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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

등록|2020.03.20 09:41 수정|2020.03.20 10:01
남편 친구네 부부가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키우는데 이번에 심부전이 왔다고 한다. 병원비만 매월 수백만 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 나을 때까지 수술비에 투석비용 등으로 매달 그 돈을 써야한다는 얘기다. 정해진 기한도 없이 말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난 "치료한대?"라고 물었다. 남편 친구는 적지 않은 돈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아내가 현재 임신 초기라 정신 건강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끝까지 치료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 많은 돈을 어쨌든 반려동물 치료비로 쓸 수 있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나라면?" 나라면 우리집 고양이들에게 매달 수백만 원을 들여 치료하겠단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면 언젠가는 닥칠 병원비 폭탄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기에 당연히 사람 병원비보다 고양이 병원비가 더 비싸다. 아프지 않기 위해 평소 좋은 사료와 깨끗한 화장실 등을 통한 건강관리는 물론 1~2년에 한번 건강검진, 스케일링 등 소소하게 챙겨야할 것들이 많다.
 

▲ 우리집 고양이들. ⓒ 김혜영


우리집 고양이들은 수컷이라 신장 관련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서 물을 잘 마실 수 있도록 특별히 더 신경써야 했다. 콧숏 턱시도인 첫째 까망이는 고지혈증진단을 받아 지방 함량이 낮은 사료를 먹어야 하고, 콧숏 치즈태비인 둘째 천둥이는 크레아틴 수치가 높아 인 함량이 낮은 사료를 먹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고양이들이 혹시라도 아플까 봐, 그래서 너무 비싼 병원비 앞에서 내가 치료를 고민하게 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최선을 다해 입양 이후 8년 동안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 고양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남편을 슬쩍 떠본 적이 있다.

"내 지인이 고양이를 키우는데 이번에 병원비가 몇 백 만 원이 나왔대"라고. 그랬더니 자신은 절대 그 돈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나만큼 고양이들에게 애정이 없어서 각오는 했지만 막상 그 얘길 들으니 너무 속상했다.

그랬던 남편에게 이번 일을 기회로 몇 년 만에 다시 비슷한 질문을 했다. "여보라면 친구처럼 고양이 치료비로 그 많은 돈을 쓸 수 있겠어?"라고. 아무 기대 없이 물어봤는데 남편은 내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다. 예전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마음이 달라졌다고 한다.

고양이들을 제대로 치료도 못해주고 떠나보내면 내가 너무 마음 아파할 것 같으니 치료할 수 있는 만큼 해주라고 했다. 자기도 8년을 키웠더니 그래도 정이 들었다며 말이다. 언젠가 고양이들에게 큰 병원비를 써야할 일이 생기고 남편이 치료를 반대한다면 내 연봉을 병원비로 다 쓰겠다고 우길 생각이었는데... 많이 감동했다.

그런데 남편은 왜 마음이 바뀌었을까. 역시 친구 때문인 것 같다(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역시 사람은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둬야 하는구나 싶다. 나의 고양이들이 무병장수하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치료를 위해 큰 돈을 써야할 일이 있을 때 망설임 없이 치료를 결정하는 걸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어려운 결심을 해주면 좋겠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란 역시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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