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회계사, 그들의 '전문직 캐슬' 지키기
[총선 주자들이여, ‘교육과 계층’에 답하라] 의사·회계사·변호사 자격 취득에 관하여 ①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그래야 할 테지만 귀천은 있는 듯하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만 봐도 그렇다. '캐슬'에 사는 귀한 이들의 직업은 몇몇 소수 직업에 한정돼 있다.
집안에 거대 피라미드까지 설치해둔 차민혁 교수는 검사‧변호사를 거친 서울대 로스쿨 교수다. 마마보이인 예서 아빠는 '엄마가 시켜서' 의사가 된 인물이고, 예서는 엄마에게 "세상에서 내가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야 나!"라고 소리치며 "난 그냥 서울대 의대 가서 성공한 인생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보다 낮은 계층으로 설정된 우주 아빠도 의사다. 지방대 의대 출신이래도 어쨌든 의사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많고도 많다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업들은 의사와 법조인, 교수 등으로 한정된다. 어쩌면 그 직업들이 '캐슬'에 어울릴 현대판 귀족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 '전문직의 진입장벽'
실제 우리나라 고등학교 이과에선 지방대 의대가 서울대 모든 학과들의 위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대가 인기다. 교사 시절, 문이과 교차 지원으로 서울대 인문학과와 지방대 의대 내지 치대를 동시에 합격한 학생이 지방대 의치대를 택하는 것을 적잖이 봤다. 문과에선 '서울 법대'가 사라진 탓에 서울대 상경대를 졸업하고 스카이 로스쿨로 진학하는 게 이른바 성골 코스가 됐다. 공인회계사가 되거나 행정고시‧외무고시 등을 패스해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도 성공 내지 출세로 본다.
위와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해 '캐슬'의 자녀들은 치열하게 공부한다. 그들 대부분에게 있어 공부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우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거리가 멀다. 캐슬에서의 교육은 그저 피라미드 꼭대기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한 도구, 즉 '신분 상승 내지 유지의 도구'에 불과하다.
위 직업들은 '누구나 원한대도 아무나 될 수는 없'다. 의대나 로스쿨의 경우엔 그 직업들에 접근할 교육의 기회 자체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도 않다. 물론 누구든 '노오력'을 하면 가능하긴 하다. 이과에선 전국 고등학교 이과 3학년 및 재수생들 중 의대‧치대‧한의대 등의 입학정원 3천여 등 안에 드는 노오력을 한다면, 문과에선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시험에 최종합격하는 1500여 등 안에, 공인회계사 시험의 1100여 등 안에 드는 노오력을 한다면 말이다.
다수가 지원하고 소수만이 선발되는, 슈스케의 예비스타 뽑기 같은 이런 방식은 한국인인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문제로 공무원의 선발 인원이 제한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손 하더라도, 의사‧회계사‧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에 있어 그 자격 취득에 '수(數) 통제' 즉, 인원 제한을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우리는 뒤로 힘쓴다, 의대정원의 통제
의사 수급 문제에 대한 질문에 익명의 의대 교수는 "의사들은 의대 정원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의사 자격시험을 상대평가로 전환하면 신규 의사 배출을 보다 손쉽게 줄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그런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여론을 고려해 이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축소도 녹록치 않아 의사들은 의협을 통해 의대 정원을 적어도 늘리지는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수(數) 통제'는 의대 입학 정원 단계에서 이뤄지고 있단 얘기다.
'의사의 수(數)'에 초점 맞춰 의료계를 들여다보면 보건복지부 및 정치권은 의대 정원 증원을, 현장 의사들 및 이들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그 반대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4.15 총선에서도 정치권에선 '의사 증원'이 공약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 중엔 의대 정원 확대가 들어 있고, 각 지역구 후보들이 지역구 의대 증원 및 의대 유치 등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련 공약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주당은 필수진료와 농어촌 등 공공의료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대정원 확대를 우선 추진한단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공공의료 취약지역의 경우 (가칭)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선발해 해당 지역에서의 의무복무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인구 1000명 당 1명 이상의 공중보건인력 단계적 확충을 공약에 담으면서, 공공병원 인력을 늘리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의사‧간호사 인력을 확충하겠단 포괄적 공약을 내걸었다. 또 공공의대 설립과 선진국 수준의 공공병원 인력과 시설 기준 마련도 공약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간호사 채용임용대기기간 단축 등 간호사에 관한 공약은 제시하면서도 의사를 포함한 의료 인력 확충은 공약하지 않았다. 공공의료에 대해서도 의사‧간호사 인건비 인상 등만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역시 관련 영역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 완전 폐지와 아동주치의제 도입을 공약할 뿐 의사 증원은 공약하지 않았다.
'공공의학전문대학원 내지 공공의과대학(이하 공공의대)'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여기엔 국회 코로나19 대책특별위원회가 현재 계류 중인 관련 법률을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고, 공중보건장학의사 제도도 활성화할 것 등을 주문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대'란 최근 진료과목별·지역별 의료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이던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을 말한다.
폐교한 서남대 의대(정원 49명)를 정부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공공의대로 전환하고, 여기서 양성된 공공의사를 10년간 의료취약 지역에 의무복무케 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민중당은 창원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는 공공의료 확대가 답"이라며 "창원대에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의료 인력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직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증원이나 공공의대 설립 모두 답이 아니라며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 의협은 그간 의료 공백 문제는 의사 증원이 아니라 의사들의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의 구조적 대안 마련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보다 상대적으로 비인기과인 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의 의료수가(酬價)를 인상하는 것이 답이지 무조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공공의대에 대해서도 의협은 이는 근본적인 답이 아니라며 지난해 이를 막기 위한 공공의료대응TFT를 결성하기도 했다.
4.15 총선을 맞아 의협은 더욱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총선 때면 단골 공약으로 나오는 의대 증원 및 증설 주장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며, "감염병 비상 사태에서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공공의료의 측면과 연결되는데, 이는 단순히 의사 배출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관심을 갖고, 공공의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할 근본적인 유인책 등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나서지는 않을 거란 설명이다.
의협은 공공의료대응TFT를 통해 최근의 공공의대 추진을 막기 위한 목소리에도 더욱 힘을 실었다. 이에 공공의대 설립을 적극 지지해온 보건의료노조는 8일 "의협에 묻는다. 의사인력 확충 반대가 코로나19 국난 극복책인가?"라며 즉각 공공의료대응TFT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의협의 주장대로 전반적 부족 문제는 없는 걸까? 2017년 기준으로 현직 의사는 국민 1000명당 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4명의 56% 수준이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다. 또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 16.6회로 OECD 회원국에서 가장 많다. 더욱이 의사의 49.2%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의사 수는 올해 2000명, 2030년 76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의사 양성 기간이 긴 만큼 지금이라도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10년 내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술절벽'이 올 수 있단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보건복지부, 정치권,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2006년 이후 14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는 40개 의대 정원을 3,6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이들 중엔 의료인들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번 사태는 의료 시스템, 특히 공공 의료템의 확충과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국민들이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대거 발생한 상황에서 당장 검체검사를 수행할 인력마저 부족하면서, 공중보건의사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전국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대구·경북 지역의 구멍을 메워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감동을 준 의료인들의 의대 증원 반대 내지 공공의대 설립 반대 주장은 별반 감동스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밤샘근무 중 순직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생전에 SNS에 남긴 글 하나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회계사시험이 '사실은 상대평가'임을 스스로 알린 회계사들
지난달 11일 회계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모임' 소속 회계사 400여 명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금융위원회가 공인회계사 자격제도심의위원회에서 회계사시험의 최소선발인원 증대를 결정했다면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금융위가 일시적 업계 수요만을 근거로 회계업계와 무관한 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증원을 결정했다"며 "당장의 수요에 따라 증원하면 감사환경 악화로 회계사의 비자발적 이탈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데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으로 회계사들의 업무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인원을 늘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회계사를 두고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이익추구를 최대 목표로 하는 기업의 재무제표 등을 정밀하게 감사하는 것은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가 감사 인력 부족을 메우고자 회계사를 증원하는 것은 공익에 부합해 보인다. 회계사들이 거리로 나와 그 증원에 반대하는 것이 밥그릇 싸움 아닌 진정한 투명 감사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평범한 시민들로서는 이를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또 있다. 회계사시험은 2007년부터 '절대평가'로 치러지고 있는데 대체 회계사들이 왜 그 신규 배출 수를 두고 목소리를 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부분이 회계사시험의 본질을 드러내준다.
본래 회계사는 5백 명 정도를 '상대평가에 의해 선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공인회계사시험법 제3조 제2항 본문의 "제2차시험(최종시험에 해당한다-기자주)의 합격결정에 있어서는 매과목 배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한 자를 합격자로 결정한다"는 규정이 도입되면서부터 회계사의 자격은 '절대평가'에 의해 취득하게 됐다.
교육학에 근거한 '절대평가에 의한 자격취득'이란, 절대적 기준을 갖추면 그 수가 한 명이든 만 명이든 관련 자격증 소지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현직 회계사들이 신규 회계사들의 배출 수에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대체 앞으로 몇 명이 그 절대적 기준을 넘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건 말건 신규 회계사의 수는 일정 점수에 따라 정해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 위 법 제3조 제2항 단서의 '최소선발예정인원'이란 낯선 단어가 힌트가 된다. 해당 단서엔 "다만, 매과목 배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한 자가 공인회계사의 수급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금융위원회가 시험공고시 공고한 최소선발예정인원에 미달하는 경우 미달인원에 대하여는 매과목 배점의 4할 이상을 득점한 자 중 최소선발예정인원의 범위 안에서 전과목 총득점에 의한 고득점자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정부가 늘리겠다고 한 것, 회계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회계사 시험에서의 최소선발인원 증원'이다.
본래 위 법의 취지, 즉 '최소선발예정인원을 둔 절대평가'의 원칙적 취지에 입각하자면, 누구든 절대적 기준을 충족하면(일정 점수를 받으면) 회계사가 될 수 있도록 하되 너무 적은 수가 합격하는 경우 회계업계의 주요 수요자인 기업들의 회계 수요 인력에 차질이 생기는 만큼 적어도 어느 정도의 수 이상은 그 점수를 받지 못해도 회계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칙적 구상'에 불과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회계사들은 "회계사시험은 겉으로 보기와 달리 절대평가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이들은 "2007년 절대평가가 구상됐을 때부터 일정 선발 인원을 염두에 두고 채점을 조정했을 뿐 아니라, 최소선발인원은 실제로는 행정고시의 선발 인원 같은 최종선발인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요약하면, '최소선발인원'이란 결국 '선발인원'이고, 회계사시험은 여전히 '상대평가에 근거한 정원제 선발시험'이라는 얘기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최근 회계사들의 시위를 다시금 들여다보면 이들이 왜 '최소선발인원 증원 반대'를 하는지가 비로소 이해된다. 회계사시험은 겉으로 보기에만 '자격시험'일 뿐 사실은 '최소선발인원'이란 이름하에 매년 정부가 정하는 일정 수만이 "그 지식과 능력이 어떠하든" 회계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던 거다. '
'회계사시험 최소선발인원 증원 반대 시위'. 이미 회계사가 된 이들이 언뜻 그들과 무관해 보이는 회계사시험에 관해 굳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시위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격시험인줄 알았던 회계사시험이 사실은 '인위적으로 신규 회계사의 수를 통제하는 정원제 선발시험'으로 치러져왔음을 온 국민이 알게 해주었다.
(다음 기사에서 "코로나19 탓에 신규 변호사 배출을 줄여야겠다고?"가 이어집니다.)
그래야 할 테지만 귀천은 있는 듯하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만 봐도 그렇다. '캐슬'에 사는 귀한 이들의 직업은 몇몇 소수 직업에 한정돼 있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많고도 많다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업들은 의사와 법조인, 교수 등으로 한정된다. 어쩌면 그 직업들이 '캐슬'에 어울릴 현대판 귀족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예서는 “난 그냥 서울대 의대 가서 성공한 인생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많고도 많다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업들은 의사와 법조인, 교수 등으로 한정된다. 어쩌면 그 직업들이 ‘캐슬’에 어울릴 현대판 귀족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검사?변호사 출신 서울대 로스쿨 교수인 차민혁의 집 안에 설치된 거대 피라미드의 모습. ⓒ JTBC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 '전문직의 진입장벽'
실제 우리나라 고등학교 이과에선 지방대 의대가 서울대 모든 학과들의 위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대가 인기다. 교사 시절, 문이과 교차 지원으로 서울대 인문학과와 지방대 의대 내지 치대를 동시에 합격한 학생이 지방대 의치대를 택하는 것을 적잖이 봤다. 문과에선 '서울 법대'가 사라진 탓에 서울대 상경대를 졸업하고 스카이 로스쿨로 진학하는 게 이른바 성골 코스가 됐다. 공인회계사가 되거나 행정고시‧외무고시 등을 패스해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도 성공 내지 출세로 본다.
위와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해 '캐슬'의 자녀들은 치열하게 공부한다. 그들 대부분에게 있어 공부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우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거리가 멀다. 캐슬에서의 교육은 그저 피라미드 꼭대기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한 도구, 즉 '신분 상승 내지 유지의 도구'에 불과하다.
위 직업들은 '누구나 원한대도 아무나 될 수는 없'다. 의대나 로스쿨의 경우엔 그 직업들에 접근할 교육의 기회 자체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도 않다. 물론 누구든 '노오력'을 하면 가능하긴 하다. 이과에선 전국 고등학교 이과 3학년 및 재수생들 중 의대‧치대‧한의대 등의 입학정원 3천여 등 안에 드는 노오력을 한다면, 문과에선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시험에 최종합격하는 1500여 등 안에, 공인회계사 시험의 1100여 등 안에 드는 노오력을 한다면 말이다.
다수가 지원하고 소수만이 선발되는, 슈스케의 예비스타 뽑기 같은 이런 방식은 한국인인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문제로 공무원의 선발 인원이 제한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손 하더라도, 의사‧회계사‧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에 있어 그 자격 취득에 '수(數) 통제' 즉, 인원 제한을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우리는 뒤로 힘쓴다, 의대정원의 통제
의사 수급 문제에 대한 질문에 익명의 의대 교수는 "의사들은 의대 정원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의사 자격시험을 상대평가로 전환하면 신규 의사 배출을 보다 손쉽게 줄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그런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여론을 고려해 이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축소도 녹록치 않아 의사들은 의협을 통해 의대 정원을 적어도 늘리지는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수(數) 통제'는 의대 입학 정원 단계에서 이뤄지고 있단 얘기다.
'의사의 수(數)'에 초점 맞춰 의료계를 들여다보면 보건복지부 및 정치권은 의대 정원 증원을, 현장 의사들 및 이들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그 반대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4.15 총선에서도 정치권에선 '의사 증원'이 공약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 중엔 의대 정원 확대가 들어 있고, 각 지역구 후보들이 지역구 의대 증원 및 의대 유치 등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련 공약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주당은 필수진료와 농어촌 등 공공의료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대정원 확대를 우선 추진한단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공공의료 취약지역의 경우 (가칭)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선발해 해당 지역에서의 의무복무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인구 1000명 당 1명 이상의 공중보건인력 단계적 확충을 공약에 담으면서, 공공병원 인력을 늘리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의사‧간호사 인력을 확충하겠단 포괄적 공약을 내걸었다. 또 공공의대 설립과 선진국 수준의 공공병원 인력과 시설 기준 마련도 공약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간호사 채용임용대기기간 단축 등 간호사에 관한 공약은 제시하면서도 의사를 포함한 의료 인력 확충은 공약하지 않았다. 공공의료에 대해서도 의사‧간호사 인건비 인상 등만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역시 관련 영역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 완전 폐지와 아동주치의제 도입을 공약할 뿐 의사 증원은 공약하지 않았다.
▲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많은 의료인들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 내지 공공의대 설립 반대 주장은 별반 감동스럽지 않아 보인다. 사진은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검체채취 관련 장비들을 주차장에 마련된 안심진료소로 옮기는 모습. ⓒ 권우성
'공공의학전문대학원 내지 공공의과대학(이하 공공의대)'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여기엔 국회 코로나19 대책특별위원회가 현재 계류 중인 관련 법률을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고, 공중보건장학의사 제도도 활성화할 것 등을 주문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대'란 최근 진료과목별·지역별 의료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이던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을 말한다.
폐교한 서남대 의대(정원 49명)를 정부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공공의대로 전환하고, 여기서 양성된 공공의사를 10년간 의료취약 지역에 의무복무케 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민중당은 창원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는 공공의료 확대가 답"이라며 "창원대에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의료 인력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직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증원이나 공공의대 설립 모두 답이 아니라며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 의협은 그간 의료 공백 문제는 의사 증원이 아니라 의사들의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의 구조적 대안 마련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보다 상대적으로 비인기과인 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의 의료수가(酬價)를 인상하는 것이 답이지 무조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공공의대에 대해서도 의협은 이는 근본적인 답이 아니라며 지난해 이를 막기 위한 공공의료대응TFT를 결성하기도 했다.
4.15 총선을 맞아 의협은 더욱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총선 때면 단골 공약으로 나오는 의대 증원 및 증설 주장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며, "감염병 비상 사태에서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공공의료의 측면과 연결되는데, 이는 단순히 의사 배출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관심을 갖고, 공공의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할 근본적인 유인책 등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나서지는 않을 거란 설명이다.
의협은 공공의료대응TFT를 통해 최근의 공공의대 추진을 막기 위한 목소리에도 더욱 힘을 실었다. 이에 공공의대 설립을 적극 지지해온 보건의료노조는 8일 "의협에 묻는다. 의사인력 확충 반대가 코로나19 국난 극복책인가?"라며 즉각 공공의료대응TFT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의협의 주장대로 전반적 부족 문제는 없는 걸까? 2017년 기준으로 현직 의사는 국민 1000명당 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4명의 56% 수준이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다. 또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 16.6회로 OECD 회원국에서 가장 많다. 더욱이 의사의 49.2%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의사 수는 올해 2000명, 2030년 76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의사 양성 기간이 긴 만큼 지금이라도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10년 내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술절벽'이 올 수 있단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보건복지부, 정치권,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2006년 이후 14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는 40개 의대 정원을 3,6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이들 중엔 의료인들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번 사태는 의료 시스템, 특히 공공 의료템의 확충과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국민들이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대거 발생한 상황에서 당장 검체검사를 수행할 인력마저 부족하면서, 공중보건의사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전국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대구·경북 지역의 구멍을 메워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감동을 준 의료인들의 의대 증원 반대 내지 공공의대 설립 반대 주장은 별반 감동스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밤샘근무 중 순직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생전에 SNS에 남긴 글 하나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회계사시험이 '사실은 상대평가'임을 스스로 알린 회계사들
지난달 11일 회계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모임' 소속 회계사 400여 명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금융위원회가 공인회계사 자격제도심의위원회에서 회계사시험의 최소선발인원 증대를 결정했다면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금융위가 일시적 업계 수요만을 근거로 회계업계와 무관한 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증원을 결정했다"며 "당장의 수요에 따라 증원하면 감사환경 악화로 회계사의 비자발적 이탈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데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으로 회계사들의 업무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인원을 늘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회계사를 두고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이익추구를 최대 목표로 하는 기업의 재무제표 등을 정밀하게 감사하는 것은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가 감사 인력 부족을 메우고자 회계사를 증원하는 것은 공익에 부합해 보인다. 회계사들이 거리로 나와 그 증원에 반대하는 것이 밥그릇 싸움 아닌 진정한 투명 감사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평범한 시민들로서는 이를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또 있다. 회계사시험은 2007년부터 '절대평가'로 치러지고 있는데 대체 회계사들이 왜 그 신규 배출 수를 두고 목소리를 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부분이 회계사시험의 본질을 드러내준다.
본래 회계사는 5백 명 정도를 '상대평가에 의해 선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공인회계사시험법 제3조 제2항 본문의 "제2차시험(최종시험에 해당한다-기자주)의 합격결정에 있어서는 매과목 배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한 자를 합격자로 결정한다"는 규정이 도입되면서부터 회계사의 자격은 '절대평가'에 의해 취득하게 됐다.
교육학에 근거한 '절대평가에 의한 자격취득'이란, 절대적 기준을 갖추면 그 수가 한 명이든 만 명이든 관련 자격증 소지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현직 회계사들이 신규 회계사들의 배출 수에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대체 앞으로 몇 명이 그 절대적 기준을 넘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건 말건 신규 회계사의 수는 일정 점수에 따라 정해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 위 법 제3조 제2항 단서의 '최소선발예정인원'이란 낯선 단어가 힌트가 된다. 해당 단서엔 "다만, 매과목 배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한 자가 공인회계사의 수급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금융위원회가 시험공고시 공고한 최소선발예정인원에 미달하는 경우 미달인원에 대하여는 매과목 배점의 4할 이상을 득점한 자 중 최소선발예정인원의 범위 안에서 전과목 총득점에 의한 고득점자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정부가 늘리겠다고 한 것, 회계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회계사 시험에서의 최소선발인원 증원'이다.
본래 위 법의 취지, 즉 '최소선발예정인원을 둔 절대평가'의 원칙적 취지에 입각하자면, 누구든 절대적 기준을 충족하면(일정 점수를 받으면) 회계사가 될 수 있도록 하되 너무 적은 수가 합격하는 경우 회계업계의 주요 수요자인 기업들의 회계 수요 인력에 차질이 생기는 만큼 적어도 어느 정도의 수 이상은 그 점수를 받지 못해도 회계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칙적 구상'에 불과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회계사들은 "회계사시험은 겉으로 보기와 달리 절대평가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이들은 "2007년 절대평가가 구상됐을 때부터 일정 선발 인원을 염두에 두고 채점을 조정했을 뿐 아니라, 최소선발인원은 실제로는 행정고시의 선발 인원 같은 최종선발인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요약하면, '최소선발인원'이란 결국 '선발인원'이고, 회계사시험은 여전히 '상대평가에 근거한 정원제 선발시험'이라는 얘기다.
▲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최종합격자 평균이 60점 전후로 거의 비슷하다. 또 2018년과 2019년의 최종합격자 평균 차이는 1.6점인데 최종합격자 수의 차이는 무려 105명이다. 시험의 난이도 차이가 있다 해도 60점 선으로 채점이 조정된 것은 아닐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최소선발예정인원과 최종합격인원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예정인원을 사실상 합격인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 박은선
이런 속사정을 알고 최근 회계사들의 시위를 다시금 들여다보면 이들이 왜 '최소선발인원 증원 반대'를 하는지가 비로소 이해된다. 회계사시험은 겉으로 보기에만 '자격시험'일 뿐 사실은 '최소선발인원'이란 이름하에 매년 정부가 정하는 일정 수만이 "그 지식과 능력이 어떠하든" 회계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던 거다. '
'회계사시험 최소선발인원 증원 반대 시위'. 이미 회계사가 된 이들이 언뜻 그들과 무관해 보이는 회계사시험에 관해 굳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시위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격시험인줄 알았던 회계사시험이 사실은 '인위적으로 신규 회계사의 수를 통제하는 정원제 선발시험'으로 치러져왔음을 온 국민이 알게 해주었다.
(다음 기사에서 "코로나19 탓에 신규 변호사 배출을 줄여야겠다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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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사에선 공인회계사시험의 '선발예정인원'만을 다뤘으나 세무사시험 등에서도 유사한 제도들이 있음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