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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봐도 돼요?"는 옛말, 확 바뀐 반려견 산책 풍경

[코로나19가 반려동물에게 미친 영향] 개가 뛰노는 일상이 이토록 소중했다니

등록|2020.03.12 08:16 수정|2020.03.12 08:16
얼마 전에 재미있는 영상이 올라왔다. 강아지 두 마리를 소파에 앉혀 놓고 지금 왜 산책하러 나갈 수 없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라고, 상황이 이러하니 집중해서 들으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강아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제 잔소리가 끝나고 산책하러 나가는 건지 궁금할 뿐이다.

우리 집에도 대형견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있다. 고양이야 늘 집 안에 머무는 동물이지만 리트리버 여름이는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실외 배변을 하러 나가야 한다. 더불어 20kg가 넘는 이 큰 개를 아파트에서 조용히 키울 수 있는 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운동장에 나가 엄청난 활동량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여름이도 갑자기 산책하러 나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반려견이 당신의 재택근무를 좋아합니다
 

▲ 놀아주지 않으면 시무룩해지는 리트리버 여름이 ⓒ 박은지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인 나는 원래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아 코로나19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는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출퇴근하는 직장인인 남편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업무 특성상 완전한 재택근무는 아니지만 유동적인 출퇴근이 가능해져 가장 붐비는 시간을 피해 늦게 출근, 일찍 퇴근한다.

그러자 신난 것은 남편 바라기 여름이다. 고양이처럼 한 자리에서 조용히 노트북만 두드리는 나와 달리, 같이 산책하고 등산하며 활동적으로 놀아주는 남편을 여름이는 더 좋아한다. 평소에도 남편은 출근 전에 아침 일찍 여름이를 산책시키곤 했는데,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상황이 되니 아무래도 여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다.

아마 여름이뿐 아니라 최근 재택근무를 시작한 보호자를 둔 전국의 많은 반려견들은 속도 모르고 마냥 신이 났을 것이다. 보호자가 외출하지 않고 내내 곁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강아지들에게는 최고의 하루인 셈이니 말이다.

다만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긴 산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WHO에 따르면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은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증거가 없다고 해서 한숨 돌렸는데, 얼마 전 홍콩의 한 강아지에게 '약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행히 이 반려견도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보이진 않았으며 여전히 반려동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확산시킨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따라서 반려동물의 감염이나 반려동물로 인한 확산 가능성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최근 유명 수의사들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호자가 마스크를 끼고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하는 선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가는 편을 권장한다고 했다. 집에만 머무는 게 강아지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꼬박꼬박 외출해야 하는 대형견 보호자의 마음도 여러모로 썩 편치만은 않다.

우리의 일상적인 산책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일단 사람들과의 접촉은 최대한으로 줄였다. 예전에는 대형견과 산책을 하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말을 걸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어요? 만져 봐도 돼요?"

호의적인 얼굴로 관심을 보이면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드렸고, 여름이를 함께 쓰다듬으며 잠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다들 마스크를 끼고 최대한 빨리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안 나가도 걱정, 나가도 걱정

사실 건강한 젊은 부부인 우리에게 코로나19 자체가 극심한 공포로 와 닿지는 않는 편이다. 기저질환이 없고 면역력이 높은 이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하니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평소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 앞에 눕는 고양이부터 쓰다듬었던 우리도 지금은 마스크를 쓴 채 외출하고 돌아오면 즉시 화장실로 들어가 손부터 씻는다.

예방 수칙을 꼭꼭 지키려고 하는 건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동물을 만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꼭 동물의 감염이 걱정된다기보다, 서로가 묻히고 온 바이러스가 개나 고양이를 매개로 서로에게 감염될 수도 있을까봐 조심한다. 이런 자그마한 생활 습관 변화가 매 순간 우리가 불안한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코로나19가 반려동물에게도 감염되는지 궁금해 하는 보호자들에게 '사람이 문제지, 동물이 걸리는 게 대수냐'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실제로 반려동물에 대한 우려나 고민을 꺼내놓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사람과 반려견의 관계는 그렇게 무 자르듯 별개로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가장 밀접한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반려동물의 상황은 내게도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동물의 사정은 곧 사람인 나의 사정이 된다. 사람보다 동물을 더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 자체를 하나의 인간 유형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보니 우리 부부의 건강만큼이나 강아지와 함께 지내며 생기는 문제들을 오히려 구체적으로 걱정하게 된다. 강아지가 병에 걸려 아파도 걱정, 혹 강아지가 산책하다 누군가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걱정, 강아지에게 묻은 바이러스가 집 안으로 들어올까 걱정이고, 혹 우리 부부가 둘 다 아프기라도 하면 집에 남은 동물들은 누가 돌봐주나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중국 우한에서는 갑자기 도시가 폐쇄돼 홀로 남은 동물들도 많다고 들었다. 반려동물은 결국 사람의 사정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빈집에 들어가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뜻하지 않게 버려진 동물들은 영문 모르고 가족들을 기다렸을 테고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보호하고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봄이 오고 있다 
 

▲ 햇살 속에서 뛰노는 게 제일 행복한 여름이 ⓒ 박은지


이번 주말은 이 와중에도 봄이 한 걸음 다가온 듯 날이 좋았다. 모임은 최대한 자제하려 하고 있지만, 하루에 서너 시간도 끄떡없이 뛰어노는 에너지의 여름이는 며칠만 운동을 안 해도 답답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조금 망설이면서도 마스크를 챙겨 끼고 평소 자주 가던 반려견 놀이터에 나가봤다. 최근에는 영 사람이 없더니 다들 봄기운을 느꼈는지 그날따라 놀이터가 강아지들로 북적였다.

평소 반려견 놀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아주 쉽게 서로에게 말을 건다. 남의 강아지도 예뻐해주고, 같이 놀아주고, 허락을 받고 간식을 주기도 한다. 이제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서로 불편을 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이 다소 이질적이기는 하지만, 봄볕을 받으며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지켜보다 보니 별수 없이 긴장감이 풀려 곳곳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졌다. 해맑은 강아지들과 함께 사람들도 잠시나마 코로나19의 불안감을 잊는 듯하다.
   
봄은 강아지와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시민들이 한강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반려견과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누리고, 봄꽃과 함께 꽃처럼 웃는 강아지들의 사진이 SNS에 하나둘 올라오곤 하는 시기다. 겨우내 추위에 움츠리느라 줄어든 산책 시간도 대폭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올봄은, 지난해 여름에 입양한 여름이가 우리 집에 온 뒤 처음 맞는 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봄은 맘껏 꽃 구경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요즘이지만 서로를 눈빛으로 응원하며 이 시기를 단단하게 견뎌내길, 봄꽃 아래에서 뛰노는 개들을 보며 다 같이 크게 웃을 수 있는 때를 맞이하길 바란다. 그 당연한 교류가 이토록 소중한 일상이었는 줄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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