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비'가 2분 동안, 진짜 봄이 여기 있었네
[기획-봄에 보면 좋은 영화] <4월 이야기>
꽃은 피고 봄은 오나 봅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한 꽃송이들에 맘이 설레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봄 꽃의 향연을 만끽하기도 전에 아쉬운 소식이 먼저 들려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올 봄꽃 축제 일정 대부분이 취소됐습니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잠시나마 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봄에 보면 딱 좋을 영화가 있어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우즈미는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이사를 온 무사시노 대학의 신입생이다. ⓒ (주)팝 파트너스
봄은 설렘이다. 그리고 추억이다. 훈훈한 온도 속에 안락한 풍경을 바라보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작'을 의미하는 이 계절은 처음이라는 낯섦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1998)는 홋카이도에 살던 우즈미(마츠 다카코)가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플라잉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우즈미의 표정에는 긴장과 설렘이 섞여 있다. 캠퍼스를 걷다 밴드 공연을 보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다 옆 벤치에서 키스하는 커플을 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혼자 영화관에 흑백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허공에서 낚시질을 연습하는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하며 카레를 많이 해 이웃집 여자에게 함께 먹자고 했다가 거절 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풋풋함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스무살을 떠올리다
▲ 영화 <4월 이야기>의 한 장면. ⓒ (주)팝 파트너스
우즈미를 보면 우리의 스무 살이 떠오른다. 나이는 어른이었지만 몰랐던 것들이 많았던 그때. 낯선 것 투성이였지만 신기하게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 시절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영화 이야기에 살포시 녹아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실 우츠미가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한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한 살 많은 선배가 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우츠미는 자전거를 타고 선배가 일하는 서점을 찾아간다. 우츠미는 선배를 보고도 긴장했는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선배는 책을 계산하다 "혹시"라며 묻는다. "기억하세요?"라며 우즈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지만 여전히 눈은 선배를 오래 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쫓아 같은 대학까지 입학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 앞에서 긴장한 우즈미의 떨림을 우리는 한 번씩 가지고 있지 않나.
▲ 영화 <4월 이야기>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 ⓒ (주)팝 파트너스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은 벚꽃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폭설이 쏟아지듯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벚꽃 잎이 흩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곁들어지면서 스크린은 분홍빛이 되며 봄의 향기가 전해진다. '벚꽃 비'가 내리는 장면은 2분 남짓. 이 짧은 틈에서 우리는 봄과 교감한다.
'벚꽃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소소하지만 재미있다. 우즈미의 집을 찾아가는 이삿짐센터 트럭이 등장한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길가에 있던 한 남성에게 길을 물어본다. "사쿠라가오카 2번지가 어디죠?" 벚꽃을 의미하는 '사쿠라'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옷을 갖춰 입은 신부와 그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우산을 씌워준다.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 몇 명이 가까이 몰려가 궁금한 듯 신부를 보려고 한다.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그런 광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봄과 4월의 그림이란 이토록 어느 한 장면 놓칠 것 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4월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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