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고공농성, 국회 책임이다
[주장] 인간에 대한 예의, 과거사법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 전두환 정권 시절 강제노역과 학대 등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최승우씨가 6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지하철역 출입구 지붕 위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라고 적힌 점퍼를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멀리 바다 건너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님의 농성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2004~2005년 과거사법 제정을 위한 운동이 한창일 무렵,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주요 정당이 자리하고 있는 건물들을 찾아가는 한편,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장기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나도 부족하나마 힘을 보탰다. 2005년 5월, 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그 법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합의를 명분으로 본래 취지를 많이 퇴색시킨 안이었다. 그래서 제정 운동이 끝나자마자 '개정' 운동이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답답한, 너무나 답답한 국회
이른바 '촛불 정부'가 들어서고, 진실화해위원회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본격화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런데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솔직히 말해 욕을 하지 않고서는 바라볼 수 없다. 나는 국가폭력 관련하여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 그저 과거청산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라 할 수 있다. 이런 나도 답답한데, 피해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오죽하실까.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을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언젠가는 국회 앞을 다시 찾기도 했다.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족들과 1인 시위를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해결을 위한 천막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 나는 직접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고, 마음속으로만 응원의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2019년 오늘, 고공농성 소식을 듣게 된다.
한국에 있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름대로 확인해 온 소식들을 보면, 국회 전체가 엉망은 아닌 듯하다. 고공농성을 하시는 분의 말씀대로, 나 역시 한국당 때문에 화가 난다. 한국당을 비롯해 과거청산에 부정적인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과거청산은 정치보복'이라는 말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봤을 때 과거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정치회복이다(물론 반대 진영에서는 정치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민간인이 그렇게 학살되었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장준하 선생 두개골이 그렇게 깨졌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무고한 어부가 간첩이 되었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노동운동가가 시신으로 발견되었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대학생이 그렇게 실종되었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광주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을까. 정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형제복지원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을까.
과거청산은 정치보복 아닌 정치회복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과거청산. 이는 정치보복이 아니라 정치회복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의회복이다. 현재 과거사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상황인데, 통과 여부와는 별개로 벌써부터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회의록에 따르면 행안위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법안은 2005년 당시 비판을 받았던 법 내용 중 적어도 조사권한 관련해 (청문회 조항을 빼고) 크게 바뀌지 않은 듯싶다. 이 안이 통과되면 2기 진실화해위원회 역시 여러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잘 몰라 이런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위원회를 빨리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국회에서의 논의를 가까스로 유지시켜왔다고 생각한다.
과거사법 관련해 국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닌 의원들이 있는 듯하여 다행이다. 소방사다리차를 타고 대화를 하려는 민주당의 홍익표, 이재정 의원의 모습은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바람대로, 과거사법은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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