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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습니다

일상으로 복귀, 현재에 충실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

등록|2020.04.01 17:10 수정|2020.04.01 17:10
 

▲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민 309명을 태운 전세기가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강원도 평창의 숙소에서 14일간 격리될 예정이다. ⓒ 권우성



봄이면 꽃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올해는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게 멈춰 섰기 때문이다. 이러니 지천으로 피어나는 봄꽃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새 학기를 맞았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었다. 생애 첫 입학이라는 설렘도, 긴 방학을 끝낸 기다림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관, 공연장, 경기장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남긴 흔적은 이처럼 패악스럽다. 뒤숭숭한 시절은 봄 같지 않은 봄을 지나 어느덧 잔인한 사월로 들어섰다.

코로나19는 이제 미국과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을 방불케 한다. 미국은 확진 환자가 1일 9시 기준 18만 명(18만 6265명)을 넘어섰고, 사망자(3810명)도 중국(3305명)을 앞질렀다. 이탈리아는 가장 많은 1만2428명이 숨졌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단일 재난으로는 최악이다. 급기야 지난 31일 이탈리아 전역에는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날 이탈리아는 일제히 조기를 게양하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스페인도 확진 환자 세계 3위(9만4417명), 사망자 2위(8189명)로 패닉 상태다.

코로나19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당장 군복무 중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애가 탄다. 장병들은 한 달 넘게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다. 휴가, 외박, 외출, 면회까지 금지됐다. 4월 학기 입학을 준비했던 일본 유학생들도 발이 묶였다. 일본 정부가 비자 발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유학생과 기업인, 현지 교포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도 어두운 대화로 채워졌다. "국제금융 위기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는 말에선 지독한 위기감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뭔가는 해야 하고, 일상은 유지되어야 한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습관처럼 맞았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운다. 무심코 지나쳤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다. 강제로 얻은 '멈춤'을 잘만 활용한다면 보다 나은 삶을 설계하는데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다행이다. 배우자, 자녀들과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버리면 심리적 거리는 줄어든다. 친구, 직장 동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다지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평소 소홀했던 이들에게 전화 한통, 문자 메시지라도 보내자. 느슨한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작은 정성으로도 충분하다.

나를 돌아보는 유용한 시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때문에 멀리했던 명상과 독서를 즐길 여유가 생긴 셈이다. 명상과 독서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내면을 채우는 통로다. 덧붙여 잘못된 소비 습관을 바꿀 기회다. 그동안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소비를 해왔다. 이미 소비 감소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오염원 배출이 줄면서 공기 질은 좋아졌다. 김준 연세대 교수팀은 2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초미세먼지 입자가 확연히 감소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한 달 전에 비해 27.3%, 중국도 337개 도시에서 27.3% 줄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결국 인류가 극복한 여러 위기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력이다. 정치도 그 일부를 담당해야 한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접고, 또한 여당은 야당을 동반자로 유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톨스토이가 쓴 <세 가지 의문>이란 우화는 일상으로 복귀에 필요한 지혜를 선물한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해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대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거창한 명분을 내려놓고 가까운 이들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가치라는 교훈이다.

미국 작가 '스펜서 존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선물>이란 책에서 "현재(Present)가 곧, 선물(Present)"이라며 지금에 충실하라고 권한다. 영어 'Present'가 현재와 선물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살아 있음이 곧 축복이라는 진리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현재 속에 살기. 지금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기다. 둘째, 과거에서 배우기. 보다 나은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라. 그리고 지금과 다르게 행동하라. 셋째, 미래를 계획하기.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멋진 미래를 설계하고 행동에 옮겨라. 역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침들이다.

다행히 우리사회는 일상으로 복원력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 SK가 공채를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동아일보는 창사 100주년을 기념한 행사 비용 6억 원을 기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기부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육군 장병들도 힘을 보탰다. 장병 3만8,167명은 최근 대규모 헌혈에 동참했다. 이 결과 1,526만㎖ 피가 모였다. 단일 기관 최단 시간 최다 헌혈 기록이다.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윈스턴 처칠은 수상에 취임하면서 "나에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게 없다"고 했다. 이런 각오라면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다.
덧붙이는 글 임병식 기자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소통위원(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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