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창간 20주년 공모- 나의 스무살] 오마이뉴스와 함께한 '청춘 열전'
▲ 2003년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취재수첩 속에 내 추억과 열정이 묻어있다. ⓒ 이성훈
올해 스무 살이 된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것은 2003년이다.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후, 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취임식 참가자에 당첨돼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에 갔다. 대통령 취임식 현장 여정을 기사로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다녀온 다음 날, 수첩에 꼼꼼히 메모한 글을 바탕으로 취임식 여정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기사를 써보는 것이어서 4~5시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기사를 넘긴 후 이튿날, 혹시나 하고 <오마이뉴스>를 보니 사진기자들이 찍은 취임식 현장의 멋진 사진들과 함께 내 기사가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 오연호 대표가 쓴 책에도 내 에피소드가 실렸다. ⓒ 이성훈
첫 기사에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후 몇 차례 기사를 더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민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컴퓨터를 켜면 하루 종일 <오마이뉴스>를 보면서 글을 배우고 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민기자의 다양한 글이 메인에 오를 때마다 남모를 질투감과 부러움은 승부욕을 자극했다.
나는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여행 기사도 쓰고, 태풍 매미 현장도 다니고, 서평과 영화 이야기도 썼다. 하지만 기사는 좀처럼 메인을 장식하지 못했다.
워낙 쟁쟁한 시민기자들이 많았고, 스트레이트 기사가 뭔지 모르는 나로서는 '사는 이야기' 위주의 기사 쓰기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쓴 글이 번번이 생나무가 되면 실망감과 함께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시민기자에서 직업기자로
▲ 2003년 6월 열린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연수 자료는 훗날 내가 후배들을 가르칠 때 아주 좋은 교재로 활용되었다. ⓒ 이성훈
좌절된 분위기를 한 단계 끌어올려 준 계기는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시민기자 연수였다. 2003년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성남에서 열린 시민기자 연수에 참가했는데 '취재론'에서 '사회진출론'까지 14개의 강연과 기사 작성 실습, 분반 토론 등이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연수에서는 특히 김은혜 MBC 기자,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 양기대 동아일보 사회부 차장 등 현직 기자들이 전하는 '기자의 세계' 강연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이 연수 과정을 수료해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18기가 되었고 당시 연수 자료집은 훗날 내가 후배들에게 기사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재로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이후 <오마이뉴스> 기자클럽에 가입하면서 좀 더 깊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기자클럽을 운영했는데 나는 사회부에 선정돼 좀 더 깊은 취재를 할 수 있게 됐다.
▲ 2003년 기자클럽 활동 당시 받았던 오마이뉴스 기자증. ⓒ 이성훈
2003년 기자클럽에 선정되면서 받은 기자증과 명함 한 장이 지금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기자증 앞에는 'PRESS'와 'OhmyNews' 로고, 그리고 지금 외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청춘과 열정으로 가득한 20여 년 전 내 사진이 담겨있다. 기자증 뒤에는 소속, 이름, 주민번호, 유효기간 등이 쓰여 있는데 2003년 10월 19일부터 2004년 4월 18일까지 6개월 동안의 활동기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자클럽에서 끝까지 활동하지 못했다. 다음 해인 2004년 1월 지역 일간지가 창간하면서 기자로 채용됐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서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한 나는 그 경력을 인정받아 다음해 신입 기자가 아닌 경력 기자로 채용됐다. 그곳에서 1년 동안 활동한 후 2005년부터는 지역신문에 근무하면서 취재부장-편집국장을 거쳐 2018년을 끝으로 지역신문 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2019년 다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다가 지난해 하반기 아주 작은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며 다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인터넷신문 창간으로 잠시 <오마이뉴스>를 쉬고 있지만, 조금 자리를 잡으면 다시 <오마이뉴스>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수료증 ⓒ 이성훈
약 20여년 전, 기사가 뭔지 기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할 때보다, 현재 기자로 활동하면서 글쓰기에 더욱더 한계를 느낀다. 과거 시민기자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뉴스였다. 그래서 다양한 방면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20여 년 전에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는 세련미는 없을지라도 소재가 다양하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아 참신했다. 하지만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다시 돌아와 쓴 기사들은 십중팔구 스트레이트 위주고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 위주의 기사일 뿐, 독창성은 찾을 수 없다.
20년 가까이 기자를 직업으로 살아보니 사고방식이 '뉴스'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행정 위주의 소식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뉴스메이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사건·사고 등 전형적인 뉴스의 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이런 것은 뉴스가 안 돼!'라는 자기 검열이 창의력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말았다.
▲ 2003년 10월 한국언론재단 시민기자 전문연수 수료증 ⓒ 이성훈
그래서 요즘에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시민기자들의 수준과 전문성도 20년 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데다 내가 쓰는 글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마이뉴스>와 인연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내 청춘의 열정이 스며들어 있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자를 할 수 있었고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갓 서른, <오마이뉴스>를 접한 내 청춘은 어느새 마흔 중반을 훌쩍 넘었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을 하나둘씩 펼쳐보면서 나는 오늘 다시 한번 뜨거웠던 20여 년 전 청춘을 소환하고 있다.
앞으로 10, 20년 후 <오마이뉴스> 창간 30, 40주년에는 어떤 에피소드로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스무 살이 된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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