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비교까지... 노무현이 그 싸움에서 남긴 한마디
[언론개혁 6] 그가 조선일보에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 2019년 7월 16일 80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헌론수호투쟁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진보연대 등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인근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폭거마저 감싸고 나섰다”라며 “친일언론, 왜곡편파언론, 적폐언론 조선일보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조선일보>는 항상 청와대 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음에 드는 정권이 청와대에 있으면, 그곳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를 상대로 자잘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작년 4월 11일 < PD저널 >에 기고한 '맹공 퍼붓는 조선일보 …청와대 대응 역부족'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일보>가 박근혜 정부 시절과 대조적으로 청와대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자연재해, 개인의 죽음도 청와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공격에는 <조선일보>, TV조선, <조선일보> 언론인이 진행하는 유튜브 등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청와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여기에는 합법, 불법, 탈법의 경계도 무의미하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정치권력에 초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정권의 시녀였거나 정권과 제휴했던 지난날과 무관치 않다. 수직관계든 수평관계든 정권이 자기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언론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1년 전인 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언론도 공정 보도와 책임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2월 7일 정월대보름이 됐다. 언론개혁과 세무조사에 대한 지지 발언이 이날 엉뚱한 데서 나왔다. 언론관계 주무 부서가 아닌 해양수산부였다.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폭탄 발언'이랄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낸 것이다. 이날 일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7일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세상에 정치적 의도가 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언론에 대한 전쟁 선포를 불사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이 정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는 진짜 이유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변인은 '노 장관의 발언으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여권의 주장이 거짓으로 확인됐다'며 '세무조사는 언론과 맞붙어 싸워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이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했다는 이 보도는 과장이 아니다. 노무현 자신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그 말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안 그래도 수구 언론이 주시하던 노무현이었다. 그런 노무현이 주무 부서도 아니고 해양수산부에서 이처럼 언론과의 전쟁 불사를 운운한 적이 있는 데다가, 이듬해인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까지 했으니 <조선일보> 등이 얼마나 적대 감정을 품었을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무현에 대한 긍정적 사설 0개
▲ 2009년 5월 1일자 <조선일보> 만평 ⓒ 조선일보
수구 언론은 김대중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노무현을 공격했다. 1987년 6월항쟁 때까지는 독재정권의 시녀로 살았고, 그 뒤로는 보수 권력과 제휴했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언론과의 제휴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노무현은 생소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일방적 편파 보도를 무기로 노무현을 공격해댔다. 이 점은 <조선일보>가 비판적 사설을 얼마나 많이 쏟아냈는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문제를 분석한 학술 논문이 있다. 언론학 박사인 이진규 부산영상위원회 영상벤처센터장이 2012년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 제24권에 기고한 '정치권력 변동과 언론보도의 함수 관계'다.
이 글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에 대한 7개 일간지 사설을 토대로 각 정권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정권 출범 직후 1개월'과 '이듬해 정월 1개월'의 사설을 토대로 정권 출범 직후와 출범 10개월 뒤의 태도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논문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경우,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 1개월 동안에는 긍정적 사설이 60.0%(12/20, 20건 중 12건)였다가, 다음해 정월 1개월 동안에는 긍정적 사설이 58.1%(18/31)로 약간 줄었다.
노태우 정권 때는 이 비율이 21.9%(9/41)에서 23.8%(5/21)로 약간 증가했다. 김영삼 정권 때는 26.2%(11/42)에서 8.0%(4/50)로 감소했고, 김대중 정권 때는 2.3%(1/44)에서 2.4%(1/42)로 약간 올랐다. 한편, 노무현 정권을 지나 이명박 정권 때는 17.5%(10/57)에서 26.8%(11/41)로 올랐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과 관련해서는 이 같은 비교를 할 필요조차 없다. 증가할 것도 감소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조선일보>의 긍정적 사설이 두 기간 모두 0개였던 것이다. 중립적 사설이 40.0%(23/59)에서 23.9%(11/46)로 감소하고, 부정적 사설이 61.0%(36/59)에서 76.1%(35/46)로 증가했을 뿐이다.
노무현에 대한 <조선일보>의 차가운 시선은 만평에서도 드러난다. 2009년 <언론과학연구> 제9권 제3호에 수록된 신병률 경성대 교수의 논문 '시사만화에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에 관한 비교 연구'에 따르면, 노무현 재임 5년 동안 <조선일보> 만평은 1401개였다. "이 중에서 노 대통령을 그림으로 직접 표현한 만평의 개수는 467개(약 33%)"였다고 논문은 말한다. 노무현 임기 내내 적어도 4일에 1번씩은 노무현 풍자만화를 내보냈던 것이다.
<조선일보> 만평은 노무현의 국정 운영이나 개인 신상을 비판하는 것뿐 아니라 노무현의 얼굴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데도 주력했다. "화를 내거나 당혹해하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등 노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경우가 271건(58.0%)으로 가장 많았고, 미소를 짓거나 활짝 웃고 있는 등 긍정적으로 묘사한 경우가 71건(15.2%)으로 가장 적었다"고 논문은 말한다.
이 만평은 퇴임 뒤 검찰에 출석하는 노무현을 상대로도 공격을 가했다. 2009년 5월 1일자 만평은 전두환이 1995년 12월 3일 경남 합천에서 체포돼 차를 타고 서울에 가는 모습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김해에서 버스를 타고 검찰에 출석하러 서울에 가는 모습을 대비시켰다.
만평 제목은 '똑같은 부정부패 혐의라도···'이다. 만평 속의 전두환은 창 밖의 노무현 버스를 보면서 "저 양반은 호강하네"라고 중얼거린다. 전두환이 탄 차량은 비좁은 데 반해, 노무현이 탄 버스는 널찍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과 똑같은 죄를 지어놓고도 편의를 제공받은 것 같은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
그의 진심
▲ 2006년 1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 모두연설을 하고 있다. ⓒ 이종호
이처럼 <조선일보>가 온갖 저열한 방법으로 싸움을 건 데 반해, 노무현은 이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을 다 동원하지 않았다. 대통령 권력을 내려놓고 싸웠던 것이다.
<운명이다>에서 노무현은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면서 "국민이 언론과 싸우는 데 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고 회고한다. 그런 노무현을 상대로 <조선일보>가 전면적 공격을 벌였던 것이다.
노무현은 <조선일보>를 제압하거나 자기편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면서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그는 수구 언론을 굴복시킬 목적이 아니라, 관계를 끊을 목적으로 <조선일보>와 싸웠다. 언론과 거리를 둠으로써 언론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이유로 싸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전 대통령들이 행사했던 권력을 그는 그 전쟁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노무현은 이 싸움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패배를 통해 수구 언론의 모순 중 하나를 드러냈다. 정치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정치권력과 어떻게든 한편이 되려는 수구 언론의 모순을, 그는 자신의 패배를 통해 드러냈다. 언론은 권력의 시녀가 돼서도 안 되고 권력의 제휴자가 돼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그는 자신의 패전을 통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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