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2600원, 535일간의 세계일주가 끝났습니다
[세계방랑기 42] 마지막회, 찬란한 여행의 끝... 막막한 백수 생활의 시작
535일, 8만5899킬로미터
535일 간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 동안 8만5899킬로미터,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 방향으로 34개 나라를 여행했다.
예전에 했던 유라시아 여행까지 손꼽아 보니 모두 58개. 지구에 있는 200여 개 나라 중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숫자지만 내 인생, 내 나름의 세계 일주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마음먹었다. 집을 떠나 진리를 찾아 평생 길을 걸어간 싯다르타나 예수 같은 독한 방랑자들도 있었다는데, 어설픈 방랑자인 나는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교실 한 켠 세계 지도와 지구본을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 알록달록 분홍색, 초록색으로 그려진 낯선 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상상했다. 그때로부터 여러 십 년이 지나 기어이 지구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고 용기가 없어 미루고 늦췄던 여정이 굽이굽이 끝났다.
"안 죽고 돌아와서 고맙다. 앞으로 남은 인생 덤으로 산다, 생각하고 살아라."
강도를 만나고 전재산을 털리며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말했다. 내 몸에는 아직도 여행의 상처가 남아 있다. 왼쪽 관자놀이에는 콜롬비아에서 앓은 대상포진 자욱이, 오른쪽 복숭아뼈에는 에티오피아 강도가 남긴 흉터가 아릿하다. 친지들의 속을 꽤나 썩이며 때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기나긴 여정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이것은 여행인가 고행인가
2018년 5월, 사직서를 내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미국,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헝가리,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그리스, 터키, 조지아,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에 나오지 않고 이름도 없는 길들이 속세에 알려진 관광지보다 더 특별할 거라고 기대했기에, 비행기보다는 육로를 통해 이동했고 그러다 보니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나 지역도 여행할 수 있었다.
주머니는 가벼운데 가고 싶은 곳은 많아서 여비를 아끼고 아꼈다. 누군가는 궁상맞다 말할지도 모르지만, 남들 만큼 돈을 벌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좀더 많은 자유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왔기에, 가난한 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535일, 귀국행 비행기삯까지 포함해 12,113,000원을 썼다. 월급 80만 원을 받던 시절부터 반지하와 옥탑방에 살며 아등바등 모은 돈이고,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었다. 한 달 평균 68만 원, 하루 평균 22,600원. 10개월 동안 아시아 23,000킬로미터를 여행할 때는 한 달에 30만 원이 들었는데,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는 이동량이 세 배 이상 많고 아시아 여행보다 물가가 비쌌다.
5천 만 인구 중 2,800만 명이 매년 해외로 나가고, 세상 모든 여행지가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2020년 대한민국의 여행 문화와 조금 걸맞지 않게, 나는 '거지 여행자'라거나 '나그네'라는 이름이 꽤 어울리는 모습으로 지구를 떠돌았다.
한 장 있던 청바지는 1년 6개월을 입어도 쉬이 찢어지지 않았다. 반바지 두 장, 셔츠 세 장, 팬티 두 장. 20달러짜리 텐트와 침낭, 카메라와 삼각대, 손톱깎이와 빨랫줄 따위 잔잔한 생활용품까지 모두 담은 배낭은 9킬로그램. 장기 배낭 여행자치고는 가벼운 편이지만, 땡볕 아래 십 리만 걸어도 인생의 무게 마냥 무거웠다.
대상포진에 걸린 채 수면 마취제 강도를 당한 다음부턴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돌보자고 되뇌었지만, 웬만해선 어딜 가든 가장 저렴하고 낡은 교통수단과 숙소와 식당을 이용했다. 넉넉한 삶이 항상 좋은 삶은 아니듯, 가난한 여행이 항상 나쁜 여행은 아니다. 무모하다고 할 만큼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쳤고 터미널 바닥에 드러누워도 쉬이 잠들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나면 활개치며 걷다가 지치면 번쩍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아리조나 사막, 니카라과 국경, 페루 해안, 파타고니아 골짜기, 보츠와나 등지에서 승용차와 덤프트럭, 오토바이와 나룻배까지 히치하이킹을 했고, 종종 호스텔 청소와 베이비시터, 영상 편집과 농장 일을 하며 숙식을 지원 받았다.
"여행 다니는 게 아니라 고행을 다니는 것처럼 보이네요."
동료 여행자가 염려해 주었지만, 몇 차례 사고를 당했을 때 말고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걸었고, 하루 하루 지구에서 살아가는 별별 사람들의 미소와 슬픔을 마주했다. 나는 스와힐리어나 아랍어도 못하지만 영어도 잘 못한다.
가난하고 말도 못하는 내가 살아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건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의 가없는 도움 덕분이다. 낯선 곳은 두렵고 여행자는 때로 위험에 처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나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험해진대도 의심과 경계보다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남자니까 그렇게 여행할 수 있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시렸다. 여성과 남성은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없는 위험이, 세계의 모든 곳에 매일 매일 존재한다. 일상의 여성 차별을 세세히 인식하고 저항하는 남성으로 살고 싶다.
대문도 열쇠도 없는 시골집에 사는 어머니 귀자씨는 머나먼 나라를 여행 중인 자식의 무탈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가는 손님들에게 밥을 대접했다고 한다.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꿈마저 잃었을 때, 동료와 친구, 여행기를 읽은 독자들이 든든한 밥값과 뜨거운 응원을 보내 주었다. 돌아보면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여정이었다.
세계 일주의 끝, 눈물 젖은 광천김
여행이 끝났다. 배낭 하나 메고 온 세상을 쏘다니던 여행자는, 순식간에 집도 직업도 없는 백수가 됐다. 전에 살던 서울 달동네 옥탑방은 사라졌고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서 13년 만에 고향 통영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생 집에 얹혀 살며 동네 도서관에 다니고 밥벌이와 사회생활을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 세 달 동안 일곱 군데 이력서를 썼다. 몇 군데는 서류 전형에서 광속 탈락, 몇 군데는 면접을 봤지만 똑 떨어졌다. 지구별을 통째로 품었던 마음이 금세 좀스럽게 쪼그라들었다.
돌아온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도 여행의 일부일까.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보일러를 잘 켜지 않는 추운 집. 겹겹이 옷을 껴입고, 나와 마찬가지로 구직 중인 동생과 마주앉아 인터넷으로 싸게 주문한 광천김과 김치로 밥을 먹다가 괜스레 울컥 처량함이 몰려왔다. 여행 때는 없어서 못 먹던 김과 김치인데.
서른일곱 살. 가난한 삼포세대, 밀레니얼 세대라지만 많은 친구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기르는 나이. 매우 매우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비교하게 되고 의기소침, 불안하고 막막해졌다. 인구 13만 명의 지방 소도시에는 친구도 또래도 없고, 상용직은 물론 아르바이트 자리도 드물다. 처참한 역병 코로나19 탓에 취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수입이 없으니 십 리 안팎은 걸어 다니고, 놀거리가 없으니 멧돼지와 노루를 따라 뒷산을 산책한다.
얼음이 녹고 쑥이 돋아나듯, 절망이 땅을 치고 나면 희망이 솟는 것은 자연과 생명의 힘일까.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돈이야 무슨 일을 해서든 벌면 되고, 친구야 살다 보면 만나게 마련. 세계 일주의 경험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 버리지 않고, 마음이 쭈그러들면 쭉쭉, 몸을 움직여 춤을 춰야지. 먼 옛날 각설이의 노래처럼, 죽지도 않고 굽이 굽이 돌아와 덤으로 사는 인생, 앞으로도 끝내 자유와 사랑을 찾아, 나만의 속도와 발걸음으로, 하루 하루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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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일 간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 동안 8만5899킬로미터,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 방향으로 34개 나라를 여행했다.
초등학교 교실 한 켠 세계 지도와 지구본을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 알록달록 분홍색, 초록색으로 그려진 낯선 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상상했다. 그때로부터 여러 십 년이 지나 기어이 지구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고 용기가 없어 미루고 늦췄던 여정이 굽이굽이 끝났다.
▲ 유최늘샘의세계방랑기세계 일주 여정을 표시한 지도. 미국 샌프란시스코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까지 이어진 분홍색 선이 아메리카-아라비아-아프리카로 여행한 535일 동안의 경로다. ⓒ 유최늘샘
"안 죽고 돌아와서 고맙다. 앞으로 남은 인생 덤으로 산다, 생각하고 살아라."
강도를 만나고 전재산을 털리며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말했다. 내 몸에는 아직도 여행의 상처가 남아 있다. 왼쪽 관자놀이에는 콜롬비아에서 앓은 대상포진 자욱이, 오른쪽 복숭아뼈에는 에티오피아 강도가 남긴 흉터가 아릿하다. 친지들의 속을 꽤나 썩이며 때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기나긴 여정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이것은 여행인가 고행인가
2018년 5월, 사직서를 내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미국,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헝가리,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그리스, 터키, 조지아,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에 나오지 않고 이름도 없는 길들이 속세에 알려진 관광지보다 더 특별할 거라고 기대했기에, 비행기보다는 육로를 통해 이동했고 그러다 보니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나 지역도 여행할 수 있었다.
주머니는 가벼운데 가고 싶은 곳은 많아서 여비를 아끼고 아꼈다. 누군가는 궁상맞다 말할지도 모르지만, 남들 만큼 돈을 벌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좀더 많은 자유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왔기에, 가난한 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535일, 귀국행 비행기삯까지 포함해 12,113,000원을 썼다. 월급 80만 원을 받던 시절부터 반지하와 옥탑방에 살며 아등바등 모은 돈이고,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었다. 한 달 평균 68만 원, 하루 평균 22,600원. 10개월 동안 아시아 23,000킬로미터를 여행할 때는 한 달에 30만 원이 들었는데,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는 이동량이 세 배 이상 많고 아시아 여행보다 물가가 비쌌다.
5천 만 인구 중 2,800만 명이 매년 해외로 나가고, 세상 모든 여행지가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2020년 대한민국의 여행 문화와 조금 걸맞지 않게, 나는 '거지 여행자'라거나 '나그네'라는 이름이 꽤 어울리는 모습으로 지구를 떠돌았다.
한 장 있던 청바지는 1년 6개월을 입어도 쉬이 찢어지지 않았다. 반바지 두 장, 셔츠 세 장, 팬티 두 장. 20달러짜리 텐트와 침낭, 카메라와 삼각대, 손톱깎이와 빨랫줄 따위 잔잔한 생활용품까지 모두 담은 배낭은 9킬로그램. 장기 배낭 여행자치고는 가벼운 편이지만, 땡볕 아래 십 리만 걸어도 인생의 무게 마냥 무거웠다.
대상포진에 걸린 채 수면 마취제 강도를 당한 다음부턴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돌보자고 되뇌었지만, 웬만해선 어딜 가든 가장 저렴하고 낡은 교통수단과 숙소와 식당을 이용했다. 넉넉한 삶이 항상 좋은 삶은 아니듯, 가난한 여행이 항상 나쁜 여행은 아니다. 무모하다고 할 만큼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쳤고 터미널 바닥에 드러누워도 쉬이 잠들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나면 활개치며 걷다가 지치면 번쩍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아리조나 사막, 니카라과 국경, 페루 해안, 파타고니아 골짜기, 보츠와나 등지에서 승용차와 덤프트럭, 오토바이와 나룻배까지 히치하이킹을 했고, 종종 호스텔 청소와 베이비시터, 영상 편집과 농장 일을 하며 숙식을 지원 받았다.
"여행 다니는 게 아니라 고행을 다니는 것처럼 보이네요."
동료 여행자가 염려해 주었지만, 몇 차례 사고를 당했을 때 말고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걸었고, 하루 하루 지구에서 살아가는 별별 사람들의 미소와 슬픔을 마주했다. 나는 스와힐리어나 아랍어도 못하지만 영어도 잘 못한다.
가난하고 말도 못하는 내가 살아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건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의 가없는 도움 덕분이다. 낯선 곳은 두렵고 여행자는 때로 위험에 처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나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험해진대도 의심과 경계보다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남자니까 그렇게 여행할 수 있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시렸다. 여성과 남성은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없는 위험이, 세계의 모든 곳에 매일 매일 존재한다. 일상의 여성 차별을 세세히 인식하고 저항하는 남성으로 살고 싶다.
대문도 열쇠도 없는 시골집에 사는 어머니 귀자씨는 머나먼 나라를 여행 중인 자식의 무탈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가는 손님들에게 밥을 대접했다고 한다.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꿈마저 잃었을 때, 동료와 친구, 여행기를 읽은 독자들이 든든한 밥값과 뜨거운 응원을 보내 주었다. 돌아보면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여정이었다.
▲ 지구별 사람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금속 공예점의 부부. + 미국 뉴욕 버스 터미널의 온두라스 이주노동자 가족 + 페루 쿠스코 악기 가게의 가족 + 코스타리카 산타크루즈 빈민가에서 나를 재워 준 가족 = 가난하고 말도 모르는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길 위의 사람들 덕에 행복하고 무탈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 유최늘샘
세계 일주의 끝, 눈물 젖은 광천김
여행이 끝났다. 배낭 하나 메고 온 세상을 쏘다니던 여행자는, 순식간에 집도 직업도 없는 백수가 됐다. 전에 살던 서울 달동네 옥탑방은 사라졌고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서 13년 만에 고향 통영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생 집에 얹혀 살며 동네 도서관에 다니고 밥벌이와 사회생활을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 세 달 동안 일곱 군데 이력서를 썼다. 몇 군데는 서류 전형에서 광속 탈락, 몇 군데는 면접을 봤지만 똑 떨어졌다. 지구별을 통째로 품었던 마음이 금세 좀스럽게 쪼그라들었다.
돌아온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도 여행의 일부일까.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보일러를 잘 켜지 않는 추운 집. 겹겹이 옷을 껴입고, 나와 마찬가지로 구직 중인 동생과 마주앉아 인터넷으로 싸게 주문한 광천김과 김치로 밥을 먹다가 괜스레 울컥 처량함이 몰려왔다. 여행 때는 없어서 못 먹던 김과 김치인데.
서른일곱 살. 가난한 삼포세대, 밀레니얼 세대라지만 많은 친구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기르는 나이. 매우 매우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비교하게 되고 의기소침, 불안하고 막막해졌다. 인구 13만 명의 지방 소도시에는 친구도 또래도 없고, 상용직은 물론 아르바이트 자리도 드물다. 처참한 역병 코로나19 탓에 취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수입이 없으니 십 리 안팎은 걸어 다니고, 놀거리가 없으니 멧돼지와 노루를 따라 뒷산을 산책한다.
얼음이 녹고 쑥이 돋아나듯, 절망이 땅을 치고 나면 희망이 솟는 것은 자연과 생명의 힘일까.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돈이야 무슨 일을 해서든 벌면 되고, 친구야 살다 보면 만나게 마련. 세계 일주의 경험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 버리지 않고, 마음이 쭈그러들면 쭉쭉, 몸을 움직여 춤을 춰야지. 먼 옛날 각설이의 노래처럼, 죽지도 않고 굽이 굽이 돌아와 덤으로 사는 인생, 앞으로도 끝내 자유와 사랑을 찾아, 나만의 속도와 발걸음으로, 하루 하루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유최늘샘의 세계일주535일,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나라별 사진 기록 ⓒ 유최늘샘
▲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돌아 한반도의 남쪽 끝, 나고 자란 고향 미륵섬에 돌아왔다. ⓒ 유최늘샘
#세계일주 #세계여행 #미국횡단 #중미여행 #남미여행 #아프리카종단 #여행기 #미니멀여행 #여행과일상 #해외여행안전 #백패커 #worldtravel #worldtraveler #backpacker #africa #southamerica
덧붙이는 글
-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여행기를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기사를 수정하고 배치해 주신 편집자께, 시민기자의 공간을 열어 준 오마이뉴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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