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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와주세요"... 작가 모시려 '떼샷' 찍는 사람들

[상주작가의 서점에세이 22] 조금 특별했던 서점을 기억하며

등록|2020.02.15 17:06 수정|2020.02.15 17:06
2019년 8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기자말]

▲ '글 쓰는 나'와 '책 읽는 나'를 발견한 선생님들에게 선물한 최민석 작가님 글쓰기 강연회 ⓒ 이현웅


후회하는 사람들은 티가 났다. 나는 상주작가로 일하는 전북 군산의 한길문고에서 그런 사람들을 목격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끝내 다른 길로 와 버린 사람들. 자기 이야기를 쓴 책들 앞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해 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해서 생기는 후회는 뒤끝이 기니까. 환절기 감기처럼 때가 되면 찾아오니까.

"내 이름으로 쓴 책을 출간하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바람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게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다. 포기하지 않고 쓰면 글은 갈수록 진솔하고 문장은 깔끔해진다. 에세이 쓰기에 참여한 분들의 글은 1년도 안 돼서 오마이뉴스, 월간지 등에 실렸다. 좋은 글이라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덩달아 나도 행복했다.

'옛날에 책 좀 읽은 사람들'도 한길문고로 불러 모았다. 아이들 키우느라, 직장에 다니느라, 노안이 오는 바람에 멈춘 독서를 '한길문고 북클럽'으로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에세이와 소설을 읽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 쓴 작가님은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나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책을 들고 단체로 찍은 인증사진을 보내며 군산에 와줄 수 있느냐는 섭외 전화를 걸었다.

몸은 거절 당하기 직전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움츠러든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에게, 그것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군산의 동네서점에 와 달라는 섭외 전화를 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작은서점 강연회에 오시는 분들은 책을 즐겨 읽고, 글을 쓰고,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은 분들이에요. 상주작가인 저는 그분들한테 선물하는 마음으로 이 강연을 기획했고요. 저희가 작가님 책 중에서 미리 읽었으면 하는 책도 추천해 주세요."
  

▲ 군산 우리문고에서 진행한 심윤경 작가님 강연회. ⓒ 배지영


군산에 강연 와서 하루 이틀 묵어가는 작가들도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설이>를 쓴 심윤경 작가는 원도심에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려고 느린 기차를 타고 왔다. 군산 동네서점에 관심을 갖고는 '상주작가의 서점 에세이'도 읽은 모양이었다. 글에 나온,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택시 기사' 이중근님을 한 눈에 알아봤다. 그날 이중근님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책 이상을 파는 곳

서점은 상품을 사고 파는 곳. 그러나 군산의 동네서점은 상점 이상이었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데 모이면서 길을 만들어갔다. 십대 시절의 꿈을 되살린 이복희님은 한국문인협회의 시인이 되었다. 막연히 꿈꾸던 문학의 세계를 노년에야 만난 이숙자님은 글쓰기 플랫폼과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서 삶의 보물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암 투병 중인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황금련님은 한길문고의 단골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 언제 나와?"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서점 행사 일정도 황금련님에게 묻는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유치원생 아들과 초등생 딸 둘이랑 서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오는 박효영님은 말했다.

"짜장도 좋고, 짬뽕도 좋은 저란 사람. 저도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되고, 그 시간을 선택하고, 마음껏 즐기며 꿈꿨습니다. 책에서 읽고 강연에서 들은 것을 서로 나누며, 쓰는 사람으로 지낸 시간들에 감사합니다. 더욱 취향을 존중하고 유지하며 살아보겠습니다."

에세이 쓰기에 참여한 분들은 책을 서로 추천했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읽은 배현혜님은 '쓰고 읽는 것이 쌓이면 내 감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 기복에 덜 휩쓸리고, '자기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쓸 때 느끼는 쾌감'을 알게 되어서 계속 쓴다고 했다.

세 딸을 기르면서 읽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윤주님에게 책을 쓴 작가는 연예인. 빛나는 별과 같은 작가들을 동네서점에서 스무 번도 더 만난 이윤주님은 항상 처음 같았다. 책 표지로만 본 작가의 실물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건 신기한 경험이라면서 해맑게 웃었다.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참여한 작가 강연회 때, 울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서 곤혹을 치렀던 문미숙님은 어떻게든 동네서점에 오려고 애를 썼다. 직장 생활한 지 20년 넘은 그는 당당하게 반차를 내고 서점에 오고 있다.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알게 됐다면서 '나는 글 쓰는 사람, 고급 독자가 되고 싶다'는 정체성을 드러냈다.

나는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에게 배운 대로 고속버스터미널로 작가 마중을 나간다. 점심시간이 겹치니까 밥도 같이 먹는다. 서울에서 오신 남상순 작가는 이 태도를 '오직 책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선의'라고 했다. 동네서점에 강연회를 들으러 온 독자들을 보고는 '문학이 죽지 않고 살아서 제대로 기능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서점에 모인 사람들은 각각 10여 명 가량이었다. 군산에서의 책 읽는 분위기는 분명히 내가 어렸을 때 책을 경외시하고 갈망하던 그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무조건 기분 좋고 희망적이며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산의 독서 분위기는 계속되어야 하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고 쓰는 사람들 덕분에 서점도 활력을 얻었다. 특히, 군산의 또 다른 책방인 예스트서점은 주로 참고서를 팔아 월세를 냈다고 한다. 서점이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단행본 판매는 부업에 가까운 서점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인 현대중공업과 지엠대우가 떠나면서 서점의 매출은 확 줄었다. 예스트서점 이상모 대표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백서에 이렇게 썼다.
 
"서점 밥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작가 초청 강연회라는 것을 해봤다. 서점이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동네 사랑방도 되고, 초보 글쟁이들의 토론장이 되고, 선배 글쟁이들과 만남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어쩌면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만 존재했던 책방을, 이제는 실제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 "내가 읽은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원합니다." 한길문고 북클럽. ⓒ 배지영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동네서점에 모였다. 200자 백일장 대회,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시 낭송 대회 등을 했다. <섬에 있는 서점>에 나온 문장을 기억하며 같이 읽었다. "내가 읽은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원합니다. 나는 당신이 그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는 2월 29일. 서점에 상주하는 작가에게는 월급을, 동네서점에는 작가 강연료와 대관료를 지원해주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끝난다. "우리, 이렇게 헤어지는 거예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끝에 다다르니까 담대해 보이는 사람들마저 반신반의한다. 동네서점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닦고 다시 단정하게 책상 앞에 앉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읽고 쓰는 사람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 카페 이야기를 쓰는 이현웅 선생님이 한길문고에서 연 강연회 ⓒ 배지영


고마운 분들

상주작가로 지내면서 귀한 분들과 함께 즐겁게 읽고 썼습니다.

영국 여행기를 완성한 김유림님, 이주노동자의 말을 너무나도 잘 알아듣는 이수영 님, 동화를 쓰는 이은미님, 쌍둥이 손주들을 돌보면서 글을 쓰는 지연임님, 월간지에 글이 몇 번이나 실린 박모니카님, "나도 글 쓰는 여자야"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서경숙님, '세바시' 섭외 전화를 기다리는 김준정님, 일관되게 모범적으로 글을 쓰는 신은경님, 재테크 과정을 생생하게 쓰는 박태정님, 일상의 소중함을 쓰는 김성희님, 개성 넘치는 두 아들과 캠핑 다니는 유은미님, 사랑하는 남편과 삶을 잘 꾸려가는 이순화님, 카페 이야기를 써서 사랑과 악플을 동시에 받은 이현웅님, 학교 졸업하고도 늘 공부하는 김완순님, 곧 그림책 서점을 여는 이지연님, 단 한 편의 글로 사람들을 울린 강윤희님, 노년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준 이숙자님, 그토록 원하던 시인이 된 이복희님, 울고 웃는 걸 동시에 잘하는 문미숙님, 이제 군산 사람 다 된 배현혜님, 해루질의 세계를 알려준 오은희님, 사춘기 세 딸을 '모시고' 와서 서점을 빛내준 이윤주님, 괜히 의지하게 되는 박효영님, 특별한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금련님, 한 방에 브런치 작가로 합격한 전은덕님, 친구 따라 서점 와서 책을 좋아하게 된 고숙경님.

언젠가 탑처럼 쌓여있는 여러분의 책을 서점에서 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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