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했던 수술비... 어르신들의 쌈짓돈이 만든 기적
[현장] 충남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주민들의 미담
▲ 충남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는 ‘어무실 구정승마을’로도 불립니다. 공주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지역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모범마을입니다. ⓒ 김종술
갈수록 삭막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시골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을 가꾸는 작은 산골 마을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67세의 박아무개씨는 충남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에서 태어나 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 젊어서부터 마을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섰습니다. 그 덕분에 마을 총무 일을 맡게 되었고, 주민들로부터 언제나 웃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밤 농사에 사용할 물건을 사러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기억하기도 싫을 정도로 살아난 게 다행이었습니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십시일반 모아준 715만 원
▲ 사고를 당한(좌측) 박00씨가 목발을 짚고 물고기 밥을 주고 있습니다. (우측) 최상규 이장님도 시간이 나는 대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 김종술
그때 주민들이 박씨의 손을 잡아줬습니다. 그 따뜻한 손에 그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물리는 68가구 작은 산골 마을로 대다수 농가가 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어느 시골이 그렇듯 이곳도 고령화 마을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아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식사를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쌀이며 채소는 마을 소유의 땅 1천 평에 농사를 지어서 얻습니다. 박씨는 주민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잊지 않고 되돌려주기 위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주민들이 먹을 채소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농작물을 가꾸고 있습니다.
최상규 이장은 "박씨와 친척이라 먼저 나서지 못했어요. 처음 마을 주민과 대화하면서 사연을 말했더니 '어려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선뜻 50만 원을 내놓았어요. 주민들과 상의 끝에 동네 회의 안건에 올렸는데 그 자리에서부터 모금이 시작되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최 이장은 "어르신들이 5만 원, 10만 원 쌈짓돈을 내놓기 시작했고 사고 당사자에게 준 위로금을 빼고 들어온 돈만 총 715만 원이었어요. 얼마나 고마운지 말도 못 할 정도였죠. 다들 어려운 형편이고 시골 노인들이라 돈도 없을 텐데 이렇게 모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의족에 들어간 800만 원 전부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것입니다. 요즘 (박씨가) 의족을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이종선 부녀회장도 거들었습니다.
"시골은 나이 많은 노인들이 거주하다 보니 전기, 수도 등 잔고장이 많습니다. 고장이 날 때마다 총무님이 밤낮으로 달려와 수리를 해줍니다. 그런 성품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것 같아요. 시골이 삭막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곳은 사람 냄새 풍기며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 충남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는 68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산골 마을로 주민들은 밤 농사를 짓고 살아갑니다. ⓒ 김종술
취재를 마치고 마을회관에 들렀습니다. 목발을 짚고 나온 박씨가 회관 앞 연못에서 키우는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습니다. 걷는 데 불편해 보였지만 주민들과 어울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따뜻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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