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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가는 길도 막은 코로나19

"오지 말라"던 어머니가 보내온 반찬 세트

등록|2020.04.03 11:16 수정|2020.04.03 11:19
결국 도착했다. 엄마표 반찬 세트. 택배 아저씨의 알림 문자를 받고 출입문을 여니, 굵직한 상자가 놓여 있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신 물건이다. 상자를 연다. 미나리, 시금치, 양배추, 쪽파 등이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어머니가 도착한 반찬세트가 도착했다아버지 제사에 못가는 아들에게 오히려 반찬 보내는 어머니 ⓒ 조창완

  

우선 위에는 야채들로 무장위에는 고향 집에서 채취한 야채들이 채우고 있다. 고향 마을은 무농약 지역이라 무엇이든 귀하다 ⓒ 조창완


안을 보니 비닐마다 바리바리 싸놓은 반찬들이 나온다. 갓김치, 두 종류의 파김치, 깻잎 무침 등등. 그리고 말린 굴비 몇 마리와 양념 김, 참깨 가루와 들깨 가루 등등. 이 사태는 어제 아침에 예견됐다. 언제나처럼 어제 아침녘에 전화를 하신 어머니는 전날까지와는 달리 단호하다.

"창완아 아부지 제사때 오지 마라. 동네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그냥 큰누나랑 니 동생이랑 간단히 지낼란다."
 

어머니가 보내온 반찬들두 종류의 파지에 갓김치, 깻잎김치, 두 종류의 깨까지 다양하다. ⓒ 조창완


나 혼자라라도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그러마 했던 그전까지와도 다르다. 가장 방점이 찍힌 것은 '동네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다. 코로나19에서 그래도 가장 청정 지역인 고향 마을에 아무리 본토박이라지만 코로나19 환자가 많은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거다. 어머니의 결심이 묻어난다.

코로나19가 자식의 도리마저 막는 상황이다. 아버지의 기일은 음력 3월 보름. 올해는 양력으로는 4월 7일이다. 19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부는 땅을 팔아서 빚을 갚는 게 낫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히 반대했다. 적당히 자식들에게 상속을 하고, 논밭의 운영은 당신께서 맡는다고 했다. 그리고 3~4년도 되지 않아, 집안의 부채를 모두 정리하셨다. 이후에도 자식의 식량이나 반찬은 모두 책임지셨다.

지난해는 마을이 멀리 내다보이는 언덕에 새 집을 지었다. 아들 3형제를 비롯해 자식들이 나중에 외지에서 떠돌지 말고, 고향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신다는 뜻이셨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팔순 잔치를 여셨다. 어머니의 흥겨운 노랫가락은 19살에 시집 와서 일군 동네 들판까지 널리널리 퍼졌다.

그렇게 남편 없이 19년을 사셨다. 시집 온 후부터 창녕조씨 부제학공파의 종손 며느리로 한 점의 실수도 없었다. 1년에 9차례쯤 되는 제사를 하나하나 챙기셨고, 집안 시제도 발벗고 다 지냈다. 당신은 하셨지만 며느리들은 새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며, 제사들을 통폐합시킨 것도 몇 년 전 어머니의 결단이셨다.

그래도 남편의 제사는 가장 챙길 수밖에 없는데, 올해는 아들 자식들은 다 마다하고, 주변에 있는 큰 딸과 막내 딸만 같이 지내기로 했다고, 단호히 말한다. 대신에 아들, 며느리 섭섭하지 않게 반찬 거리를 이렇게 싸 보내신 것이다. 천리 고향에 있는 어머니의 사랑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도회의 철없는 자식에게 전해진다. 혹시 섭섭해 할 것 같아 어머니는 당부하신다.

"사태 진정되면 맘 편하게 니 동상이랑 와서 아부지 산소에 성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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