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3, 4년간은 죽기 살기로 육아서를 찾아 읽었다.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놔두면 아이는 알아서 잘 큰다고도 했고,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며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 하나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 말들이 너무 막막하기만 해서 닥치는 대로 육아서를 검색하고 열심히 읽었다. 육아서 안의 세상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세계였다. 책 속의 아이들은 얌전함과 극도로 예민함 사이의 광활한 범위 안에서 상황별, 시기별로 자세히 분석되고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 속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파악해 좋은 재료로 아이의 끼니와 간식을 챙기고, 시기별로 맞춤한 놀이와 교육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세심하게 아이의 감정을 살피는 동시에 적절히 훈육도 해야 하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엄마들과의 모임도 놓치지 않고… 나에게는 책 속의 엄마들이 모두 전지전능한 신과도 같아 보였다.
육아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엄마 축에도 못 들었다. 그렇게 미간에 힘을 주고 육아서를 읽고 난 뒤 책을 덮고 나면 언제나 깊은 한숨과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나는 골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 에너지 넘치고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싶었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을 '정답'을 찾아 울며 겨자 먹기로 육아서를 읽으며, 비교하고, 자책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수십 권의 책들 속에 내가 찾는 '정답'은 없었다.
그렇게 책에 고개를 파묻고 혼자 상처받고 자책하다가 고개를 들면 눈앞에 내 아이들이 있었다. 불현듯 책 속의 남의 아이들과 남의 삶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내 아이와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육아서를 읽지 않는다. 남의 아이를 들여다볼 시간에 내 아이와 눈을 맞춰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알아서, 내가 옳다고 믿는 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육아서를 한 권 읽었다. <내향 육아>라는 제목과 책 띠지에 적힌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가 다르다'라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또다시 흔들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궁금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어떤 '끌림'이 있었다.
<내향 육아>의 저자 이연진과 나는 정말 많은 것이 비슷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것보다 책 속에 파묻히는 편이 더 편한 사람, 유명한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는 사람. '조용히 내면에 접속하며 에너지를 얻는 내향인'.
<내향 육아>의 저자 이연진의 아이 윤하는 2018년 1월 'SBS 영재발굴단'에 '고등학생 이상의 과학적 지식을 갖춘 만 5세 꼬마 과학자'로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우리 아이 영재로 키우는 법' 따위의 신기루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대세를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느리지만 또박또박 내향적인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정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저자도 처음에는 수백 권의 육아서를 탐독하고, 수많은 육아 관련 강연을 찾아다니며 방황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책육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부지런히 엄마들 모임에도 나가보았지만 오히려 더 지치기만 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헤매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처럼, 나도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때부터 저자는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엄마인 내가 편한 방식으로 아이와 같이 지내보기로 했다. 예컨대, 학원을 보내고 유명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대신, 집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아이와 함께 읽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책을 고르고, 선풍기와 폐가전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동네에 버려진 폐가전을 가져다주고, 선풍기 수리점에서 고장난 선풍기를 가져다주는 것,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들을 함께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교육이고 놀이였다.
한마디로 저자의 육아법은 무엇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아이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돌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의 마음도 제대로 돌봐줄 수가 없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도 안정적으로 잘 놀고 잘 자란다.
책 속에는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책육아' 팁이 가득하다. 책을 읽어주는 방법,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 책장 정리 방법, 책을 갖고 노는 방법과 저자가 추천하는 아이의 책 목록까지 살뜰하게 담겨 있다. 저자와 나의 방식이 비슷해서 공감했고,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유익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아이가 저자의 아이처럼 과학 영재가 아니라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아이가 '과학'을 좋아할 리 없고, 모든 아이가 '영재'일 수는 없으니까. 나 역시 내 아이들이 영재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요즘처럼 아이와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내년이면 또 훌쩍 자라 있겠지. 새삼스레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틋해진다. 이 책이 진작에 나왔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무조건 '당신이 옳다'는 공허한 위로가 아닌, 나의 속도와 방식을 온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다정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저자의 다정하고 고운 문장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내향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라, 아이와 '친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아이를 '영재로 만드는 법'이 아닌,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 말들이 너무 막막하기만 해서 닥치는 대로 육아서를 검색하고 열심히 읽었다. 육아서 안의 세상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세계였다. 책 속의 아이들은 얌전함과 극도로 예민함 사이의 광활한 범위 안에서 상황별, 시기별로 자세히 분석되고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 속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육아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엄마 축에도 못 들었다. 그렇게 미간에 힘을 주고 육아서를 읽고 난 뒤 책을 덮고 나면 언제나 깊은 한숨과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나는 골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 에너지 넘치고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싶었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을 '정답'을 찾아 울며 겨자 먹기로 육아서를 읽으며, 비교하고, 자책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수십 권의 책들 속에 내가 찾는 '정답'은 없었다.
그렇게 책에 고개를 파묻고 혼자 상처받고 자책하다가 고개를 들면 눈앞에 내 아이들이 있었다. 불현듯 책 속의 남의 아이들과 남의 삶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내 아이와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육아서를 읽지 않는다. 남의 아이를 들여다볼 시간에 내 아이와 눈을 맞춰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알아서, 내가 옳다고 믿는 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때때로 아이 몰래 궁금했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를 만났더라면, 내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아이가 별난 구석이 있기에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로도 책육아 강의들을 찾아 듣고 수백 권의 육아서를 읽었으니. 그러나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질의 남과 북'이라 칭했다.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선택과 행동,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줄곧 '엄마'로만 뭉뚱그려졌다. (64~65쪽)
▲ <내향 육아>, 이연진 지음, 위즈덤하우스(2020) ⓒ 위즈덤하우스
정말 오랜만에 육아서를 한 권 읽었다. <내향 육아>라는 제목과 책 띠지에 적힌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가 다르다'라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또다시 흔들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궁금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어떤 '끌림'이 있었다.
<내향 육아>의 저자 이연진과 나는 정말 많은 것이 비슷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것보다 책 속에 파묻히는 편이 더 편한 사람, 유명한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는 사람. '조용히 내면에 접속하며 에너지를 얻는 내향인'.
<내향 육아>의 저자 이연진의 아이 윤하는 2018년 1월 'SBS 영재발굴단'에 '고등학생 이상의 과학적 지식을 갖춘 만 5세 꼬마 과학자'로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우리 아이 영재로 키우는 법' 따위의 신기루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대세를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느리지만 또박또박 내향적인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정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저자도 처음에는 수백 권의 육아서를 탐독하고, 수많은 육아 관련 강연을 찾아다니며 방황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책육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부지런히 엄마들 모임에도 나가보았지만 오히려 더 지치기만 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헤매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처럼, 나도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때부터 저자는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엄마인 내가 편한 방식으로 아이와 같이 지내보기로 했다. 예컨대, 학원을 보내고 유명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대신, 집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아이와 함께 읽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집에서는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영역들이 또렷이 보였다. 덕분에 '아이의 적성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여기저기 떠도는 품을 줄일 수 있었다. 억지로 훈련하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아이가 쉽게 배우며, 지속적 흥미를 보이는 것이 아이의 재능이 될 가능성이 높다. (181쪽)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책을 고르고, 선풍기와 폐가전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동네에 버려진 폐가전을 가져다주고, 선풍기 수리점에서 고장난 선풍기를 가져다주는 것,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들을 함께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교육이고 놀이였다.
한마디로 저자의 육아법은 무엇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아이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돌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의 마음도 제대로 돌봐줄 수가 없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도 안정적으로 잘 놀고 잘 자란다.
책 속에는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책육아' 팁이 가득하다. 책을 읽어주는 방법,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 책장 정리 방법, 책을 갖고 노는 방법과 저자가 추천하는 아이의 책 목록까지 살뜰하게 담겨 있다. 저자와 나의 방식이 비슷해서 공감했고,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유익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아이가 저자의 아이처럼 과학 영재가 아니라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아이가 '과학'을 좋아할 리 없고, 모든 아이가 '영재'일 수는 없으니까. 나 역시 내 아이들이 영재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요즘처럼 아이와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내년이면 또 훌쩍 자라 있겠지. 새삼스레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틋해진다. 이 책이 진작에 나왔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무조건 '당신이 옳다'는 공허한 위로가 아닌, 나의 속도와 방식을 온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다정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저자의 다정하고 고운 문장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내향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라, 아이와 '친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아이를 '영재로 만드는 법'이 아닌,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아이 때문에 힘들었다 말하지만 실은 아이가 저를 살렸습니다. 아이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 예민했던 신경은 누그러졌고 많은 것을 잊어가며 진짜배기 취향만 곁에 남았습니다. 아이는 제게 밝은 기운을 불어넣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합니다. 같이 움직이고 살을 부비며 따스한 기억을 만들어갑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저를 문밖으로 끌어내는 것도 아이였어요. 아이 덕분에 잊었던 말들과 지나쳤던 장면들도 하나씩 복기됩니다. 상념에 빠져들면 아이가 저를 현실로 소환합니다. 엄마 오늘을 살아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를 보세요. 오늘은 오늘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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