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가 제목을 뽑을 때 생각하는 것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제목이 '막장 드라마'는 아니었으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인기기사 1위 제목, 제가 뽑은 겁니다... 이 기사 언니가 편집한 거죠? 이 내용 좀 써주세요."
"응? (너무 불쑥이잖아) 뭘 쓰라는 건지?"
"편집기자의 제목 뽑는 실전팁같은 거요!"
"아... 그 말이었어?"
그래도 나는 후배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 핑계삼아 제목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편집기자 일을 하며 제목과 관련해서 내외부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포털에 걸린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 기사는 제목만 봐도 어디 기사인지 알겠어요."
칭찬일까, 아닐까... 더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눈에 띈다는 거니까. 그야말로 분 단위로 쏟아지는 기사 중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짓기 위해 편집기자는 얼마나 분투하는가. 기사 출고 최전선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게 편집기자의 숙명 아니던가(쓰고나니 참으로 비장한 느낌이지만, 현실은....). 아무리 좋은 기사도 일단 눈에 띄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이곳의 섭리다.
제목을 지을 때 편집기자 대부분이 한번쯤 하는 고려사항은 아마도 이런 것일 터. 제목이 팩트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어감이 세지는 않은지, 편파적인지 아닌지, 무엇보다 식상한 표현인지 아닌지, 재미와 유머가 있는지 없는지(나만 재밌으면 그것도 참 곤란하다), 요즘 트렌드를 포함하고 있는지 없는지, 나만 아는 표현은 아닌지. (나는 중요한데, 너는 하나도 중요할 것 같지 않은) 'OO이'가 나은지 'OO가'가 나은지 등 조사 하나도 예민하게 썼다 지웠다 하길 반복하는 게 내 일이다. 조사 하나에도 달라지는 게 어감이니까.
특히나 최근 몇 년에는 편견이 담긴 표현이 아닌지(나도 모르는 혐오의 표현이 아닌지), 성평등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지, 소수자에게 상처가 되는 제목은 아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습관도 생겼다. 제목 뽑을 시간이 여유로운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빨리빨리 판단하고 바로바로 제목을 뽑아내야 하는 게 인터넷 언론사 편집기자다. 봐야할 기사가 많으니까. 종이신문처럼 제한된 지면에 제한된 기사를 배열해서 인쇄하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여기는 인터넷언론이라고 쓰고 초간지라고도 부르는 곳. 말이 듣기 좋은 말로 편집국이지, 내겐 24시간 돌아가는 공장같은 일터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편집하는 것. 그래서일까. 제목을 뽑을 때 독자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을 고려해야 할 때도 있다.
최선의 제목을 짓기 위해
▲ 나는 그저 그 순간 최선의 제목을 지을 뿐이다. ⓒ unsplash
사는이야기에는 사람 마음의 온도를 1도씩 올리는 글도 많지만, 아픈 내용의 글도 상당히 많다.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 아픈 반려동물에 얽힌 사연, 내 몸이 아파 힘들었던 이야기, 특별한 관계였던 사람과 헤어진 이야기, 배신당한 이야기, 목표가 좌절된 이야기 등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찰한 글로 독자들과 만나고 공감하며 성장하는 시민기자들이 다수란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제목이 '막장 드라마'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어느날 갑자기 대장암 환자가 된 40대 가장 시민기자, 가족의 아픈 사연을 내밀하게 고백하는 시민기자, 여행지에서 당한 피해 사례 등등. 이런 내용의 글은 충분히 자극적으로 뽑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기사를 볼 데스크에게 메모도 남겨둔다. '제목에 암환자임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쓴다. 개인의 아픈 경험을 팔기위한 상품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보다 그들의 마음과 진심이 보다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특히나 요즘 포털 댓글처럼 혐오표현이 가득한 때는 더 그렇다.
오죽하면 댓글 때문에 기사를 못 쓰겠다는 시민기자들이 생겨날까. 나도 다르지 않다. '엉망진창땡창'인 댓글을 보며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생각할수록 괜히 억울하고 부아가 치밀었던 경험이 나도 있었다. 그 마음이 뭔지 아니까 제목을 뽑을 때 더 신중해진다. 악플 때문에 너무 힘드니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 번 더 신중해진다. 제목 후보 여러 개 잡아서 뭐가 좋은지 다른 편집기자의 반응을 들어보기도 한다. 물론 내 이런 의도와 달리 결과가 좋지 않을 때(조회수 폭망)는 마음이 급격히 흔들리기도 한다.
'내 판단이 틀렸나. 이 좋은 글을 좀 더 많은 독자들이 보게 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제목을 한번 더 바꿀까?'
그럴 때는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받아들인다. 다른 날도 있겠지 하며. 삶에 정답이 없듯 제목에도 정답이 없다. 자극적으로 뽑아도 외면 당하는 기사가 있고, 담담하게 뽑아도 조회수와 공유가 놀랍게 치솟는 기사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 순간 최선의 제목을 지을 뿐이다. 그 최선의 제목을 위해 오늘도 손가락이 바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쓰다보니 길어졌다. 만나는 시민기자들마다 길게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데, 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후배가 알기 바랐던 '편집기자의 제목 뽑는 실전팁'은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2편을 기대해주시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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