물며 수시 합격자 중에 학종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SKY'임에랴.
그러다 보니 포기도 빠르다. 2학년만 돼도 '남자는 정시'라고 허세를 부리며 학종을 포기하고 수능에 '올인'하겠다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수능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뜻일 테지만 그들의 거드름엔 되레 불안한 빛이 역력하다. 그들이 대학입시에서 정시의 비율을 높이라고 덩달아 요구하는 까닭이다.
▲ 아이들은 학종을 두고 이구동성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대학입시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 연합뉴스
생기부의 내신 등급과 수상 실적 하나에 특기사항에 적힌 문장 하나에 대학입시의 당락이 결정된다고 여기다 보니, 모든 교사의 눈이 CCTV로 보인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생활이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생기부가 대학입시 전형자료로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푸념했다.
하지만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과거 학력고사나 수능으로 대학에 가던 시절의 숱한 폐해를. 또 수능 역시 학종에 견줘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도 대체로 인정한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돈 있고 빽 있는' 집의 아이들이 유리하다는 점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다.
하긴 학력고사나 수능 시절 지방의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서울 대치동 등으로 원정 과외를 떠나는가 하면, 재수를 염두에 두고 '느긋하게' 공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지금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연고대 다니는 아이들 중에 서울대를 가기 위해 '반수'를 고려하는 것도 '있는 집'이라야 가능하다. 물론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점수가 정비례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꾸만 수능과 학종 중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잖아요.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능을 선택하겠다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 고2인 우리에겐 학종은 당장의 고통이고, 수능은 내년에 겪을 일이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고위공직자들 대부분이 'SKY' 출신이라는 점이 절망스러워요. 이건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를 손봐야 하지 아닐까요. 서울대생이 연고대생을 얕잡아보고 '인 서울'생들이 지방대생을 대놓고 깔보는 현실은 나 몰라라 한 채 '학종이냐 수능이냐'를 두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이 황당할 뿐이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봐야 대학입시를 비롯한 학교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조국 사태'로 인한 여론의 관심과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과연 학교교육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시큰둥하다 못해 절망적인 반응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 말마따나 학종이냐 수능이냐를 두고 다투는 건 변죽을 울리는 일이다. 밑도 끝도 없이 대학입시에 목매달기보다 이팔청춘의 삶을 마음껏 즐기도록 도와줄 순 없을까. 학교는 입시지옥이 아니라 피 끓는 10대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상을 넘어 허황된 망상이라고? 학교가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이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대체 어디서 그들에게 이상을 품게 하나.
"제자들아,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이 한 방에 인생이 결정될 것 같은 대학입시와 학벌도 솔직히 별 것 아니더라. 괜히 지레 주눅들 필요 없다. 바로 지금 당당하고 즐겁게 살면 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믿기 전에 무엇을 위한 인내고 인내를 통해 얻게 되는 열매는 과연 어떤 것인가를 먼저 떠올려보기 바란다. 학교는 지옥이 아니다. 부디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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