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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시인 장석주 '마흔의 서재'를 읽고

등록|2020.02.17 16:01 수정|2020.02.17 16:13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

일자리를 구하고 이력서를 쓰던 시절, 수없이 받아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엄마'였다.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과 끈기로 나를 키워주신 분이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업을 위해 관심 없는 유명인을 존경한다고 거짓을 담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니 존경은커녕 좋은 스승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좋은 선생님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지만,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니 더욱 어려워졌다.

살다 보면 살아가기에도 벅차고 그저 해야 할 일만 하며 버티는 시기가 오는데 아마도 마흔이 그 즈음 되나 보다.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룬 건 없고, 돈을 좇으며 살아온 건 아니니까 가진 것이 적은 게 당연한데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 작아진다. 방향을 잃으니 점점 여유를 잃게 되고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가 바로 지금인가 보다.

젊디 젊던 시절에는 열정과 패기로 도전하면 뭐든 못 이룰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체력도 떨어졌고, 나의 한계도 알고 있다. 남을 돌보기보다는 내가 살아남는 게 먼저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바라볼 의지가 내겐 없다. 나의 마흔은 남들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나 허무해진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보지만, 선택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동안 마음먹은 대로 살아왔던 것,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내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어른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교육 관련 기관에서 일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업무의 패턴을 읽고, 적절한 대응이 가능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느끼는 시기가 되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업무는 괜찮은데, 과연 나도 괜찮은 걸까? 언제까지 계속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머물러있는 것이 곧 도태되는 중인 건 아닌지, 새로운 앎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학원이나 평생교육기관을 찾아다녔다. 인생학교도 좋았다. 하지만 생계가 아닌 일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이는 건 부담이 된다. 생각하는 만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 나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새로운 스승님을 만나는 기분으로 새로운 책을 읽는다. 지식, 상식 습득뿐 아니라 넓은 세상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책은 나의 스승이다. 그리고 최근 좋은 스승 한 분(!)을 만났다.

작가 장석주가 신간을 출간했다. 온전한 신간은 아니고, 8년 전에 출간했던 책을 출판사만 다르게 새로 내었다. <마흔의 서재>라는 제목의 책으로 저자 자신이 마흔을 맞이하며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도덕 선생님 같고 온화한 어르신 같은 말투는 나와 같은 나이 '마흔'에 이 책을 쓴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스승님'의 조언 같은 글이 담겨있다.
 
  <마흔의 서재>는 물안개 자욱한 새벽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로 나가 써 내려간 그 시절의 조촐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때 찾아 읽은 책과 나를 품었던 서재는 나의 피난처이자 은신처였다. 갈매나무 한 그루 품지 못한 채 마흔에 불시착한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꿈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망과 의혹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깨어 있을 땐 숨결을 가지런하게 하고 밤에는 작은 꿈들을 꾸며 고요하게 살기. 마흔의 서재(7)-작가 서문 중에서


시인 장석주와 첫 만남은 2017년 <은유의 힘>이다. 시와 같은 함축적인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분석을 즐기는 내게는 다소 어려운 책이었지만, 특별함이 느껴져 '다시 읽기 책장'에 꽂아두었다.

두 번째 책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는 작가 부부인 장석주 박연준이 함께 쓴 책일기로 한쪽엔 부인의 글이, 한쪽엔 남편의 글이 담겨있다. 나는 장석주가 소개하는 부분이 좋았고, 장석주가 책 속에서 소개한 <게으름의 즐거움>을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

게으름과 휴식에 대해 여러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엮은 것인데 2003년이라는 출간 연도 덕분인지, 프랑스인 특유의 개성인지 팍팍하지 않은 울림이 매력적이었다.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은 짧지만 의미가 담긴 글을 엮은 것으로 가볍게 필사하며 읽을 수 있었다.
 
꼬리를 이어가는 책읽기
1. 은유의 힘. 장석주. 다산책방. (2017)
2.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장석주. 박연준. 난다 출판사.(2018)
3. 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호미 출판사. (2003)
4.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쓰고 엮음. 추수밭 출판사. (2015)
5. 마흔의 서재. 장석주. 프시케의 숲. (2020)
6. 면벽침사록. 류짜이푸 지음. 노승현 옮김. 바다 출판사. (2007)

최근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 <마흔의 서재>를 읽게 되었다. 사색과 명상을 즐기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 마흔을 맞이하는 내게 울림을 주었다.

<면벽침사록>은 <마흔의 서재>에 소개된 책으로 이번에 새로 구입한 책이다. 책을 소유하는 것보다 도서관 대여를 즐기는 내가 소장하기 위해 구입한 몇 안 되는 책 중에 '게으름의 즐거움'과 '면벽침사록'도 속해있다. 책을 읽으며 징검다리 건너듯 장석주라는 사람의 글과 생각을 하나씩 쫓아가고 있었다. 장석주 작가는 나의 책 스승님이었다.

문득 나의 책장을 둘러보았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던데, 나의 책장은 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책상에는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책장에는 다 읽은 책들이 쌓여있다. 둘 다 내가 아니다. 장석주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2020년의 내 모습으로 책을 기록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에 온전히 집중해야겠다.
 
비가 내리는 풍경에 무심한 눈길을 주고 있는 이 순간, 그 순간들이 바로 삶이라는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이다. '나'란 존재는 바로 이 순간의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이 순간밖에 없는 삶은 없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작가의 블로그와 buk.io(북이오)의 채널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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