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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한국미술사] 하늘은 둥글고 아홉 겹으로 되어 있다

등록|2019.11.29 10:46 수정|2019.11.29 10:50
유안의 《회남자淮南子》와 신석기 세계관

중국 한나라 초기 회남려왕 유장의 아들 유안(劉安)이 엮었다고 알려진 《회남자淮南子》에 신석기 세계관을 알 수 있는 개념이 곳곳에 나온다. 특히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墬形訓)〉, 〈남명훈(覽冥訓)〉 편은 한중일 신석기 세계관을 그려내는 데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 책 또한 허신이 중국 한자를 주역으로 정리했듯 유안과 한대 학자들은 당시 완벽한 사상인 주역의 세계관으로 세상의 기원과 만물생성의 원리를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갑골과 금문에 깃들어 있는 신석기 세계관은 주역의 세계관으로 전도가 되어 버린다. 전도가 일어날 때는 늘 그렇듯 원래 세계관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다시 말해 신석기 세계관을 주역의 세계관으로 정리하게 되면 신석기 세계관은 아주 짧은 시기만 거쳐도 단숨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 〈사진182〉 《회남자淮南子》는 중국 한나라 초기 회남려왕 유장의 아들 유안(劉安)이 엮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은 이석명이 옮긴 《회남자1》(유안 엮음, 올재, 2017). 〈사진183〉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편에 나와 있는 우주와 만물 생성론이다. 이것은 중국 최초의 도상이다. ⓒ 올재


이 책 곳곳에는 주역 이전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것은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을 보았던 중국인의 세계관과 관계가 깊다. 그래서 이 책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중국 신석기 세계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있어야지 가능하다. 하지만 신석기 세계관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주역 세계관으로 한번 전도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주역 이전의 신석기 세계관을 다시 그려내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이 책은 아주 어렵고, 어떤 개념이 나온다 하더라도 낱낱이 풀어 설명하지 않는다. 그 개념 자체를 전제하고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에 대한 정의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 뒤 서술도 해석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墬形訓)〉, 〈남명훈(覽冥訓)〉 편에는 신석기와 청동기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중요 낱말과 구절이 있다. 이것을 아래에 차례대로 정리해 본다. 괄호 안 쪽수는 이석명이 옮긴 《회남자1》(유안 엮음, 올재, 2017)의 쪽수이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편과 천유구야(天有九野)

〈천문훈(天文訓)〉 편에 "하늘 아래 아홉 들판이 있다"(165쪽)는 천유구야(天有九野)의 세계관이 나온다. 여기서 구야(九野)는 구주(九州)와 같은 말이다. 옛 중국인들은 이 세상이 아홉 나라(들판)로 되어 있다고 보았다. 동서남북, 서북·동북과 남서·남동, 이렇게 '여덟 방향'(八方) 나라와 한 중앙까지, 이렇게 '아홉 나라'(九州)로 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을 팔방구주(八方九州)의 세계관이라 한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뒷면 무늬 디자인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구천을 떠돈다, 할 때 구천(九天) 또한 구야(九野)·구주(九州)의 하늘을 말한다. 그리고 아홉 들판의 아홉 하늘 가운데 균천(鈞天)(165쪽)이 있는데, 이 하늘은 구주(九州) 가운데 한가운데 들판 하늘이다. 이 균천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서 한가운데 원이다.
 

▲ 〈사진184〉 청화백자 꽃무늬 접시. 지름 14.4cm. 19세기. 북한. 〈사진185〉 청자 학구름국화 무늬박이 보시기. 지름 11.5cm. 13세기. 북한. 두 그릇 모두 아홉 들판 하늘 가운데 균천(鈞天)을 한가운데 밑바닥에 그렸다. ⓒ 김찬곤


〈사진184〉를 보면 그릇 밑바닥에 천문(天門)을 그렸는데, 이 천문은 아홉 들판 구주(九州) 중에서 한가운데 들판의 하늘 균천(鈞天)에 나 있는 천문이다. 이 천문에서 구름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둘레는 구름에서 이 세상 만물이 태어난다는 우운화생(雨云化生)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구름과 비는 천문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본질은 천문화생(天門化生)이라 할 수 있다.

〈사진185〉도 〈사진184〉와 마찬가지로 그릇 바닥에 천문(天門)을 새겼다. 남북한 학계에서는 천문 속에서 구름이 나오고 있는 모습을 '국화'로 보는데, 국화가 여기에 덩그러니 있을 까닭이 없다. 무늬는 언제나 한 미술 작품 속에서 총체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것은 국화가 아니라 〈사진184〉와 마찬가지로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고 있는 것을 동적(動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184〉는 〈사진185〉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다!)

그리고 한국 고대 미술에서 보이는 연꽃이나 국화는 연꽃이나 국화 그 자체가 아닐 때가 많다.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사진185〉는 구름에서 떨어지는 비(雨)까지 새겼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우보(雨寶)로 보기도 하는데, 우보(雨寶)의 기원도 따지고 보면 불교에 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인 신석기 세계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편과 원칙구증(圓則九重)

〈천문훈(天文訓)〉 편에 아주 흥미로운 구절, "하늘에 아홉 겹 하늘이 있다(天有九重)"는 말이 나온다. '아홉 겹'(九重) 하늘에 대해서는 저번 글 '빗살무늬, 과연 암호인가'에서 아주 자세히 다룬 적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278?)이 쓴 시 〈천문(天問)〉에 이런 구절이 있다.
 
圓則九重(원칙구중) 孰營度之(숙영도지). 惟玆何功(유자하공) 孰初作之(숙초작지)
하늘은 둥글고 아홉 겹(九重)으로 되어 있다 하나, 대체 누가 이렇게 생각해 냈을까. 대체 누가 한 일일까.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 냈을까.

굴원은 시 〈천문(天問)〉에서 하늘과 땅의 형상, 천지개벽, 산천경영, 역대왕의 정치, 초나라 멸망에 대해 172가지로 추려 묻는다. 시 앞부분에서 '하늘 모양'에 대해 묻는 위 구절은 중국 기록에서 최초의 것이다. 위 구절을 보면 굴원 때만 하더라도 하늘이 아홉 겹으로 되어 있는 도상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도 이 아홉 겹 하늘 도상 내지는 세계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언제 적 세계관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 〈사진186〉 굴원은 초나라 왕족의 후손으로, 머리가 좋고 말주변이 좋아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좌도(좌상) 벼슬을 한다. 좌도는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를 담당하는 중책이다. 그는 뛰어난 만큼 시기도 많이 받았다. 그가 쓴 시로는 〈이소(離騷)〉와 〈어부사(漁父辭)〉가 있다. 〈사진187〉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사진188〉 부산 동삼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이것은 〈천문훈(天文訓)〉 편을 정리한 한대 학자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사실 〈천문훈(天文訓)〉과 〈지형훈(墬形訓)〉 편을 읽고 그 세계관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는 힘들다. 앞뒤가 서로 안 맞아떨어지는 곳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1차원과 3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석기인들은 3차원 세상을 1차원 그릇 평면에 나타냈는데, 이것을 잘못 이해할 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굴원과 〈천문훈(天文訓)〉 편을 정리한 한대 학자는 어떤 도상(그 도상은 3차원을 1차원으로 그린 도상일 것이다)을 보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도상을 잘못 이해한 듯싶다.

더구나 한대 학자는 아홉 들판의 하늘 이름을 낱낱이 들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아홉 겹 하늘이 되는지, 아홉 겹 하늘 층 도상으로 그릴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문훈(天文訓)〉과 〈지형훈(墬形訓)〉 편을 꼼꼼히 읽어도 당시 세계관을 그림으로 그려내기가 힘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의 '하늘 속 물 층' 무늬를 설명하면서 자세히 해석한 바가 있다. 이에 대해서도 앞 글 '빗살무늬, 과연 암호인가'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사진187〉을 보면 하늘 층이 다섯 층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 층은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이 아니라 파란 하늘 너머 '하늘 속'을 말한다. 한반도 신석기인과 중국 신석기인은 파란 하늘 너머에 하늘 속이 있고 이 속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하늘 층은 '물 층'이기도 하다. 이 하늘 속에 가득 차 있는 물(水)이 하늘 구멍 천문(天門)을 통해 구름(云)으로 나오고, 이 구름에서 비(雨)가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184-5〉의 천문이 x축에서 고개를 쳐들고 본 천문(天門)이라면, 〈사진187〉의 천문은 y축에서 본 천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서울 암사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에서 하늘 층수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릇과 조각은 699점이다. 이 가운데 4층은 236점, 5층은 244점이다.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2층 7, 3층 70, 6층 93, 7층 30, 8층 9, 9층 2, 10층 5, 11층 2, 15층 1점. 4층과 5층을 합치면 약 69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것은 암사동 신석기인이 생각한 하늘 형상, '방위'와 관련이 깊다.

〈사진187〉을 보면 하늘 물 층을 다섯 겹으로 새겼다. 이것은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하늘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동서남북 그리고 그 중앙 아래 다섯 곳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멍(天門)이 하나씩 다섯 곳에 나 있다는 말이다. 이로써 기원전 4000년 무렵 한반도 신석기인은 동서남북과 한 중앙, 이렇게 사방오주(四方五州)의 세계관이 이미 자리 잡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188〉은 하늘 층을 아홉 겹으로 새겼다. 아마 굴원과 〈천문훈(天文訓)〉 편을 정리한 한대 학자가 본 도상도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 한반도 암사동과 동삼동 신석기인이 하늘 층을 왜 이렇게 '아홉 겹'(九重)으로 새겼는가에 대해서는 앞 글 '빗살무늬, 과연 암호인가'에서 자세하게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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