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낼 땐 언제고, 관광하자고?"... '기생충'에 기생하는 자들
정치권 및 지자체의 과한 마케팅에 영화계 우려의 목소리
▲ 고양 아쿠아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영화 <기생충> 세트 모습 ⓒ 고양시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면서 촬영지 및 세트장이 있는 각 지자체와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대구에서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영화적 의미와 동떨어진 마케팅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화가 비추고자 했던 사회 모습을 간과한 채 이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구시는 자유한국당 총선 출마자들이 잇달아 봉준호 생가터 복원과 영화의 거리, 동상, <기생충> 조형물 설치, 봉준호 명예의 전당, 기념관, 공원 건립 등의 공약을 내걸고 있는 중이다. (관련기사 : 대구에 기생충관 설치? 돌변한 한국당에 "숟가락 얹지 마라" 일갈)
서울시는 <기생충> 촬영장을 활용한 팸투어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서울시 관광정보 사이트를 통해 <기생충> 촬영에 활용된 장소들을 탐방코스로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촬영장소가 있는 서울의 구청들도 관광명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경우 촬영지를 관광지로 활용하려는 모습은 일반적이다. 일례로 영화 <1987>에 나오는 '연희네 슈퍼'는 목포시가 촬영 장소를 그대로 보전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중이다.
블랙리스트 만든 자들이... "사과할 줄 알았는데"
<기생충>을 활용한 마케팅에 영화계 인사들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은 본질은 외면한 채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봉 감독 및 영화계를 탄압했던 정치세력이 보이는 뻔뻔함도 불편함을 키우고 있다.
▲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이 졸업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한 영화인은 "적어도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주목받게 되면, 정부나 정치권은 그동안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시행했던 공무원들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유야무야 지나간 징계를 다시 짚어본다거나, 혹은 스스로 방관자였음을 반성하는 메시지라도 올리며 지난 과거를 사과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온 세계에 까발려진 한국의 기형적 주택 소유 구조와 반지하에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탁상행정을 돌아보고 긴장한다거나,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태조사라도 실시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며 "그런 고려는 없고 창피함도 모른 채 누군가의 가난까지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왜 부끄러움은 항상 우리 몫인지,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한 중견 감독도 "영화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언어와 세계가 보편타당한 언어로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 것을 축하하고 감격하는 동안, 그의 수줍음과 겸손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온갖 패악질들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영화인들은 "딱 이 정도만 기뻐하면 좋겠다"며, "후광효과로 영화산업이 커지고 관심이 많아지는 정도면 고마울 뿐"이라는 반응이다. 또한 블랙리스트로 영화계를 탄압했던 자유한국당 등의 행태에도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대구의 한 영화인은 "사회 비판적 작품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던 자들이 너도 나도 숟가락을 얹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며 "좌파로 낙인찍고, 지원 대상에서 빼라고 하고, 영화 틀지 말라 하고 이런 작태에 대해서는 반성도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반대했던 자들이 생색을..."
▲ 고양 아쿠아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영화 ‘기생충’ 세트 모습 ⓒ 고양시
공무원들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지적도 나온다.
고양 아쿠아스튜디오 건립에 실무적 역할을 맡았던 한 영화 프로듀서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스튜디오를 만들었으나 핵심 역할을 했던 공무원은 타부서로 발령났고, 나는 공무원과 대판 싸운 후 다른 사정으로 그만뒀다"며 "유휴시설 재활용사례 전국 1등을 해 고양시가 포상금을 받자 그때 가장 반대했던 기관, 공무원, 집단들은 다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더라. 기회주의자들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차라리 늦었지만 당시 스튜디오를 만든다고 고생했던 사람들이 표창이나 승진이 됐으면 한다"며 "그래야 귀감이 돼 더 잘 될 수 있지 불이익을 당하고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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