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8명 사살한 악명 높은 경찰... 그가 다리 봉쇄한 이유
[리뷰] 영화 < 21브릿지: 테러 셧다운 > 정형화된 흑인-백인 묘사 완전히 뒤집다
▲ 영화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수사 중 순직한 아버지를 따라 경찰이 된 데이비스(채드윅 보스만 분)는 범죄자들에게 자비 없이 총을 겨누는 걸로 유명하다. 어느 날,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레이(테일러 키취 분)와 마이클(스테판 제임스 분)이 마약 조직이 식당에 보관 중이던 코카인 30kg을 훔친 후 도주 과정에서 경찰 8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에 투입된 데이비스는 범인들을 잡기 위해 맨해튼을 3시간 동안 전면 봉쇄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마약 수사반 형사 번스(시에나 밀러 분)와 함께 레이, 마이클의 흔적을 쫓던 데이비스는 단순한 마약 탈취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첫 장면은 범죄자들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순직은 어린 데이비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년 후 경찰이 된 데이비스는 9년 동안 범죄자 8명을 총으로 죽였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 마치 공권력을 빙자하여 사적 복수에 불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데이비스는 <더티 해리>의 주인공 형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의 후계자에 가깝다.
▲ 영화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그렇다면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더티 해리> 시리즈의 경찰을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꾼 판본에 불과할까?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제작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을 연출했던 안소니 루소, 조 루소 형제가 맡았다. 두 사람은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과 적수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소개한다. 인물을 다룬 방식에서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와 <더티 해리>는 갈라진다.
단순한 선악 구도를 벗어난 점이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첫 번째 감상 포인트라면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공간 설정에 있다.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하룻밤 동안 뉴욕 맨해튼을 봉쇄한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경찰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베테랑 경찰 데이비스는 범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맨해튼과 연결된 21개 다리와 4개의 터널, 3개 강 등을 몇 시간 동안 모조리 막는다. 영화 제목이 < 21 브릿지 >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뉴욕 맨해튼의 도로, 주택가, 호텔, 나이트클럽, 사무실 등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맨몸 격투, 총격전, 카체이싱 액션 시퀀스를 보여준다. 제작진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인구가 많은 맨해튼에서의 하룻밤을 표현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한복판에 브루클린 교차로를 만들었다. 소화기, 쓰레기통, 벽 등 시각적인 요소들에 심혈을 기울여 맨해튼의 밤이 주는 강렬한 분위기를 멋지게 되살렸다.
▲ 영화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봉쇄된 상황을 통해 미국 사회를 은유한다. 바로 인종 갈등을 다룬다는 점이 세 번째 감상 포인트다. 영화에서 경찰 연쇄 살인범 일당은 백인 레이와 흑인 마이클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경찰들을 인정사정없이 쏘는 인물은 백인 레이다. 도리어 흑인인 마이클은 살인을 말린다. 이 외에도 백인들의 감춰진 얼굴을 드러내는 전개는 영화 곳곳에서 나타난다. 정형화된 흑백 묘사를 완전히 뒤집었다.
서부극 <하이 눈>(1952)은 한정된 공간, 제한된 시간이란 설정 속에서 정의를 외면하는 공동체의 민낯을 폭로한 바 있다.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하이 눈>의 마지막 장면처럼 법 집행자(경찰/보안관)의 배지를 보여준다. 분명히 영향을 받은 대목이다. 미국 보수층의 불안을 담은 <더티 해리>의 마지막 장면이 <하이 눈>의 오마주란 사실까지 연결하면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하이 눈>과 <더티 해리>를 '흑인 영화'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흑인의 시각과 입장으로 말이다.
▲ 영화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은 마블의 첫 흑인 슈퍼히어로 영화였던 <블랙 팬서>(2018)의 채드윅 보스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마블 영화 외에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 재키 브라운의 인생을 담은 < 42 >(2013), 천재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의 일대기인 <제임스 브라운>(2014),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드굿 마셜의 이야기 <마셜>(2017) 등에 나왔다. 흑인 배우로서 시대와 사회에 대해 발언하겠다는 의식이 느껴지는 작품 선택이다.
<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뻔한 작품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새롭고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특히 흑인 영화로서 그렇다. 그리고 채드윅 보스만이 시드니 포이티어, 덴젤 워싱턴을 잇는 흑인 배우로 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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