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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이 의미 있습니까?" 총선 앞둔 홍세화의 물음

19대 총선 '후보자 학력 미기재' 원칙 세웠던 진보신당... 당시 당대표였던 홍세화를 만나다

등록|2020.04.10 19:22 수정|2020.04.10 19:22

홍세화, 2012년 총선 당시 진보신당 비례 2번 후보 홍세화(장발장 은행장)를 '소박한 자유인'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제21대 총선 공보물을 살펴본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대표 경력에 "○○대학교 ○○학과 졸업" 등 학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올려놓았다. 미래통합당의 어느 지역구 출마자가 "□□대학교 교수"라는 직함보다도 "서울대 졸업"을 더 큼직한 글씨로 써서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이 학력·학벌주의 사회라는 것은 이처럼 정치에서, 선거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제20대 국회는 의원 300명 중 294명이 대졸 이상 학력을 자랑했다.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4개 학교 출신만으로 50%가 넘었다. 고학력자, 특정 학교 출신의 학벌 엘리트들이 정치에서 과대대표되어 있는 것이다. 제21대 국회는 어떨까? 총선 출마자들을 훑어보면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력·학벌 차별에 반대하며 대학입시거부선언 등의 활동을 해 온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은 이런 현실을 꼬집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2년, 진보신당에서 후보자들의 학력 미기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던 사실을 재발굴하려 한다. 투명가방끈은 지난 7일 2012년 진보신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바 있고 '학벌없는사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해온 홍세화(장발장은행 은행장)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력·학벌주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약해졌다"

투명가방끈: "먼저 2012년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후보자의 학력을 미기재하기로 결정한 것이 어떤 문제의식이었는지 소개해 달라."

홍세화: "당시 진보신당에서는 학력 미기재를 당 차원에서 원칙으로 삼았다. 한국 사회의 학력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 때문이었다. '학벌없는사회' 등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의 영향도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정치를 하면서 학력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는 데 과연 학력이 의미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어떤 인간인가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투명가방끈: "당시에 그런 취지나 지향이 잘 알려졌는가?"

홍세화: "나름대로 몇몇 매체에서 소개를 했다. 아주 큰 반향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반응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투명가방끈: "2020년 총선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정당이 없는 것 같다. 왜일까?"

홍세화: "우선, 시민사회운동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활동이 약해졌다. 그 점이 진보정당 등에서도 이 문제를 잘 의식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학력·학벌주의를 없애는 것, 학벌 없는 사회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좌절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학벌이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해 주는 자원이 되기보다는, 학벌 자체의 세습화가 점점 심해졌다. '좋은 대학'이 있는 집 자식들의 전유물이 되는 세습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학력·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변화의 동력은 더 약해졌던 것 같다.

이번 총선에서는 '조국 사태 블랙홀' 등 여러 상황의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정의당 같은 경우 '조국 사태'에서 제대로 자기주장을 표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혼란이 있었다. 그리고 총선 직전에는 위성정당 논란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다 보니, 정당들이 학력 기재를 하지 않는 실천 등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투명가방끈: "정의당은 이전의 선거들에서도 그런 실천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 중 시민사회운동과 정당 사이의 관계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잘 반영하지 못한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홍세화: "나는 기본적으로 정의당이 의회주의적이라는 점에 대해 비판적이다. 의회주의에 너무 편향되어 있다. '조국 사태' 때 진보정당으로서 제 몫을 하지 못한 배경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의회주의의 함정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런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데서 부족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워낙 한국 사회가 시민사회의 역량 자체가 취약한 형편이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지금 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정권 안으로 시민사회의 역량이 흡수되는 현상이 강화됐다. 그런 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투명가방끈: "그러면 학력·학벌 차별의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다루려는 노력이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해서 한국 사회에서 더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홍세화: "아무래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정당의 인식이나 활동은 시민사회로부터의 영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력·학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욱 그렇지 않겠나."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
 

▲ 2012년 당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등록 내용 ⓒ 노동당 홈페이지


투명가방끈: "제20대 국회도 대부분이 대졸자였고 특정 대학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총선을 지켜보니 제21대 국회도 비슷할 것 같다. 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고 보는가?"

홍세화: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에서 좌파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보수적 정치인들은 학력이나 학벌, 그리고 재산의 영향이 많이 작용하지만, 좌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가령 프랑스 공산당에서는 오랫동안 공산당 서기장은 노동자 출신이 아니면 할 수 없었다. 노동 중심, 노동자 중심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 엘리트들의 기본적 기준이 되는 것이 학력이다. 여기에는 물론 한국의 학력·학벌주의도 작용하고 있는데, 동시에 노동에 대한 인식 결여와 경시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무시받고, 고학력 전문직들이 우대받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든 미래통합당이든 어느 정당이든 학력 중심이고 학벌로도 엘리트들이고 법조인들, 즉 율사 출신들이 많다. 프랑스도 과거 3공화국(1940년 이전) 시기에 정치권을 율사들이 주름잡았던 적이 있다. 아직 한국 사회는 학벌·법조계 엘리트 등이 정치권을 주름잡고 있는 그런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진정한 좌파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있다고 본다."

투명가방끈: "국회나 정치 영역이 고학력자, 학벌 엘리트들로 채워져 있단 것을 비판하면, 사람들은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라고 반문하곤 한다. 정치 영역을 고학력자, 학벌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홍세화: "간단하다. 정치인은 결국 자기의 이익, 자기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들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 용도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용이 된 사람도 개천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고학력의 학벌 엘리트들이 과연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 그들은 이미 엘리트층, 기득권 집단에 편입되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사람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투명가방끈: "교육의 문제나 학력·학벌 차별의 문제가 참 바뀌지 않는다. 진보신당에서 했던 학력 미기재의 문제의식도 이번 총선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그렇고, 더 후퇴하는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학력·학벌주의에 저항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보태주신다면?"

홍세화: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게 힘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내 경험으로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역발상을 해 본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는 그런 자긍심을 같이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에게는 냉소하거나 포기할 권리, 물러 앉을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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