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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침 나왔지만... 확진자 동선공개, 여전히 제각각

지자체마다 연령, 방문장소명 등 공개 여부 달라... "인권 침해 줄일 정교한 기준 마련해야"

등록|2020.03.24 08:08 수정|2020.03.24 08:08
코로나19 확진자의 '신상털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최근 확진자 동선공개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세부 운영방식이 달라 여전히 공개 내용은 들쑥날쑥하다.

지난 14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 등을 감안해 코로나19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공개 대상기간은 증상 발생 하루 전부터 격리일, 대상은 확진자의 접촉자가 발생한 장소와 이동수단이다.

권 본부장은 "노출자의 신속한 확인, 동시에 공익적 목적, 사생활 보호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제외하고 거주지의 세부 주소나 직장명 등은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직장에서 불특정 다수 전파양상이 확인되는 등 대중에게 꼭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공간과 시간 정보를 특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들 '인권침해' 우려하지만... 현실은 들쑥날쑥
 

▲ 지자체마다 홈페이지에 코로나19 확진자 이동경로를 공개하고 있지만, 기준이나 형식이 제각각이다. 사진 왼쪽 구로구청은 확진자의 나이를 특정해 공개하지만, 은평구청은 연령대로 표시한다. 또 방문장소 이름을 여전히 공개하는 곳도 있고, ○○형태로 표시하는 곳도 있다. ⓒ 구로구청, 은평구청 홈페이지 갈무리


<오마이뉴스>는 새 지침이 주말 사이 지자체로 전달된 점,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한 대구시는 확진자 이동경로를 공개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3월 16~23일 추가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수도권 상황을 살펴봤다. 대상은 서울 16개 구와 경기 31개 시·군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다.

현재 지자체들은 주로 확진자의 ▲ 성별 ▲ 연령 ▲ 거주지 ▲ 교통수단 ▲ 방문장소 ▲ 마스크 착용 여부 ▲ 환자 이송·방문장소 방역 등 사후 조치 안내를 공개한다. 모든 지자체는 확진자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자택 주소도 행정동 정도만 밝혀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부내용은 제각각이다. 서울만 해도 강남구, 구로구와 관악구, 광진구, 노원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성북구, 송파구는 확진자의 나이를 ○○세라고 특정하고, 성동구와 동작구는 ○○년생이라고 공개한다. 반면 은평구, 강서구, 영등포구, 용산구, 양천구는 ○○대라고만 설명한다. 집 주소는 대부분 ○○동까지 밝히지만, 아파트의 경우 단지명을 공개하는 곳도 있다.

확진자 방문장소 공개 방식도 기준이 불분명하다. 군포시는 지난 20일 판정 받은 6번째 확진자가 방문한 식당 이름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성남시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은혜의 강 교회 신도, 32번째 확진자의 동선 중 농장 이름은 공개하면서 식당은 노출하지 않았다. 또 화성시는 12번 확진자가 들른 이발소, 식당 이름 모두 밝힌 반면 수원시는 알파벳 이니셜로 표시했다.

확진자의 이동 중 마스크 착용 여부도 서울 기초단체들은 대부분 밝혔지만, 경기도는 의왕시, 구리시, 과천시, 광명시, 남양주시, 시흥시, 하남시 정도만 공개했다. 또 용산구와 강남구는 확진자 자택과 방문장소, 교통수단 방역 여부는 물론 접촉자별 조치사항까지 상세히 공개했다.
 

▲ 고양시는 코로나19 확진자 이동경로를 공개하는 게시물 하단에 "누구나 코로나19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확진자와 접촉자, 그 가족들을 격려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고양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몇몇 지자체는 확진자 이동경로 공개의 취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포구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방역, 폐쇄 등 즉각적인 조치를 해 지역사회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친 추측과 비난으로 확진자 개인이 다녀간 곳이 심리적, 경제적으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구민 여러분의 격려와 따뜻한 배려를 당부 드린다"고 덧붙였다. 고양·시흥·용인·오산·화성시도 "누구나 코로나19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등을 동선정보마다 추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를 향한 날선 말들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수원시는 지난 13일부터 확진자 이동경로를 공개할 때 "수원시가 공개하는 정보와 상이한 내용을 작성 및 게시, 배포하여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해당 주체에 있음을 밝힌다"는 경고문을 추가했다. 관악구의 경우 "개인 신상에 관한 추측성 비난 댓글 등이 많아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같은 날부터 홈페이지 댓글 사용을 중단했다.

새 지침이 나오기 전에 공개된 정보들도 문제다. 의왕시 등 일부 지자체는 기존에 공개한 상호명을 수정하긴 했지만,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상점 이름이 그대로 담긴 게시물을 유지하고 있다. 또 평택시는 홈페이지 접속 첫 화면에선 확진일 기준 14일이 지난 1~5번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제공하지 않지만 23일 오후 3시 기준, 시청 보도자료 게시판에는 이들의 자료가 남아 있다.

"처음엔 무조건 공개... 인권 침해 계속 줄여나갈 기준 나와야"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너무 두렵고 공포스럽다보니까 '개인정보'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확진자 이동경로가) 무조건 공개됐다"며 "이제는 2차적인 인권 침해를 줄일 방법을 논의할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말하면 (확진자 동선 공개는) 과도한 개인정보 유출이지만, 감염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한 사회적 약속"이라며 "다만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본권 제한은 분명한 규정과 이유에 의해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사례에 따라, 감염 단계에 따라 구체적인, 그래서 인권 침해 소지를 계속 줄일 수 있는 정교한 기준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악성 댓글을 막거나, '누구나 코로나19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처럼 좋은 사례들을 정부가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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