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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이모 김다비'는 송은이 사단의 미래다

'꿈'을 말하는 가상의 노년 여성 캐릭터... 그들의 활약 오랫동안 보고 싶다

등록|2020.05.19 17:24 수정|2020.05.19 17:24
 

▲ 둘째이모 김다비 ⓒ MBC 쇼음악중심


형광색 골프웨어에 허리춤에 다는 가방, 신부 화장급 올림머리, 경상도 사투리까지. 둘째이모 김다비를 보고 완벽하게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교회 집사님들, 엄마의 직장 동료들, 옆집 아주머니들, 내가 '이모'라 부르는 엄마 친구들도 떠올랐다. 고향이 경상도라서 내 주변 중년 여성과 매치가 더 잘 됐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우리 엄마, 이모 같을 수 있을까. 요즘은 둘째이모 김다비 영상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둘째이모 김다비는 김신영의 부캐릭터다. 김신영은 지난해 송은이가 세운 매니지먼트사 미디어랩 시소의 세 번째 소속 연예인이다. 김신영이 꾸준히 해오던 라디오와 예능 출연을 제외하면, 시소와 전속 계약을 맺고 제일 처음 선보인 활동은 둘째이모 김다비의 '주라주라' 음원 발매다.

가상의 노년 여성 캐릭터 김다비는 자신의 나이를 '7학년 7반, 빠른 45년 1월생'이라고 이야기한다. 77세라는 뜻이다. 과거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했지만 KBS1TV 아침마당에 출연한 현재에 비로소 꿈을 이뤘다고 말한다.

그런데 데뷔곡 '주라주라'를 들어보면 77세보다는 20·30 밀레니얼 세대가 공감할 만한 내용의 가사가 들린다. 노동절에 맞춰 공개된 노래는 회사 대표를 청자로 해 '꼰대질'하지 말란 메시지를 전한다. 펭수가 EBS 김명중 사장의 이름을 시원하게 불렀을 때 환호를 보냈던 밀레니얼 세대는 둘째이모 김다비에게도 같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간 미디어에서 중년·노년 여성은 엄마, 할머니가 육아하고 가사하는 모습 위주로 그려져 왔다. 드라마나 영화 캐릭터는 물론이고 예능도 마찬가지다. SBS 미운우리새끼, 백년손님 등이 대표적이다. 미디어는 나이 든 여성에게서 남편 혹은 시가 식구와 갈등을 빚거나 아이를 키우는 모습 말고는 별로 기대하는 게 없는 듯하다. 김숙은 2014년, tvN 예능 택시에 나와 "30대 싱글 여성이 예능에서 부각될 땐 너무 어렸고, 30대 후반이 되니 시집 식구, 육아 얘기하는 여자들의 예능이 많아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이모 김다비는 미디어가 하나의 클리셰로 만들어버린 중년·노년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를 시원하게 뒤집었다. 어떤 방송에 출연하든 아이 얘기, 남편 얘기보다는 자신의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침마당과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게 꿈이었는데, 조카인 신영이가 작사를 해줘서 자신의 묵은 한이 다 풀렸다고 말한다.

'주라주라'도 기존의 클리셰를 전복하는 노래다. 미디어가 그동안 다뤄왔던 나이 든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완전하게 비껴간다. 시가 식구 얘기 대신 전국의 노동자 조카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데이트 날이라 야근할 수 없다는 가사도 있다. 데이트는 보통 젊은 사람만 하는 일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77세 다비 이모는 노래 속 화자이자 무대 위 가수로서, '노인은 데이트하지 않는다'와 같은 편견을 깨트린다.

다비 이모와 그의 소속사 대표인 송은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 40대와 70대도 저랬으면. 사회가 나이 든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을 시원하게 깨부수고 내 꿈을 좇아 살았으면. 그 나이엔 꿈꾸지 않는다는 편견도 무너뜨리고 계속 꿈꾸고 살았으면.

그리고 동시에 소망하게 됐다. 현재 30대인 내 40대와 50대, 60대, 그 이후에도 송은이 사단이 TV에 나왔으면. 저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웃음 주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고 싶은 만큼 계속 판 벌이고 작당모의하고 살았으면. 그걸 TV와 유튜브로 계속 보고 들었으면.

"평생 해고 걱정 없는 방송국 만들고 싶었다"
 

▲ 비보티비 창립 이념을 설명하는 송은이. 2018년 무한도전에 출연해 '김생민의 영수증' 제작자로서 한 말이다. ⓒ MBC


송은이는 2018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비보티비 개설 이유에 관해 "우리가 그만두지 않는 한평생 해고 걱정 없는 방송국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예능계가 여성 코미디언에겐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걸 그간 많은 평론가가 지적해왔다. 우리는 긴 시간 남성 예능인의 활약만을 지켜봐 왔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한국사에 길이 남을 대표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은 전부 남성이다. 여성 코미디언은 남성 예능인의 보조 역할을 하거나, 게스트로 나온 배우, 가수, 아이돌 등과 외모를 비교당하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내야 했다.

오랜 시간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여성 코미디언이 갑자기 하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5년, 7년간 해피투게더 MC로 활약했던 박미선은 돌연 하차 통보를 받았다. 함께 출연 중이었던 김신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을 내보내고 남성 예능인 한 명이 합류했다. 박미선은 충격을 받았고, 김신영은 '자신이 못한 탓'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송은이가 왜 해고 걱정 없는 방송국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미디어를 설립한 송은이는 간판 예능의 메인 MC로 설 수 없고, 보조 MC로도 하차당하는 동료 개그우먼들을 데리고 판을 짜기 시작했다.

이번 판은 한복판, 판 벌려

송은이가 설립한 콘텐츠랩 비보는 TV 예능, 웹 예능, 팟캐스트, 음원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꾸준히 사랑받는 '비밀보장', 외주 제작사 최초로 저작권을 인정받은 '김생민의 영수증', 신인 아이돌 그룹 셀럽파이브, 먹방 밥블레스유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콘텐츠에는 여성 예능인이 출연한다. 오랜 시간 비밀보장을 함께 진행해온 김숙, 셀럽파이브 멤버인 안영미, 김신영, 신봉선, 밥블레스유를 이끈 이영자, 박나래, 장도연 등이 비보 콘텐츠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

이들이 몇 해 전부터 방송 3사 연예대상에서 큰 상을 받아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영자와 신봉선은 2018년 KBS 연예대상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송은이, 김숙, 장도연, 안영미, 박나래는 2년간 MBC 연예대상을 휩쓸었다.

이들은 상을 받으며 공통적으로 '긴 시간'을 언급했다. 이 상을 받기까지 너무 긴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영자는 "버티길 잘했어"라 말했고, 신봉선은 "10년만에 상 받았다", 장도연은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 송은이와 김숙은 "이십 몇 년 만에 처음 시상식 왔다"고 이야기했다.

비보가 만든 예능 중에 JTBC2에서 방영된 '판벌려 이번 판은 한복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송은이는 해고 걱정 안고 살며, 꾸준히 일했지만 긴 시간 시상식에 설 수 없었던 여성 동료들을 데리고 미디어 시장 한복판에 서서 직접 판을 짰다. 여러 콘텐츠를 만들며 판을 확장했다. 개그우먼에게 무대가 생겼고 방송국 일자리가 생겼고 노래든 말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마이크가 쥐어졌다.

여성에게 자리 내주지 않는 방송국에서, 여성 코미디언들은 거의 자력 구제나 다름없이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빛을 봤다. 그랬기에 앞서 언급한 저 상들을 휩쓸 수 있었다. 이런 자력 구제의 역사 끝에 둘째이모 김다비가 탄생했다.

다음 판은 엘렌쇼다

다비 이모의 다음 꿈은 엘렌쇼 출연이라고 한다.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77년간 간직한 꿈을 이뤘는데, 바로 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엘렌 드제너러스 쇼는 미국 NBC가 17년째 제작하고 있는 세계적인 토크쇼다.

둘째이모 김다비를 보면서 어쩌면 이 캐릭터에는 송은이 사단이 꿈꾸는 미래가 투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7학년 7반 때도 개그우먼으로서 웃음 주고 노래하며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김다비로 만들어낸 건 아니었을까. 최초의 여성 연예대상 수상자인 김미화는 묘비명에 "웃기고 자빠졌네"라 쓰고 싶다고 말한 적 있다. 이처럼 죽을 때까지 남 웃기며 살겠다는 꿈을 꾸면서 다비 이모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었을까.

이유야 어찌 됐건, 그 미래 너무 아름답다. 꼭 보고 싶다. 해고 걱정 없는 미디어 만들어 놨고 소속사도 있다. 판은 준비됐으니 언니들은 거기서 뛰어놀기만 하시라. 무한한 사랑이라는 연료를 제공할 나 포함 팬들이 언제나 대기 중이다. '엉원법'(응원법)도 달달 외웠다. 판에서 놀다가 좁으면 해외로 가버리자. 다음 판은 엘렌쇼니까. 언니들 판 벌리는 거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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