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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점검 여성 노동자 비극 되풀이 안 하려면

[노동안전보건조례 제정하자⑤] 적용대상 확대해야

등록|2019.11.26 19:07 수정|2019.11.26 19:40
 

▲ 민주노총울산본부 여성위원회, 공공운수노조울산본부,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가 지난 6월 21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도시가스점검 여성노동자 안전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올해 울산의 도시가스 점검노동자가 안전점검을 하러 고객의 집에 방문했다 감금을 당하였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후 울산의 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은 울산시와 도시가스공급사를 상대로 2인1조 안전점검 시스템 도입을 요구하며 수개월간 파업을 진행하였다.

서울지역에만 1천 명이 넘는 점검 노동자들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수 천명의 점검노동자들이 시민들의 도시가스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의 도시가스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점검노동자들의 노동안전에 대한 문제는 지자체도, 공급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서울지역 점검 노동자들의 노동현실과 투쟁과정을 통해 서울특별시 노동안전보건조례 제정 및 적용 대상의 확대가 왜 필요한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문제는 업무 특성상 다방면에서 발생된다.

첫째로 노동시간의 절반 정도는 각 세대의 안전점검 및 고지서 송달 업무를 위해 하루 1만~2만보, 많게는 3만보 이상을 도보로 이동하고 건물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계량기 검침을 위해 벽을 타는 등 옥외에서 일한다. 찰과상, 골절 등 각종 부상과 족저근막염, 관절질환 등 근골격계질환을 거의 대부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폭염·한파로 인한 온열질환과 미세먼지로 인한 기관지 질환에도 노출되어 있다.

둘째로 안전점검 업무 특성상 모든 고객의 집을 방문하며 당연히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으로 이어진다. 방문노동 과정에서 인격모독, 폭언, 욕설, 성희롱에 노출되고, 심각한 경우 성추행과 폭행, 감금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수십 년간 위와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과 같이 문제가 여론화 되면 도시가스 공급사들은 당장의 사태해결에 급급한 방안만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근본적인 해결과 예방을 위한 구조개선과 매뉴얼 마련은 전무하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자체와 도시가스공급사 그리고 위탁업체 간의 책임전가 문제다.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수도와 동일하게 지자체별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수도 공급 사업과 다르게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민간사업자가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가스 공급 사업 중 안전점검, 검침 등의 업무는 도시가스 공급사가 개별법인 혹은 개인사업자에 위탁을 주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책임전가 문제가 발생하는데 도시가스 점검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에 대해서 지자체는 사업의 허가만 해주었을 뿐 민간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 운영에 대해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공급사에 미루고 있다.

반대로 도시가스 공급사는 지자체가 규정변경이나 공급비용 인상 등을 해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점검노동자들의 법적 사용자인 위탁업체는 말할 것도 없이 지자체와 공급사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도시가스 공급사의 태도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사업의 허가권과 요금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지자체가 더욱이 도시가스 공급업무 특히 안전점검에 대한 법적인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점검노동자들의 노동안전문제에 대해서는 민간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서울시 노동안전보건 조례 제정 논의 소식은 점검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비용 측면으로만 대하던 서울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노동안전 조례는 지자체가 해당 지역 점검노동자들의 노동안전문제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생활임금 조례와 같이 적용 대상을 서울시 및 자회사, 서울시가 직접 위탁한 사업장만으로 한정한다면, 점검노동자들은 민간회사에 위탁업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조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점검노동자들과 이와 비슷한 구조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문제 해결은 여전히 각 사업장 사용자에 맡겨질 수밖에 없으며 서로 책임 전가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서울지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민간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이다. 조례대상을 서울시 및 유관기관에만 한정한다면 조례에 따른 구체 방안을 만들고 적용방안에 대한 논의는 그 결과가 서울시 및 유관기관에 적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이 내용이 서울지역에 확장 적용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서울시민들의 중요한 생활 기반인 도시가스 공급 업무와 시민들의 가스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점검 업무를 하는, 사실상 서울시에서 해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사업에 속한 노동자들조차 민간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적용되지 않는 조례를 받아들일 사용자들은 없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서울시 만들기, 이를 위한 첫 발걸음을 더욱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동안전조례가 제정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윤수 기자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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