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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앞서 나가던 이경규의 '예측' 이번에도 적중할까

독설-웃음으로 채운 냉철한 지적... 새 예능 2개 출연으로 또 한 번 도전 나선

등록|2019.11.01 16:21 수정|2019.11.01 16:55

▲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 해피투게더4 >의 한 장면 ⓒ KBS


욱, 화, 독설로 대표되면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지만, '예능대부' 이경규는 TV 예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본인이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종종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프로에서도 짧은 시간 동안 확실한 분량 및 웃음을 뽑아낼 만큼 효율적 방송(?)에 최적화된 예능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2008년 MBC <놀러와> 연말 특집, 2016년 <무한도전> 예능총회편 속 이경규의 각종 발언은 재미뿐 아니라 그 무렵의 방송 및 예능인에 대한 예리한 예측을 담아내며 지금까지 전설처럼 언급되기도 한다.

'예능 대부'라는 별명이 결코 허투루 탄생한 게 아니었던 만큼 그가 오랜만에 나온 <해피투게더4> 역시 시청자 입장에선 주목할 만했다.

흥미로운 후배 예능인 분석 
 

▲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 해피투게더4 >의 한 장면 ⓒ KBS


지난달 31일 KBS <해피투게더 4>에는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배우 이유비 등과 함께 무려 10년 만에 이경규가 재출연해 신규 예능 <개는 훌륭하다>를 홍보했다.

사실 이날 <해투4>는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 진행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초대손님들의 각종 과거 경험 및 폭로와 <개는 훌륭하다> 홍보, 신규 코너 '하드털이 퀴즈 Go-Back TV' 등이 두서 없이 이어지다보니 이경규라는 인물로도 기대치에 부응하는 재미 유발은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의 추세에 관심을 둔 시청자라면 이날의 <해투4> 방송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 등 후배 진행자, 예능 프로들에 대한 이경규의 평가였다.  

"실내 예능은 나와 맞지 않는다. 스튜디오 촬영은 유재석X전현무가 잘한다"라며 덕담을 내놓다가도 "신동엽만 봐도 '불후의 명곡'에선 공만 뽑고 아무것도 안 한다. 부럽다"라든지 "우리는 천리길 걸으며 밥 달라고 하는데 야외예능은 출연료 더 줘야 한다"라는 등의 농담반 진담반의 속내를 공개한다.

타인, 특히 동종 업계 종사자들의 능력을 방송에서 직접 언급하는 건 다소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설을 내뿜다가도 이내 함께 출연한 동료 연예인들의 반격에 당하고 마는 이경규 특유의 화법과 행동 탓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이 연출된다.

효율적인 촬영 추구... 요즘 세태 일찌감치 예견?
 

▲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 해피투게더4 >의 한 장면 ⓒ KBS


이날 흥미를 끈 대목은 짧게 촬영을 마치기로 유명한 이경규의 평소 예능 철학 피력이었다. SBS <스타킹> 시절 12시간 이상 녹화를 하던 JTBC <한끼줍쇼> 콤비 강호동에 대한 질타로도 그는 큰 웃음을 만들어 냈다.

"촬영감독이나 VJ 카메라 든 손이 떨릴 정도다."
"어차피 오래 촬영해도 안 쓴다는 거 다 안다."
"1시간 이상 하던 오프닝 촬영을 3년 지난 지금 5분으로 줄였다."


이런 말을 쏟아낸 이경규는 자신의 방식이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와 딱 맞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이는 방송상 재미를 위해 한 말이었지만 낭비적인 요소는 제거하고 효율적인 제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한 내용이었다.

어린이들과의 촬영에 대한 답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꼬마들과의 소통을 잘 못한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 이경규는 "귀여운 모습을 자꾸 뽑아내려고 하는데 너무 비상식적이다"라면서 요즘 늘어나는 어린이 소재 예능에 대해 에둘러 비판했다.

방송 시점엔 그저 웃고 지나쳤지만 되돌아보면 이경규가 언급했던 점 상당수가 실제 TV 예능에선 현실이 되었다. 앞서 그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서 눕방(누워서 방송진행)이 등장할 것이고 미래 예능의 종착지점은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얼마 되지 않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즌1에서 이경규는 실제로 눕방 콘텐츠를 선보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큰 성공을 이루진 못했지만 tvN <숲속의 나의 집> 같은 다큐 성향 예능이 등장하는가 하면 상당수 관찰 예능에선 다큐멘터리의 화법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시대 변화에 적응 성공... 이번엔 어떨까?
 

▲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 해피투게더4 >의 한 장면 ⓒ KBS


39년 방송 경력을 거치며 이경규의 예능 인생은 굴곡도 심했지만 달라진 시대 흐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진화해 나갔다.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MBC <일밤>에서 밀려난 후 KBS <남자의 자격>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힐링캠프>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한끼줍쇼> <도시어부>로는 종편에서도 확실한 입지를 마련한다.

한동안 지상파 고정 예능이 없던 이경규는 최근 KBS에서만 2개의 신규 프로그램에 동시에 출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선 이영자, 정일우 등 동료 연예인과 더불어 편의점에서 실제 출시되는 간편식 제작에 돌입했다. 그런가 하면 오랜 기간 강아지들을 키워온 본인의 평소 생활을 연결지어 반려견 돌봄 예능인 <개는 훌륭하다>에도 참여한다.

동년배 개그맨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TV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경규만큼은 여전히 방송의 황금 시간대 예능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비록 "남의 미래는 예측해도 내 미래는 내다보지 못했다"라는 셀프 디스를 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경규는 누구보다 발빠르게 변화에 대응해 나간 인물이다. 그렇게 예능 대부는 2019년의 끝자락에 과감히 2개의 새 프로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예측불허의 예능 도전에 나섰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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