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주거 형태
몽골 유목민들의 사유체계가 한 곳에 집약된 복합적인 구조물
▲ 펠트를 씌워 놓은 몽골의 주거지인 게르(좌측)와 펠트를 씌우기 전의 게르 모습(맨 우측). 설치와 철거 및 이동이 간편한 친환경적인 주거형태이다. ⓒ 오문수
몽골이나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푸른 초원에 점점이 박혀있는 하얀색 유목민 텐트에서 한 번쯤 숙박해보기를 원한다.
유라시아 알타이 민족들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이 이동식 가옥은 최초의 유목제국인 흉노 때부터 궁려(穹廬)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穹廬'의 한문 뜻을 풀어보면 '활처럼 생긴 거처'라는 뜻으로 지붕이 활처럼 휘어진 집을 의미한다.
▲ 어젯밤 심한 비바람과 함께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던 날씨가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심한 비로 침낭이 젖어 며칠간 말려야 했지만 몽골여행이 준 추억이다. ⓒ 오문수
▲ 지난 6월 한달간 몽골 동쪽끝에서 서쪽끝까지 왕복 8000킬로미터의 여행을 하다 만난 호수 모습.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에는 유목민들이 키우는 동물들과 호수위 백조들이 초원의 주인이었다. ⓒ 오문수
지난 6월 한 달간 몽골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왕복(8000㎞)할 때 필자는 텐트와 침낭을 준비해갔다. 4륜구동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잠자리는 텐트를 쳤지만 인근에 유목민이 있을 때는 게르에서 잤다.
평균고도가 해발 1580m인 몽골은 한 여름이라도 밤에는 춥다. 하여 텐트 속에서 잘 때도 침낭이 없으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대초원에서 비바람 몰아치는 날 텐트 속에서 잠잘 때면 편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비가 새기도 하고 바람이 텐트를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 친환경적인 게르는 몽골 초원에 최적화된 주거형태이다 ⓒ 오문수
▲ 몽골의 밤하늘 모습. ⓒ 안동립
하지만 게르 속에서 잠잘 때면 걱정이 없었다. 중앙부에 설치된 난로에 불을 지피고 각자의 침대 위에서 이불만 덮고 자도 된다. 몽골 게르는 인류가 창안한 주거형태 중 설치가 가장 편하며 친환경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몽골 게르...기후변화로 인해 생긴 초원지대에 알맞은 주거형태
인류의 주거형태는 기후나 사회의 경제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고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지구는 약 5만년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어 1만 2천 년 전부터 온난화 현상이 일어났다. 그 결과 북방 유라시아 대륙을 덮고 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이 지역에 숲이 우거지고 큰 호수가 생겨났다.
유라시아 지역은 서서히 건조해지기 시작해 기원전 2천년 무렵에는 오늘날 같은 대초원지대로 변모했다. 이 같은 기후변화에 맞춰 인류의 생활형태도 변화되어 갔다.
▲ 초원위 게르에 산다고 문명과 동떨어져 살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태양광을 이용해 TV도 시청하며 핸드폰도 이용한다. ⓒ 오문수
▲ 몽골서쪽 끝 타왕복드산에 오른 후 카자크족 유목민인 유르트에 초대를 받아 대가족이 사는 유목민집에서 식사를 하던 모습이다. ⓒ 오문수
학자들은 몽골지역에 산재한 석기시대 동굴유적과 암각화, 기원전 4천년 무렵의 주거유적(움집) 등을 분석해본 후 오늘날과 유사한 '에스기-하나트-게르'(양털로 만든 펠트로 외곽을 덮은 천막)의 출현을 기원전 3천년 무렵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라시아 역사상 최초의 유목제국인 흉노의 게르는 '궁려(穹廬)'라는 이름으로 중원에 소개됐다. 궁려는 달구지 위에 실린 것과 땅위에 설치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 명칭과 종류는 후대의 유목제국인 선비, 오환, 타브가치, 유연, 돌궐, 거란, 몽골제국, 북원까지 이어졌다. 16세기부터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게르가 완성되었고 라마교의 융성과 함께 게르 형상의 고정가옥으로 발전되었다.
몽골건축가 "몽골게르는 멍케-텡게리(영원한 하늘) 사상이 반영된 건축물"
몽골 건축가 다아잡은 "몽골 게르는 구조적으로 원형의 토대 위에 무수한 삼각형 조합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멍케-텡게리(영원한 하늘) 사상이 반영된 건축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몽골 게르는 나무와 천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각 구성요소와 기능을 일곱 개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펠트를 덮지 않은 게르 모형으로 맨 가운데 빵모자 처럼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토오노다. 호스테이 국립공원 전시관에서 촬영했다 ⓒ 오문수
◆하나(Khan)-게르의 몸통이자 벽을 구성하는 구조물로 자작나무, 버드나무로 만든다.
◆토오노(Togunu)- 게르 천장의 중심부에 위치해 오니를 고정하는 원형의 목재 구조물
◆오니(Uni)-오니는 토오노를 떠 바치고 있는 우산살 형태의 나무들
◆하알가(Khagalga)-문틀을 지칭하며 보스고(Bosugan)는 하부 문지방, 톡토(Totugu)는 문틀 상부, 하탑치(Khatabchi)는 문틀 좌우 부분
◆바가나(Bagana)-토오노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어르흐(Eruke-n)토오노를 덮는 사각형 펠트조각
◆토오르가(Tagurg-a)나무벽을 둘러싸는 펠트
몽골 게르는 원형, 삼각형, 버드나무라는 3의 성수 조합을 통해 북방문화원형이 깃든 세계관, 계절과 시간, 별자리, 문양 등 갖가지 상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즉 하늘의 중심 별인 북극성이 '어르흐'를 열고 버드나무로 된 '토오노'를 거쳐 성스러운 기둥 '바가나'를 타고 내려와 집안의 생명과 가계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골롬타(난로)'에서 지상의 불로 타오른다.
몽골게르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할 예절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몽골인들에게는 꼭 지켜야 할 금기사항이 있다. '물에 오줌을 눈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금기와 '절대 문지방을 밟지 말라'와 같은 금기가 있다. 몽골인들은 문지방을 밟으면 주인의 목을 짓밟는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다. 다음은 게르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할 금기사항들이다.
▲ 게르 내부의 중심에는 몽골인들이 절하며 기도하는 공간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 오문수
▲ 게르 입구 오른쪽에는 여인들이 차지하는 주방이 있다 ⓒ 오문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말을 한다.
◆중앙 난로 옆에 좌우로 2개의 기둥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왼쪽 기둥 바깥쪽에 서서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는다.
◆두 기둥 사이로 오갈 수 없다.
◆자리에 앉아서는 그들이 주는 수태차를 정중하게 두 손으로 받아 마신다
◆용무가 끝나 나올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쪽을 지나 나온다.
◆절대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게르는 태양의 움직임은 물론 별자리나 빗소리, 바람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친환경적인 집이다. 밤에 소변을 보러 밖에 나오면 별들이 머리에 쏟아질까 두렵다.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은하수와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별자리를 헤아려볼 수 있는 몽골 게르에서 숙박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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