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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소방관 국가직화'에 바란다

[주장] 현장지휘능력 향상, 소방관 자격기준 마련, PTSD, 암 추정법 등 민감 과제 산적

등록|2020.01.08 08:19 수정|2020.01.08 08:19

▲ 2014년 발간된 '소방공무원이 국가직화가 되어야 하는 119 가지 이유' 1면 (출처: 전국의용소방대 연합회 & 대한민국 재향 소방 동우회) ⓒ 전국의용소방대 연합회 등

   
2014년 전국의용소방대 연합회와 대한민국 재향 소방 동우회가 전국 소방인들의 목소리를 담아 제작한 '소방공무원이 국가직화가 되어야 하는 119가지 이유'라는 제안서가 발표된 지 5년이 지났다. 국가 차원에서의 재난대응이 효율적이라는 점과 지자체별로 차이가 나는 소방인력·장비·예산 등의 문제로 인해 소방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다가오는 4월이면 소방인들의 염원이 담긴 '소방관 국가직화'라는 호(號)가 출범하게 됐다. 현재 소방청을 비롯해 일선 본부와 소방서에서는 조만간 국가직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 맞춰 진정한 국가직으로 변화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소방 내부의 중요 현안 몇 가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다양한 분야의 소방인들을 한데 묶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안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소방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그동안 학문이나 이론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연구와 정책들이 현장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소방공무원을 비롯해 군 소방, 주한미군 소방서, 공항 소방대, 대형 산업단지 자체소방대, 직장 자위소방대, 의용소방대 등 현장을 중심으로 한 재난유형의 변화에 따른 수요와 공급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이런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소방청 국립소방연구원을 주축으로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한국소방안전원 등 소방대원들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의 협업도 필수다.

한편 최근 들어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 관계자들의 소방분야 참여도 활발해 지고 있다. '휴빛', '몽몽' 등 소방을 그리는 웹툰작가들이 등장했고, '119 REO'와 같이 일선에서 폐기된 소방장비를 업사이클링해 소방의 의미를 또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제품을 출시하는 사회적 기업들도 있다.
   
여기에 소방을 모티브로 한 토크쇼,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뮤지컬, 연주회, 연극, 영화제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SNS가 활발해지면서 온라인상에서 소방을 알리는 홍보물 또한 풍성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측은했고 안쓰러웠던 소방관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멋지고 믿음직한 모습으로의 변화를 알리기에 최적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기에는 소방청을 비롯해 일선 소방서의 턱없이 부족한 홍보예산이 걸림돌이다. 또한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문제도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많다. 오늘날의 재난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실천으로 예방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런 거부할 수 없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소방조직으로 하여금 다양한 분야에서 소방을 알리고 실천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적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비롯해 소방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폭넓게 아우르는 소위 '고객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적극적 행정의 일환으로 세련된 '전략적 파트너'를 구축해 가는 것이 바로 '소방관 국가직화'를 이끌어 가는 첫 번째 키워드가 아닐까 제안해 본다.

두 번째는 '현장지휘능력 향상'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기진작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근속승진'이란 제도는 그 순기능 이면에 '준비되지 않은 지휘관'을 양산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가령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20살에 소방공무원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딱히 일을 열심히 해서 진급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또 뛰어난 공적을 세워 특별승진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소방조직에 몸담고 있고 비리와 같은 큰 사고에만 연루되지 않는다면 근속승진이란 제도를 통해 대략 40대 중반에 소방경이란 계급에 도달하게 된다. 소방경이란 계급은 일선 소방안전센터를 책임지는 센터장으로 재난현장에서 초동지휘관이란 막중한 임무를 맡는 자리다.

효과적인 재난 대응은 단순히 계급이 아닌 경험과 전문성에 기초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참사'의 뼈저린 아픔을 경험하면서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준비되고 훈련된 지휘부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확인한 바 있다. 정부는 앞으로 2만 여 명의 소방공무원을 더 채용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방은 대략 8만 여명에 육박하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조직이 거대해 지는 것이 '소방관 국가직화'의 목표는 아니다. '소방관 국가직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자체별로 각각 달랐던 인력·장비·예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국민이 보다 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현장 전문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있다. 결국 현장 전문성의 시작은 경험 많고 유능한 지휘관 양성에 있다.

근속승진, 소방간부후보생 제도, 순환보직 등 현장지휘관이란 역할에 도달하는 길은 많다. 하지만 준비된 지휘관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철저하게 현장에서 시작해서 현장을 배우고 또 앞으로도 현장에 있고자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 경험과 기량에 의존하지 말고 보다 체계화된 시스템을 마련해 지금의 '현장지휘역량'을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키워드다.

세 번째로는 보다 촘촘한 '소방관 전문자격 기준'의 필요성이다. 필요한 이유는 소방대원들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하는데 있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출동하는 재난 중에서 구체적인 자격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분야가 몇 가지 있다. 산불화재, 화학사고, 항공기 화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웃나라 미국을 보면 재난을 세분화해 각각의 형태와 양상에 맞는 자격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운전면허시험 제도와 유사하다.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량을 운전하려면 운전면허증 취득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방대원 자격제도가 바로 이런 개념이다. 미국에서는 소방대원이 어떤 업무(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해당분야의 자격을 먼저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산불화재는 'Wildland Firefighter', 화학사고는 'Hazardous Materials Awareness, Operations, Technician, Incident Commander, HAZMAT Safety Officer, HAZMAT Officer', 그리고 항공기 화재는 'Airport Firefighter'란 이름으로 자격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단순히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형 소방대원 자격제도는 각각의 재난에 맞는 이론과 실습을 통해 '준비된 자신감'을 배양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국산업안전보건법상'의 종사원, 즉 소방대원이 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두 가지 목표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는 소방관 정신건강, 그리고 암.심장질환과 같은 직업병에 관한 연구와 정책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소방공무원 질병 상담 콜센터 브로슈어 (사진: 대구광역시 소방본부) ⓒ 대구광역시 소방본부


소방관이 자주 경험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소방관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현장 활동이나 훈련을 통해 발생하는 각종 암 질환.심장질환은 소방관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들이다.

미국소방에는 이미 '암 추정법', '소방관 암 등록법'을 비롯해 충분한 통계자료와 관련법이 만들어져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분석해서 공무원 연금공단, 법원,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소방관 공상 및 순직에 대한 명확한 기준 해석, 향후 예방 및 보상대책 마련 등 국가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매번 암이나 심장질환으로 소방대원이 순직할 때마다 해당 소방관이나 그 유가족이 원인을 직접 규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고리의 사슬을 이제는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

'소방관 국가직화'가 이제 곧 시험대 위에 올라선다. 소방의 임무가 곧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로 직결되어 있는 만큼 소방의 현장 전문성이 곧 국가 안전서비스의 품질로 평가받는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소방의 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내적인 문제도 잘 살펴 안과 밖이 탄탄한 진정한 '국민안전의 버팀목'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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