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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와 엘사의 교육 방식이 조조에게 통한 이유

[실시간 명작 리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

등록|2020.03.04 14:39 수정|2020.03.04 14:40

▲ 영화 <조조 래빗>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지난 2011년 처음 선보인 마블의 슈퍼히어로 <토르> 시리즈는 빛나지 못하는 캐릭터만큼, 상대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야기와 액션, 유머 어느 한 곳에 방점을 찍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토르>가 2017년 세 번째만에 빛을 발한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메가폰 잡은 <토르: 라그나로크>는 재밌어도 너무 재밌었다. 이내 이 영화는 토르 시리즈 최고의 흥행을 수립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2021년 개봉 예정인 토르 시리즈 네 번째 영화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왜 <토르> 얘기를 꺼냈나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토르>가 아니라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다. 그는 10대도 되기 전부터 연극활동을 시작해 독학으로 연출을 배웠다. 2004년 단편으로 데뷔한 그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단편과 장편 연출 및 각본, 본인 연출작 및 블록버스터 주조연으로 꾸준히 줄기차게 모습을 보였다.

그는 <토르: 라그나로크>(2017) 감독으로 낙점되어 시리즈 최고의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2019년엔 연출, 제작, 각본, 주연까지 도맡은 <조조 래빗>으로 제44회 토론토영화제에서 관객상, 제73회 영국아카데미에서 각색상, 제92회 미국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미국아카데미에선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히틀러와 친구가 되고 싶은 소년, 조조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시기의 독일이다. 조조는 아돌프 히틀러를 숭배하며 그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이다. 조조는 독일 소년단에 입단해 나치 독일의 최전선 요인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토끼 한 마리를 죽이지 못해 겁쟁이로 낙인 찍히고 급기야 '조조 래빗'이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 어김없이 히틀러가 나타나더니 용기를 불어넣는다. 호기롭게 선생에게서 수류탄을 빼앗은 뒤 달려나가 던지려는데 본인 앞에 떨어뜨리고 만다. 왼쪽 몸 전체에 흉한 상처를 입은 조조, 독일 소년단으로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된다.

다리도 절게 된 조조는 집에서 근신하다가 위층의 낌새를 눈치 챈다. 위층 비밀 장소에 몇 살 많은 소녀 엘사가 살고 있었던 것. 알고 보니 그녀는 조조의 엄마 로지가 목숨을 걸고 몰래 숨겨 주고 있는 유대인이었다. 조조에게 유대인이란 사람이 아닌 존재. 몇 번이고 그녀를 쫓아내고자 하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당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 조조의 굳건한 사상은 조금씩 금이 간다.

한편, 로지는 아들 조조와 정반대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의 사상과 활동이 심히 걱정되지만 막무가내로 무작정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조조를 이해하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 전쟁의 폐해와 자유의 소중함과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등을 자연스럽게 설파한다. 그런 와중에 조조와 로지는 위기에 봉착하고 로지에겐 큰일이 닥치는데... '조조 래빗'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풍자하다

<조조 래빗>은 내외견 상 많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색감을 보면 웨스 앤더슨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2013년작 <문라이즈 킹덤>이 와닿았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악의 소용돌이를 재밌고 활기차게 풍자했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2009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떠오른다. 또 한 편의 슬프고 환상적인 동화 혹은 우화를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로베르트 베니니의 1999년작 <인생은 아름다워>에 가닿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풍자한 동화라는 것이다. 거기에 타이카 와이티티 특유의 유머가 잔뜩 들어가 재미까지 보장한다. 때문에 호불호는 확실히 갈릴 듯하다. 2차 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전쟁과 아돌프 히틀러라는 최악의 독재자를 이리도 가볍게, 심지어 귀엽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견이 충분히 있을 만하다.

하지만 최악을 최악으로 전쟁을 전쟁으로 독재자를 독재자로만 묘사하는 건 최악의 전쟁을 일으킨 최악의 독재자가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 오히려 그것들을 하염없이 가볍게 묘사할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고, 그것들을 향한 진정하고도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아이들을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조조의 성장과 두 여인의 교육 방식

영화의 핵심은 조조의 성장이다. 그의 성장에 지극한 영향을 끼치는 두 여인이 있는데, 엄마 로지와 유대인 엘사다. 로지의 교육 방식은 모범이 될 만하다. 무조건 고쳐져야 할 사상임에도, 로지는 일방적으로 주입하며 매몰차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는 피교육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 교육한다. 이런 방법이라면 우여곡절이 많을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변하지 않을까.

엘사의 경우 상당히 파괴적이다. 유대인에 대한 조조의 생각과 행동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기에, 극단과 극단은 통한다는 식으로 그를 대한다. 완전히 반대되는 모양새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반복하면 머리나 마음보다 몸이 반응하는 법이다. 로지가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과 엘사가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대립하는 듯하지만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조조가 중요할 것이다. 그가 히틀러를 상상 속에서 친구로 불러들이는 건, 어린 아이라면 가질 만한 우상에의 로망과 다름 아닐지 모른다. 조조에게 히틀러는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 내지 아이돌이지 않았을까. 그는 히틀러'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히틀러가 또는 히틀러처럼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정치적 사명감도 없이 말이다. 하여, 로지와 엘사의 정치적 메시지를 쏙 뺀 교육 방식이 정확히 통했던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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