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피곤한 밤 길로 쿠팡맨을 내몰아야 할까
소비자의 편리성과 맞바꾼 쿠팡맨의 죽음을 지켜보며
▲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18 ⓒ 연합뉴스
일주일 전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은 쿠팡맨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배송물량의 증가 탓도 있겠지만 동료 기사들은 쿠팡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본질적 원인이라고 꼽았다.
아침에 문만 열면 선물처럼 도착한 택배를 받아볼 때까지 무슨 과정이 있는 걸까.
쿠팡 측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코로나19로 급증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개인 택배 기사들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입사 후 트레이닝 기간에는 보통의 50% 정도의 물량만 배송하도록 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기사들은 신입도 베테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물량을 소화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 배송을 얼마나 빨리 하는지에 따라 계약 유지 및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다고 하니 비정규직 신분의 신입 쿠팡맨이 과연 적정 휴게 시간을 보장받으며 근무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쿠팡 노동조합은 한목소리로 새벽 배송을 중단하고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제 쿠팡과의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계약만 있고 사람은 없는 계약서를 바꾸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 택배를 받아 보는 소비자인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클릭 몇 번으로 하루 아침에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우리는, 그 편의성이 사실 누군가의 편의를 희생해서 얻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 우리는, 세상이 변하고 바뀌고 뒤집어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21세기형 전태일'을 마주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쿠팡에 있다. 사람 위에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일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시스템으로, 실제 근무 환경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고용주의 책임이다.
하지만 고용주가 그런 식으로 돈을 벌게 된 데에는 소비자의 도의적 책임도 있는 법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수요 없는 공급은 없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하루 아침에 새벽 배송이 나타난 게 아니고 왜 더 빨리 오지 않느냐는 소비자의 아우성이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새벽배송이 문제지만 사실 더 근본 문제는 소비자의 수요만 있으면 새벽배송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기업한테 돈 벌 궁리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회사는 다 하는데 너희는 하지 말라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소비자가 멈춰야 한다. 필요한 것은 사고 요구할 것은 하되 우리 역시 사람 위에 편의가 있는 게 아니라 편의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실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 정신이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한강의 기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속도만 봐도 그렇다. 다른 나라는 하도 검사를 못해서 확진자가 없다는데 우리는 줄 서서 검사 받는 시간도 줄이려고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진료소를 만들었다. '빨리 빨리'는 이유 없는 재촉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었고 이렇게 작은 나라를 '작지만 큰 나라'로 도약시킨 디딤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어디서나 '빨리 빨리'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빨리 지은 부실시공 아파트, 과도한 조기교육, 새벽 배송 모두 마찬가지다. 주거도 교육도 그리고 안전도 빨리 빨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조금의 기다림과 사람의 목숨을 맞바꿔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피곤한 밤 길로 쿠팡맨을 내몰아야 할까.
이번 일을 계기로 쿠팡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들 역시 우리가 소비자의 가면 뒤에서 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가면을 벗고 한 명의 노동자로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 위에 사람이 있고 싶은, 우리도 모두 또 다른 이름의 '쿠팡맨'이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