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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후

[책이 나왔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이 완성되기까지

등록|2019.11.12 09:24 수정|2019.11.12 09:24
 

▲ 차노휘의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지식과 감성#) ⓒ 차노휘


늘 그렇다.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가 없다. 습관치고는 고약하다. 만약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지 않았다면 몇 마디 단어로만 남았을 것이다.

'좋다! 다시 올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났다. 그곳에서 샀던 스틱과 가리비는 작년 봄에 순례길을 떠난다는 지인에게 주었다. 힘을 받아서 무사히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지인은 갈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또 작년(2018) 여름에 두 번째 순례길을 나섰다. 프랑스 길이 아닌 포르투갈 길이었다. 프랑스 길을 다녀온 뒤에 계획했으니 2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곳에 다녀와서 어떤 것이 변했는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해 대는 질문이지만 나는 발바닥 피부가 벗겨져서 걷는 고통 속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지 걷는 한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약한 육체가 무너지면서 거창한 생각들은 가차 없이 깨졌다. 끝나지 않을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혼자 걸었을 때에야 알았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다). 내 걸음걸이 속도를 인정한다는 것(모든 경쟁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비로소 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 먹는 삶의 영양분이 되었다. 이 길은 끝이면서도 끝이 아니다. 여전히 인생의 길 위에 서 있으니까.

마흔.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에서 벗어나고픈 것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나이. 불혹이란 말은 틀렸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억지로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흔들리지 않기를 갈망했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적당한 자리를 잡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틈'을 발견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그 틈이 나를 간지럽히면서 뭔가를 터트리기 위해 점점 커져갔다.

훌쩍,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어진 틈새로 어쩌면 추락했을 것이다. 낯선 땅에서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과 900km를 걷는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무척 잘한 일이었다. 그 틈에서 느꼈던 폭발 직전의 간지러움은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나의 순례길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길이었으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순례길 이후 나는 홀로 여러 번 배낭여행을 떠났다. 배낭여행의 불편함은 순례길을 걸었을 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외적으로 눈에 띄게 변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심지는 더욱 굳어졌다. 자존감을 높이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중간지대, 회색지대에서 옮겨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발을 딛는 쪽으로 내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게 용기라면 나는 든든한 아군을 확보한 셈이다.

철저하게 낯선 공간에서, 무엇보다 언어가 다른 곳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 그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었다. 뒤늦은 '독립'이었다.
나는 이제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 걷기는 장담하건대 숨을 쉬는 한 계속될 것이다. 세상의 길이란 모든 길을 걸을, 준비운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 길에 '글'과 동행할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내 걸음걸이에 윤기를 더하면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12일에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여 7월 15일 묵시아에 도착할 때까지, 34일간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을 <오마이뉴스>에 36회 연재(2018년 2월 14일~ 8월 17일)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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