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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가을에 읽으면 딱 좋은 시

이원규의 시 '단풍의 이유'

등록|2019.11.14 16:44 수정|2019.11.14 16:44
 

▲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고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 임영열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이원규의 시 '단풍의 이유' 시집 <옛 애인의 집>(솔, 2003) 중에서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중부내륙 지방을 관통하며 남도 땅 끝자락까지 내려왔습니다. 나무들의 검붉은 가슴앓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너는 붉은 나무, 나는 노란 나무 되어 서로 껴안고 사랑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굳이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우선은 타오르고 볼 일입니다.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입니다. 행, 불행이야 나중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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