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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김대중·노무현의 위기관리 3가지 원칙

[강원국 특별기고] 리더는 위기 안에서 기회를 보고 희망을 찾는 사람

등록|2020.05.15 12:33 수정|2020.05.15 15:41

▲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폐회 선언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놓고 안팎의 평가에 온도 차가 있다. 세계는 한국을 보고 배우라고 하는 반면, 국내 일부의 평가는 여전히 차갑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아직 평가는 섣부르다. 코로나 위기가 일단락되면 조목조목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당장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다만, 위기가 끝나고 평가했을 때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자부할 만한 대응과 조치를 하고 있는지는 지금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지나고 나면 자명해진다. 그때 그러길 잘했는지,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지.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정부가 위기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반드시 어려움의 끝은 온다"... DJ의 위기관리 원칙
 

▲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임기도 위기의 연속이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삶 자체가 위기의 살얼음판을 걷는 여정이었다. 그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으로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연설문에서, '도전과 응전'이란 말을 자주 썼다. 문명은 '도전'과 이에 대한 '대응'이라는 상호 작용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위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심기일전과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그에게 닥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는 김대중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기회가 됐다.

그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시련은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어려움의 끝은 온다.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일본에서 납치돼 수장되기 직전, 위기의 순간에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런 자신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둘째, 그 끝이 왔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 미진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도록 하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전두환 군부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대통령 자리 빼놓고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회유했을 때, "지금 살고 역사에서 영원히 죽을 것인가, 지금 죽고 역사에서 영원히 살 것인가. 어차피 언젠가 죽을 인생, 부끄럽지 않는 길을 선택하자"고 마음먹었다.

셋째, 위기에서 기회 요인을 찾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반드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그 기회를 포착하고 선용하는 민족은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쇠락한다. 4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는 위기이면서 기회다. 잘못하면 찢기고 당할 수 있지만 잘만 하면 색시 하나를 두고 신랑감 넷이 프러포즈하게 만들 수 있다."

"위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노무현의 위기관리 원칙
  

▲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23일 밤 10시 청와대에서 한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에는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여 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언론에 다시한번 날을 세웠다. ⓒ 청와대


북한 핵 위기와 카드채 발 금융위기 속에서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위기가 생기면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쳐다본다"면서 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때가 위기를 맞았을 때라고 했다. 아울러 위기와 관련해서 노 대통령은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첫째,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정치자금 문제를 비롯한 어떤 위기에서도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정면 돌파했다.

2003년 7월 21일 춘추관에서 있었던 '정치자금에 관한 특별회견' 전날 저녁 관저에서 관련 회의가 있었고, 회견문 초안을 보여드렸다. "이게 뭐꼬" 하시더니 "됐다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해야지"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음날 자신이 작성한 메모만 가지고 '대선자금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 받자'고 연설했다.

'경제위기론'도 끊이지 않았다. 임기 내내 '경제가 파탄났다'는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2007년 1월 23일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 위기 아니다. 위기의 출발은 IMF이고, 이로 인해 심화된 양극화가 문제다.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겠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하지만 위기를 만든 책임은 없다"고 했다가 "노 대통령, 경제 책임 없다"고 대서특필한 언론에 의해 뭇매를 맞고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경포대)'이란 야유를 들었다.

둘째,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급급해서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당장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긴 안목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예를 들어 경제가 어렵다고 미봉책으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분담하고 감내하자고 호소했다. 인위적 부양책을 쓰면 당장의 어려움은 모면할 수 있지만 다음 정부와 우리 경제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리어 양극화, 저출산 문제와 같이 당장은 문제 되지 않지만 장차 위기로 다가올 문제들을 의제화했다.

2006년 당시, 먼 미래인 2030년까지의 발전 전략인 <국가 미래전략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예상되는 사회 변화와 위기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장기 계획과 목표를 담았다.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걷자는 인기 없는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연금 재정개혁을 단행한 사람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다. 1988년 시행 초기부터 이대로 가면 다음 세대의 부담이 가중되고 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손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셋째, 위기를 부풀리거나 이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 비상사태의 연속이었다. 늘 단군 이래 최대 위기였다. 심지어 정략적인 목적으로 위기를 침소봉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전두환 시절에는 북한이 임진강 댐 물을 방류하면 63빌딩 절반이 잠긴다고 위기감을 조성하기도 했지 않은가.

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때도 새벽에 비상회의를 소집하는 등 보여주기 식의 과도한 대응을 절제했다. 불필요하게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DJ와 노무현, 비관하지 않는 자신감의 비결은
  

▲ 지난 2003년 4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찬을 마친 뒤 배웅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두 대통령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보였던 모습에는 공통점도 많다. 그 하나가 낙관적 태도이다. 타고난 성품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 다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틀림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고도 내일을 위해 책을 읽었다.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했다. "감옥생활은 내게 다시없는 교육 과정이었다. 정신적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주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지율이 곤두박질하고 재보궐선거에서 판판이 질 때도 의기소침하거나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앞에는 그늘이 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청와대 참모들을 격려했다. 실망하기는 해도 결코 비관하지 않았다.

두 분에게는 낙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이 함께 있다. 자신감의 기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자신감의 근거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저 잘 될 것이다가 아니다. 이렇게 해왔고 이런 역량이 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구성원의 저력을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문화의 저력을 믿고 과감하게 개방했다. 그 결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되기는커녕, 일본이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한미FTA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면 성공과 실패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100% 실패다. 우리 국민은 어떤 개방도 충분히 이겨낼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 개방 때마다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 강조 

위기에 내몰리면 위기만 보이고, 위기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희망의 증거를 찾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자신할 만한 근거와 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통해 막연한 비관을 합리적인 낙관으로 바꾼다. '잘 될 거야. 잘할 수 있어', '까짓 것 해보는 거야'라는 상태로 만든다. 이를 통해 구성원의 힘을 하나로 결집한다.

끝으로, 두 대통령은 위기일수록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위기 극복의 주체로서 공직자들의 사기를 중시했다. 위기가 오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기일 때야말로 공직자들의 희생과 헌신적 노력이 필요한데, 작은 실수로 인해 지탄받고 사기가 꺾이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위기(危機)'는 위험을 뜻하는 '위(危)'와 기회를 의미하는 '기(機)'의 합성어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다. 리더는 위기 안에서 기회를 보고 희망을 찾는 사람이다. 나아가 희망을 현실화하고 어두운 면도 밝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책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에 관한 백서가 쓰일 때, 한 줄 한 줄이 보람과 자부로 넘쳐나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메디치미디어가 발행하는 <피렌체의 식탁>에 실린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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