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속 쓰리게 만든 기자의 말... 그 후 얻은 깨달음
[염치주의] 그는 왜 거제도 '거미새 라면집'에 제일 실망했을까
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 1996년 9월 6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백종원 대표 인터뷰 기사. 당시 그는 목조주택 자재 공급부터 시공까지 모두 진행하는 회사 '다인'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 매일경제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그의 왼손에 선글라스가 들려 있었다.
한 경제 일간지에 실린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24년 전 모습, 당당해 보였다. 그 때도 그의 직함은 사장이었다. "강남 논현동에서 유명한 '원조쌈밥집' 창업자"이자, 한 해 50억 원가량 매출액을 올리는 회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자재 공급부터 설계와 시공까지 모두 하는 주택회사 사장임을 상징하듯, 그는 오른손으로 설계 도면과 펜을 함께 쥐고 있었다.
"그 기자가 지나가는 말로 '설마 망하시는 건 아니죠? 취재만 하면 망하는 분들이 꼭 있어서요'하며 농담을 던졌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아직도 그 기자의 말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물론 내가 망한 것은 절대 그의 탓이 아니지만." (2010, 백종원,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 중에)
그의 책들에서 꼭, 그것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
그 후, 백 대표가 운영했던 주택회사는 IMF 시절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책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란 책에서 "그 때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전한다. "아, 식당이라는 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게에 있는 게 재밌어야 되는구나." 그리고 쌈밥집 운영에만 '올인'했다고 한다.
앞서는 "식당 사장이라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식당을 한다고 알게 모르게 천대를 받고 만만하게 보이던 시절"이었고, "사회에서 인정할 만한 번듯한 일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백 대표는 "(목조주택) 사업이 잘 되자 그 식당을 유지한다는 현실도 부끄럽게만 여겨졌다"며 "그때부터 눈에 띄게 식당 일을 등한시했다"고도 회고한다. 그런 마음을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이란 책에서는 일종의 최면으로 표현했다.
"그동안 '나는 특별한 인간'이라는 최면에 걸려 살아왔는데, 그 최면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역시 나도 별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너무나 막막했다. 그렇지만 도를 닦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품었던 모든 욕심을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 깨달음이 곧 그의 식당 운영 철학이다.
실제 백 대표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가 욕심이다. 그는 "식당을 만들면서 모든 소비층에게 만족을 주려고 하면 안 된다"며 "길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손님으로 잡겠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했다. 식당 분위기를 만들 때도 "절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욕심"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돈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에서도 그는 "식당 일을 즐기면서 내 인건비 정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보다 더 욕심을 부리면 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백 대표는 "식당이 잘 되고 손님들도 많이 들어오면 안정적으로 식당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마진율을 줄이고 재투자를 해서 손님들에게 이익을 돌리라"고도 권한다.
▲ 2019년 1월 6일에 방영됐던 SBS <골목식당> '청파동 하숙집 골목 편' 중 한 장면. ⓒ SBS
백 대표가 '거미새 라면집'에 가장 실망했던 이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줄곧 그가 강조하는 조언의 핵심 역시 그렇다. 2019년 1월 방영됐던 '청파동 하숙집 골목편'에 등장했던 회냉면 집 사장 부부와 나눴던 대화가 그 예다. 백 대표의 극찬으로 첫 방송 후 관심이 집중된 그 곳에 손님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손님 욕심을 안 내니까 서서히 (매출이) 올라가더라"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방송 나가면 사람이 엄청 올 건데, 그러지 말고 테이블 차라리 빼시는 게 낫다. 이 집의 회냉면은 정말 맛있어요, 제대로 숙성돼서 잘 익은 회 무침에 제대로 하면. 딱 두 분이 정하세요. 50그릇이면 50그릇, 60그릇이면 60그릇, 그렇게 해서 써 붙이세요. 당분간 몇 그릇만 팔겠다고 해서, 딱 두 분이 정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딱 그거까지만."
지난 1일 방영된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 긴급 점검 편'에서 백 대표는 '도시락집'에 가서 "세 가게 중 제일 실망감을 준 가게"라고 말했다. 과거 방송에서 '거미새 라면'이란 메뉴로 화제가 됐지만, 방송 이후 '만원 이하는 현금 결제를 요구한다'거나 '1인 1라면 주문을 원칙으로 하더라'는 방문 후기가 많았던 곳이었다. 긴급 점검에 나선 백 대표는 사실 관계부터 확인한 후 이렇게 묻는다.
"그게 말이나 되냐고. 욕심 때문에?"
그는 "진짜로,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았냐"면서 다시 강조한다. "진짜로, 제발, 욕심부리지 마시고, 초심 잃지 마시고, 좀 멀리 내다보시라"고. "오는 사람들 6개월, 7개월, 길어야 1년이면 다 바닥 드러나니까, 그 때부터 진짜라고 그러지 않았냐"고 백 대표는 거듭 말한다.
이렇듯 욕심에 대한 절제가 '백종원 솔루션'의 기본 바탕이다. 그 바탕이 단단하지 않으면, 욕심을 줄이고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게끔 하는 그의 시스템이 훼손될 가능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가짐... 염치
▲ 지난 1월 1일 방영된 SBS <골목식당>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 긴급 점검 편'의 한 장면. ⓒ SBS
그럼 백 대표가 강조하는 대로 욕심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쉽지 않은 일에 대한 답의 일부가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머리말에 나와 있다. 백 대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대중들의 취향도 달라지기 마련이고, 식당 경영 방식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렇게 강조한다.
"'한결같이 내 가게에 와 준 손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염치'와도 통한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에 욕심을 누르는 힘이 있어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치를 갈고 닦으면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는 대목이 수 차례 등장한다.
남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를 일컬어 흔히 '파렴치(破廉恥)하다'고 한다. 욕심을 누르면 보이는 마음이 또한 고마움이다. 그래서 백 대표가 강조하는 '솔루션'의 기본은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염치가 있으면 흥하고 염치가 없으면 망한다.
[염치주의 연재 기사들]
01. 트위터리안 요시키, "프로매국노" 일본인을 만나다 http://omn.kr/1l32w
02. 수의사 김정호, '북극곰 없는 동물원' 꿈꾸는 동물원 수의사 http://omn.kr/1lgin
03. 판사 박주영①, 동사무소에서 판사는 부끄러웠다 "법에 무지하여..." http://omn.kr/1llj7
04. 판사 박주영②, "역사는 디스코 팡팡 같아... 진보와 염치는 한 몸" http://omn.kr/1llmq
05. 배우 김남길, "이젠 저도 건물주 됐으면 좋겠어요" http://omn.kr/1lnfz
06. 가수 아이유, 이것은 팬레터입니다, 수신자는 '아이유' http://omn.kr/1lp5s
07. 심리학자의 분석, 조국-나경원 욕먹는 각각의 이유 http://omn.kr/1lpop
08. 대학생이 꼽은 '염치없는 교수', 세 가지 유형 http://omn.kr/1lqfx
09. "전두환, 황금 가면 쓴 최고 철면피 3위" http://omn.kr/1lvpk
10. 염치는 전염된다... 친일인명사전으로 옮아간 부자의 염치 http://omn.kr/1m10c
11. 조선왕조실록 2067번 등장하는 염치, 역사학자 이덕일의 해석 http://omn.kr/1m9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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