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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사기꾼으로 몰린 '5.18 희생자' 가족

갈등 빚던 동네 이장 투서에 징역까지 살아... 법원 재심에서 "사기죄 무죄"

등록|2020.05.18 13:44 수정|2020.05.18 13:44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초구의회 김안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동생의 명예회복과 어머니의 한을 푼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광주지방법원 형사2부는 지난 3월 3일 김안숙 의원의 모친 이계순씨가 신청한 형사보상청구 소송에서 일부 인용을 결정했다. 이는 광주지방법원 형사4단독(박남준 부장판사)이 지난 2019년 9월 25일 선고한 재심 사건이 확정됨에 따라 신청한 구금일수에 대한 형사보상청구였다.

재심사건은 지난 1993년경 모친 이씨 등이 사기죄로 기소된 후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던 형사사건이다. 또 그 중심에는 1980년 8월 20일 6시경 사망한 김안숙 의원의 동생 고 김종석(1962년생)의 억울한 죽음이 있다.
   

▲ 서울기록원에서 황석영 작가가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중심으로 준비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시 '넘어넘어 : 진실을 말하는 용기' ⓒ 이희훈


40년 전인 1980년 당시 김 의원의 동생 김종석은 강진농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김종석은 1980년 5월 18일 당일 광주에 갔다가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진압군으로부터 머리 부분을 구타 당하여 구토 및 의식혼탁 등의 후유증으로 같은 해 8월 20일 사망했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경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시 민자당과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평민당과의 협상을 통해 희생자에 대한 보상절차에 돌입했다. 고 김종석의 부모도 신청절차를 밟은 후 1990년 12월경 '광주보상법안'에 따라 1억3천여만 원 상당의 보상금을 받았다.

문제는 고 김종석의 부모와 토지소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동네 이장의 투서로 시작됐다. 그는 정부합동민원실에 이들 부부가 허위로 보상금을 받았다면서 고 김종석이 평상시에도 자주 아팠고 그래서 병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투서했다.

이로 인해 1990년 12월 19일 부모는 사기와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 등의 혐의로 모친은 징역 1년 6월의 형을, 부친(김문규)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

사기죄는 이장의 투서 내용에서와 같이 아들이 병으로 죽었는데도 허위로 광주보상법안에 따른 보상금을 수령했다는 이유였다. 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등은 이장과 갈등을 빚던 토지 보상금 수령과 관련해서다.

하지만 이 같은 혐의는 사실이 아니었다.

법원 "허위로 아들 사망 보상금 받은 것 아냐... 사기죄 무죄"

광주지방법원 형사4단독(박남준 부장판사)은 2019년 9월 25일 이계순과 고 김문규의 재심사건 선고공판에서 '1990년 12월 19일 사기의 점은 무죄'라고 선고했다. 다만 토지보상금 수령과 관련해서는 재심사안이 아니라면서 판단하지 않았다.

재심 사건에서는 이들 부부의 아들 고 김종석의 사인이 이장의 투서에서와 같이 기왕증에 의한 사망이었는지 아니면 1980년 5월 18일 광주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진압군에게 구타당한 후유증으로 3개월여 후인 8월 20일 사망했는지를 다퉜다.

박남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망 김종석의 기독병원 입원기록 상병 명에는 뇌출혈이 포함되어 있고 과거병력에는 내원(1980년 8월 10일) 3개월 전부터 간헐적인 구토, 식욕부진, 전신쇠약감을 보인다고 기재되어 있는 바 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망 김종석이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정신이 이상해 졌다는 피고인들의 신고 내용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망 김종석의 1977년 3월부터 1980년 1월까지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1학년에 감기로 결석 1회, 2학년에 집안일을 돕기 위해 결석 1회 뿐이고 3학년에는 개근하였으며 3학년에는 축구부 활동에 모두 출석하였고 참여의식이 강하다고 기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양복점을 하던 김재영은 당시 망 김종석이 강진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름 교복과 교련복을 맞추었는데 찾아가지 않아 의아해 하던 차에 망 김종석이 5.18 이후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자신의 양복점 건너편 한약방에 찾아왔고 교복 등을 맞출 당시에는 정상이던 망 김종석이 한약방에 왔을 당시에는 말이 어눌하였으며 한약방에 왔을 당시 군인들에게 머리를 맞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피고인들과 같은 마을에 사는 박문수는 망 김종석이 광주에서 맞고 왔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이 망 김종석을 업고 위 한약방 등에 갔으며 망 김종석이 그 전에 몸이 아프거나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증언하였다"는 사실을 각 인정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들 부부가 허위의 사실로 아들 김종석의 사망과 관련해 보상금을 받은 것은 아니라면서 사기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5.18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는 2018년 2월 5일 고 김종석의 기독병원 입원 기록 등으로 보아 그 사인이 외상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고 이들 부부를 제보한 마을 이장이 허위로 신고하였을 정황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고 김종석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것으로 재인정하고 이들 부부에 대한 보상금 환수결정을 취소한 바 있다.

또 이에 따라 정부는 2018년 3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명의로 5.18민주유공자 증서를 발급하고 5.18민주유공자증부에 기재했다. 같은 해 5월 4일에는 5.18묘지 안장도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김안숙 "소외된 이웃과 어려운 약자들 편에서 늘 함께하고 싶다"
 

▲ 2018년 5월 4일 5.18묘지에 안장된 고 김종석과 김안숙 시의원(좌) 5.18 민주유공자 증서(우) ⓒ 김안숙


고 김종석의 누나인 서초구의회 김안숙 의원은 "50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감정으로 일어난 사소한 사건으로 가족의 명예와 동생의 명예를 억울하게 잃을 뻔했으나 진실은 밝혀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동안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지방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여 승소 판결을 받아 형사 보상 청구 소송도 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동생은 5.18민주화 공원에 안장하고 가족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어머니의 한을 풀고 동생의 명예를 지키게 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해주신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5.18 유가족들과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와 같은 억울한 일들이 주위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소외된 이웃과 어려운 약자들의 편에서 늘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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